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동시대 창작 레퍼토리 위한 과감한 시도

@김혜진 입력 2023.07.24. 11:39
시립발레단 'DIVINE'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한국춤평론가회 회장
시립발레단 창작레퍼토리 'DIVINE'

국내에서 규모와 체계를 갖춘 3대 직업발레단이라고 한다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그리고 광주시립발레단을 꼽고는 한다. 1976년 창단된 광주시립발레단은 반세기 가까운 역사 동안 지역 발레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2010년대 들어 다소 침체기를 보내긴 했으니 했으나 여러 해 전에 드라마틱한 쇄신을 통한 재도약에 성공하였으며 현 박경숙 예술감독 체제에서는 상승의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소재의 발레단으로서 무용 문화가 집약되어있는 서울 소재의 직업발레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약을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인형' 같은 고전 레퍼토리의 리바이벌에 있어서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과 동등한 입지를 구축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광주시립발레단만의 차별화된 창작 레퍼토리 확립이 매우 중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4~15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DIVINE'은 광주시립발레단의 역량이 집약되어있는 창작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다. 안무를 맡은 주재만은 광주 출신으로 서울을 거쳐 뉴욕으로 진출하였으며 컨플렉션즈발레단이라는 세계적인 무용단에서 무용수, 안무가, 발레마스터, 부예술감독라는 길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현재는 미국 포인트파크대학의 발레교수이자 컨플렉션즈발레단의 전임안무가 겸 발레마스터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재작년에 와이즈발레단의 의뢰로 'VITA'라는 작품을 안무하여 발레계와 관객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작년 6월에 주재만과 작가론을 위한 인터뷰를 할 때 "광주시립발레단과 잘 어울릴 것 같으니 함께 작업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었는데 곧바로 그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심정민

'숭고한'이나 '신성한'과 같은 뜻을 지니는 'DIVINE'은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하여 폭력과 불의에 맞선 인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일련의 춤 이미지로 그려낸다. 무거운 소재를 동시대의 창작 경향인 컨템포러리발레(Contemporary Ballet)로 구현하고 있는데, 이야기 구조의 진득한 설명조보다는 일련의 춤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가장 두드러지게 각인되는 요소는 시각적인 미장센으로 조명, 세트, 소품 등을 때론 미니멀하게 때론 압도적으로 때론 심미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작품의 세련된 감각을 풍부하게 조성한다. 여기에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클래식 음악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디자인된 의상까지 더해져 있다. 무엇보다도 안무와 실연에 있어서, 발레 테크닉을 바탕으로 하되 현대무용적인 요소까지 유연하게 넘나드는 확장성을 갖춘 움직임 표현으로 동시대적인 감각을 한껏 돋운다.

43명의 대규모 출연진은 침묵을 깨고 탄식과 애도의 몸짓을 펼치기도 하며, 자유를 향한 절규를 닮은 몸부림을 펼치기도 한다. 이때 무대 바닥에 수북이 쌓이고 또 내리는 검정 눈은 '재'를 상징한다. 앞 막을 내린 채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에 맞춰 기도하는 듯한 남성 독무가 깊은 인상을 심어놓은 후에 다시 막이 올랐을 때는 바닥, 세트, 의상, 조명할 것 없이 하얀색의 일색으로 변모되어 있다. 용서와 치유와 희망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 내면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표현하면서 80분간의 막은 내려진다.

'DIVINE'은 동시대의 새로운 창작을 위한 광주시립발레단의 과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추진력을 여실히 확인시킨 신작이다. 연출적인 면이나 안무적인 면에서 한국을 넘어 해외무대에서 소통될만한 동시대적인 세련미를 갖추고 있으며, 마흔 명이 넘는 무용수들이 컨템포러리발레로의 대단히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는 점 또한 확인되는 바다. 광주시립발레단의 차별화된 창작 레퍼토리 확립에서 이정표가 될만한 작품이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한국춤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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