광주를 찾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아픈 손가락이다.
문화전당이 수행하는 각종 의미 있는 역할들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 아픈 손가락 드러내기 쉽지 않다. 21세기에 지어진 이 국가건축물은 장애인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 장애인 엘리베이터도 시민단체 지적으로 추후에 만들었다. 공공장소의 접근권은 도시 인권(문화적 수준)의 판단 요소중 하나인데 전당은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를 배반한다.
앞으로 광주시에서는 더 이상 이같은 폭력적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으리라고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광주시가 지난주 발표한 '광주 도시·건축 선언'에 기대서다. 도시·건축 선언은 '광주답게,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도시공간' '다양성이 공존하는 편안한 도시'를 천명한다.
앞으로는 건축이 들어서는 도시환경, 그곳 시민들의 삶과 연관해서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다. 건축을 도시계획의 전 과정에서 읽어낸 이 선언문은 향후 광주 도시 정책의 전면적 변화를 예고한다.
선언은 헌법에 해당하는 전문과 각 법률에 해당하는 10개의 조문으로 만들어졌다.
이들 조문은 도시정체성이나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와 미래' 등 시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항목으로 한다. 여기에 최근 고층아파트 문제로 논란이 된 공공재로서의 조망권 등을 다룬 '경관과 조망', 장애인 접근권 등을 다루는 '안전과 공존' 외에도 '마을과 공동체', '공동주택과 주거인프라' 등 현안을 망라하고 있다.
성장과 개발위주의 도시계획, 아파트 숲에 허덕이는 도시에 대한 반성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다짐인 셈이다.
이 대장정이 의미를 갖추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정책 반영이 뒤따라야한다. 시는 환류 시스템을 만들어 선언문의 정신을 정책에 반영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서울이나 부산 등 타 시도가 관련 선언으로 그친 것보다 한발짝 나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정책의 실효를 다짐하기는 쉽지 않다. 총괄건축가를 지원하는 인력체계 등 여러 과제가 병행돼야한다. 결국 총괄건축가제, 건축의 공공성, 사람 중심의 도시계획을 구현하는 일은 앞으로 행보가 중요하다.
이 아름다운 선언의 실행여부는 시민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광주다움'이라는 도시 정체성을 구현해갈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여정이다.
'약자의 접근을 우선하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시 공간에 보물처럼 들어선 도시, 아파트 단지가 이웃을 격리하지 않고 함께 공존해 나가는 도시, 조망권 등 도시의 아름다움을 특정 건축물이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도시, 무엇보다 건축물이 사람을 우선하는 도시'
이같은 도시환경은 그 자체로도 멋과 품위를 선사한다. 여기에 이 도시는 문화예술이 넘쳐나고 예술인들이 살아갈 자양분이 넘쳐날 것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예술인, 창의적 인재들이 몰려들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건축이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화가 삶의 양식의 총화라는 점에서 이번 도시·건축선언은 인권과 도시개발이 어우러진 문화적 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 기회의 무대 잘 만들어가길 기대한다.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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