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발레 역시 시대에 따라 여러 사조로 변천해 왔다. 16~17세기에 궁정발레로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오페라-발레라는 과도기적 양상을 거쳐 19세기 전반에 낭만발레로 독립적인 공연예술로 자리매김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고전발레로서 발레 형식을 완성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같이 화려한 대규모 발레가 바로 고전발레인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새로운 시대가 펼쳐짐에 따라 형식보다는 표현을 중요시하는 현대발레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세기 말 이래로 동시대의 창작 춤이라는 의미의 컨템포러리발레(contemporary ballet)가 전개되고 있다. 친절한 설명조의 전개보다는 일련의 소재나 주제를 시청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는데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이 좋은 예다.
작년 초연 이래로 한층 숙성된 'DIVINE'이 지난 24~25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리바이벌되었다. '숭고한'이나 '신성한'과 같은 뜻을 지니는 'DIVINE'은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하여 폭력과 불의에 맞선 인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일련의 춤 이미지로 그려낸다. 'DIVINE'은 80분간 세 개의 장으로 전개되는데 1장 'Freedom'과 2장 'Out of the darkness'을 거쳐 3장 '신성한 사람들'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DIVINE'은 총체성을 띠는 대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는 박경숙 예술감독의 진두지휘로 안무 주재만을 비롯하여 조안무, 의상디자인, 무대디자인, 조명디자인, 기술감독 그리고 예술지도까지 어우러진 총체적인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시각적인 미장센으로 조명, 세트, 소품 등이 때론 미니멀하고 때론 압도적이고 때론 심미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여기에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클래식 음악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디자인된 의상까지 어우러져 작품의 세련미와 비장미를 강조하였다. 안무와 실연에 있어서는, 발레 테크닉을 바탕으로 하되 현대무용적인 요소까지 유연하게 넘나드는 확장성을 갖춘 움직임 표현으로 동시대적인 감각을 한껏 돋우었다. 그 무엇보다도 50명의 출연진이 까다로운 춤사위를 조직적이고도 다채롭게 구현해 냄으로써 'DIVINE'의 총체성을 완성했다.
여기서 인상적인 변화라고 한다면 춤이 좀 더 부각 되었다는 것이다. 초연 때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시각적인 미장센이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절한 균형감을 찾아낸 느낌이다. 우선, 압도적으로 쏟아졌던 검은 눈은 이번에 약하게 내리면서 다소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다른 면에서 무용수들의 춤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효과를 냈다. 안무적인 짜임새에서 디테일이 한층 뚜렷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초연 때보다 훨씬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출연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DIVINE' 같은 국제적인 수준의 컨템포러리발레 대작을 한국, 그것도 광주에서 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도시 광주를 대표하는 광주시립발레단의 반세기 가까운 저력이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출적인 면이나 안무적인 면에서 한국을 넘어 해외무대에서 소통될 만한 동시대적인 세련미와 비장미를 갖추고 있으므로, 일차적으로 수도권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공연될 수 있는 네트워킹 구축이 필요해 보이며 궁극적으로는 해외 진출로 나아갔으면 한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한국춤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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