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구의 포용도시?
필자는 2015년 11월 한국정부가 중국에 보낸 공연단의 농악 공연을 보면서 커다라 격세지감을 느꼈다. 1980년대에는 북치고 꽹과리 치는 운동권 학생들이 탄압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보수정권 조차도 전통 농악 공연단을 해외에 파견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문화의 변화는 미국이 먼저 겪었다. 즉 1960년대에는 민권운동이 1970년대에는 반전운동과 히피문화가 미국의 거리를 휩쓸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젊은 세대가 나중에 작가가 되고 또 소비자가 되면서 1970년 중반부터 '스타워즈' '레인맨'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고급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미국 영화가 세계를 점령한다.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70년대까지는 학교에서 미국 중심의 음악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젊은이들도 모르는 포스터의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을 우리는 외워서 불렀다. 70년대까지는 미국 민권운동의 주제가인 '우리는 이기리라'가 한국 운동권의 주제가였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 이후 8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미국 노래를 거부하고 우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 '타는 목마름으로' 등 새로운 경향의 노래들이 1980년대 중반까지 대거 만들어졌다. 70년대 통기타로 시작했던 대학의 노래패들은 '아침 이슬' '그날이 오면' 등을 유행시키고 풍물놀이패들은 한국의 전통 농악으로 대학 캠퍼스를 시끄럽게 한다.
80년 이후 이러한 전통문화를 찾는 문화운동이 없이 단순하게 외국 문화만 받아들였다면, 한국 문화는 미국의 아류 문화로 취급돼 장사가 안 되었을 것이다. 즉 80년 이후의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를 되살리고 이를 서양문화와 적절히 섞어서, 우리의 독특한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외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냈다.
80년대에 의식화된 작가들은 1990년대부터 자기들의 의식을 담은 고급 작품을 만들었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비자들이 이 작품을 사줬다. 1993년에는 광주·보성·나주 지역의 판소리를 주제로 한 '서편제'가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동원 했고 1995년에는 광주항쟁과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모래시계'가 시청률 65%를 차지하면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저녁시간에는 전국의 거리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1998년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되면서 정부는 문화를 소재를 문화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고 일본문화를 개방해서 일본에서 한류가 꽃피게 된다. 아울러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실미도'와 같은 영화가 일상이 된다. 1980년대부터는 진지한 작품들이 많이 팔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850만부 이상이 팔렸고, 공지영의 작품은 모두 합해서 900만부나 팔렸다.
한국의 문화는 단순히 고급 문화로 머물지 않고 대중문화로도 발전이 되어,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시청율 20% 이상을 기록한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빅뱅' '블랙핑크' 'BTS' 등 대중음악이 세계를 휩쓸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 작품활동이 위축되었던 1988학번 봉준호와 1990학번 황동혁은 각각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을 만들어 한류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준다.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은 총칼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이었고 또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대동 운동이기도 했다. 80년대의 젊은이들은 여기에 자주적인 문화 운동을 보태주었고, 그 결과로 오늘날 한류의 꽃이 피었다. 우리 문화와 남의 문화를 동시에 존중하는 포용정신이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된다면, 한류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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