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이 위치한 페퍼베르크는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과 베를린의 중심 지역인 미테로 바로 이어져 많은 예술가와 갤러리스트, 컬렉터,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베를린은 자유와 저항, 다문화와 혼종의 정체성이 응축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실험적인 예술이 펼쳐지는 도시라고 소개되곤 하지만 의외의 실험이 마인블라우에서 시도되었다.
지난 6월9일, 마인블라우의 전시장 중앙홀 안쪽에 설치된 나무틀 위에 폭 6미터에 달하는 걸개그림이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고정되었다. 홀의 천창을 통과한 오후 햇살이 천천히 공간을 비추는 가운데 통일 베를린의 한복판에서 미 제국주의와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민중의 모습이 펼쳐졌다.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이상호 전정호,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은 두 화가의 예술세계와 민중미술을 베를린과 유럽에 소개하기 위한 전시다. 시대가 변해도 식민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폭력적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비판적 언어가 회화(이상호)와 판화(전정호)로 시각화되었다. 그 교차점에 1987년작인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가 있다. 두 사람의 주도로 공동 제작된 원본은 전시 도중 경찰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압수되어 소각되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두 사람은 결국 수감되었다. 마인블라우의 작품은 사회변혁운동의 격렬한 전선이 소멸한 이후인 2005년에 두 사람이 다시 제작한 일종의 복제품이다.
이 그림에서 민중은 역사의 정당한 주인으로 간주되어야 함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통일을 향한 거침없는 희망은 억압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자유와 독립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이 지리적으로는 분단되지 않았어도 정치적으로는 좌파와 우파가 충돌하는 베를린에 도착했다.
독일 측 전시기획자인 유재현과 베른하르트 드라즈는 민중미술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탄압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끝내는 한국에서 정치적 이행을 이끌어낸 혁명적이고 반체제적인 미술운동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시작은 70년대 말, 서구 모델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제도권 예술에 저항하여 일군의 예술가와 이론가들이 의문을 표하고, 시대를 바꾸려는 문화적 움직임에 참여하면서였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 근본 질문은 과거의 전통 민속예술로부터 서사적이고 비유적인 시각 언어를 개발하여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급진적 예술을 태동시켰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과거와 현재의 급격한 단절을 통해 미래의 새로운 예술형태를 추구하는 서구의 미학적 태도를 의미한다. 반대로 민중미술은 문제의 본질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주요한 표현 근거로 삼아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끝내는 정치적 변화를 일구어낸 동력이 되었다. 이번 전시가 베를린에 열리면서 역설적이게도 서구의 기존 예술의 관념이자 규범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의 전위적인 역할이 다시금 현재적으로 표면화되었다.
전라좌도 풍물놀이와 함께 시작했던 마인블라우의 실험적 전시는 지난 7일 종료되었다. 그 동안 '타게스슈피겔' '베를리너 모르겐 포스트' 등과 같은 유력일간지에 여러 번 기사화되었고 웹매거진 '아트 인 베를린'에는 자세한 소개가 실렸다. 드라즈의 말에 따르면 전시기간동안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교수와 연구자, 예술사 관련 전문가들이 많이 찾아왔고, 시대의 소명에 헌신한 두 사람의 예술적 궤적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트 인 베를린'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찾고 있거나 우리의 현재가 안고 있는 일상의 비참함으로부터 도피할 휴식처를 찾고 있는 사람은 이번 전시가 부적절한 곳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상호 전정호: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은 변화는 가능하며 예술도 그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확실히 한다.'
지난 30년간 우파의 성장과 전쟁가능성 시대에 직면해 학계나 미술관계자들은 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생각했을까?
정현주 전시 공동기획자·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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