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선율로 재탄생한 오월 문학

@강은희 수필가 입력 2024.05.13. 14:55
리뷰-5·18창작 오라토리오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지난 5월 9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 제5회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5·18창작 오라토리오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는, 故 문병란 시인의 시에 김성훈 작곡가가 합창과 관현악 반주를 붙여 만든 14곡의 교성곡으로, 광주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시인과 작곡가의 의기투합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그날 광주는 커다란 항아리 같았다. 사방이 포위되어 시민들은 독 안에 갇힌 생쥐 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주먹밥을 나누고, 계란을 나누고, 헌혈로 피를 나눴다. 그 뜨거웠던 순간이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그렇게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영상이 흐르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기하학적인 영상을 뒤로한 채 나주시립합창단과 여수시립합창단, 광양시립합창단 등 100여 명의 성악가와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잔잔히 시작되는 서곡. 이어 5월의 꽃넋을 위로하는 진혼가를 부르니 천상에서 내려온 듯 갑자기 무대 중앙에 작은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의 청아한 여린 목소리, 소년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죽었단다. 합창단이 전라도 뻐꾸기가 되어 내 대신 핏빛 울음을 토했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소년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도, 불의에 분연히 일어선 구두닦이도 전라도 뻐꾸기로 부활하여 장엄하게 민주의 제단에 올랐다.

그들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한줄기 바람이 되어, 고운 노을이 되어, 금남로 가로수길을 걷고 있다고.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모란꽃 장미꽃 가득한 그곳을 걸었다. 꽃송이를 댕강 잘라 널어놓은 붉은 꽃길이었다. 그 꽃길을 걸어 고운 연인이 왔다. 연인은 어둠을 뚫고 일어선 우리의 정신, 민주의 기치(旗幟)로 우뚝 선 광주의 미래이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마음을 다지는데 어두운 무대 한복판에 흰 한복을 입은 소프라노 김선희 씨가 올랐다. 그녀는 꾀꼬리 같은 맑은 음색으로 광주의 산 무등산처럼 의연하게 민주와 평화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다독였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곡은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다. 빛고을은 평화의 깃발이고 새벽에 오시는 연인이며 그 빛들이 모여 민족 통일의 찬란한 여명(黎明)으로 넘치게 된다고 힘차게 마무리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헨델의 메시아에 버금가는 감동의 무대였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조예(造詣)에 머리를 숙인다. 시인은 시와 음악을 통해 광주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싶었나보다. 무등산의 정기를 품은 시인과 작곡가의 위로는 실제로 경험한 사람만이 가지는 진정성을 가졌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힘이 있는 이유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이 라인문화재단의 메세나 덕분이라니, 기업가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광주를 사랑하고 보듬는 섬김으로 예술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얻고, 광주의 아픔인 5·18이 치유되고 문화로 승화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공연이 서울에서, 뉴욕에서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 광주의 자랑이 되어 5·18의 정신을 널리 알리게 되지 않을까? 작은 날개 짓이지만 5·18 영령들의 넋이 큰 위로를 받고 안식하지 않을까?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가 광주를 대표하는 5·18 오라토리오 공연으로 브랜드화 되어 세계에 드높이 날리길 바라본다.

강은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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