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패 신명은 올해 창단 41년으로 불혹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마당극 전문극단이다. 「신명」 은 광주를 기반으로 제의성을 연행의 원리로 삼으며 마당극을 통해서 동시대의 역사 속 아픔과 상처의 고를 풀어 왔다. 그동안의 다양한 역사극과 사회극은 민주 공동체 문제에 대한 공유와 사회 인식의 확장을 통해 사회의 바른 질서를 추구한 연극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한 "소녀의 꿈"은, 지금은 아흔이 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소녀의 광복을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그동안 흘린 눈물이면 배 한 척도 띄우고도 남는다'는 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작품은 양금덕 할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정신대 할머니들의 인권회복 투쟁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독립감독의 작업과 함께 드라마적 진행으로 끌고간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실화이고, 극 중 기록영상을 찍는 독립감독도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끌어안고 있는 막강한 부정의 힘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국가 권력이다.
2018년 대법원은 일제의 한반도 불법 강점과 이로 인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 중 하나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강제동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은 피해자 개인에게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였고 사실상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은 이러한 사실을 대형 탈을 쓴 부부의 등장과 춤을 통해 매우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풍자와 해학은 현실에 대한 정공 표현으로서 사건이나 상대의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공격적 기제로 활용되는 기법이다. 최근 정부 입장의 결과론적 원인에 대한 접근이다.
일본인 교장과 선생들의 '일본에 가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보내주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시켜준다'는 말에 도일하게 되고,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공장에 파견돼 전투기 제작에 동원된 고된 노동, 열악한 환경에서의 실명과 손가락 절단, 지진으로 인한 친구들 사망과 다리부상, 해방 후 정신대 출신 여성에 대한 편견과 핍박 등, 이러한 과정을 극은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중학교 진학은커녕 월급도 받지 못했고 이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할머니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지만 줄줄이 패소했고. 일본 정부는 2009년 12월 당시 물가를 적용한 99엔(약 960원)을 일괄 지급했다. 이에 2012년 할머니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자, 주인공 양금자 할머니를 비롯하여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과와 반성 없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거부를 분명히 한다.
연극은 묘한 마술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상상을 무대에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바라는 단순하고도 정당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전범기업의 배상 약속을 실현한다. 극의 놀이성을 빌어 현실을 바탕으로 한 미래 지향의 이념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아픔이기도 하다.
무대는 당연히 환영주의를 벗어나 단출한 기본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무대 오른편 미쓰비시를 상징하는 공장건물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기차가 되기도 하고 배가 되어 놀이적으로 운영되었고, 코러스들이 탈을 쓰고 마을 사람, 가족, 학교 동료 등 여러 역할을 함으로써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만 정신대 할머니들의 아픈 삶과 현재의 인권투쟁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부담을 덜려는 독립작가의 과도한 연기는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희석시킬 수 있는 경계에 있는 게 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신명 공연 "소녀의 꿈" 은 대한민국 국민이 받은 역사적 상처는 누가 씻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공탁을 통한 전범기업 채무 소멸에 나선 정부에 맞서 강제동원 피해자 위로와 투쟁 지원을 위한 역사 정의를 위한 시민 모금은, 좋은 세상이란 사람에 달려있고 그 시작은 개인, 바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김도일 전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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