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in] 주목받는 청년 화가, 이유 있는 '무등예찬'

입력 2024.08.19. 16:17 이삼섭 기자
[무등in ⑤] ‘무등예찬’ 기획·전시 ‘임수범 회화작가’
작품 통해 '무등=경계가 허물어진 세계' 표현
"구분 짓는 행위에 '경계 있는 것' 희생" 지적
무등은 고향 같아…작업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광주 서구 임수범 작가 작업실에 그가 참여했던 '무등예찬' 포스터가 걸려 있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무등이 곧 광주이고, 광주가 곧 무등이다'는 말처럼 무등은 그 자체로도 광주의 브랜드입니다. 무등이란 이름으로 무등산의 아랫자락에서 시작된 이 도시에서 무등은 '상징' 그 이상의 무언가로 시민 일상과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광주에서 무등을 상호명으로 쓰는 기관, 법인, 단체가 300여개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무등일보가 묻습니다. 왜 무등인가요? 편집자주.

"인간은 구분이란걸 하면서 굉장히 중간의, 경계에 있는 것들을 많이 희생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어떤 경계가 없는, 굳이 구분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무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는 청년 작가 임수범 씨(26)는 세계를 하나의 유기적 관계망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등 내지는 무등산은 그의 세계관과 맞닿아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예찬 대상이다.

2022년 '무등예찬'이라는 기획 전시를 통해 그가 무등산을 '경계가 없는 세계'의 상징으로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 대해 임 씨는 "주로 작업할 때 오래된 유물의 이미지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오랜 흔적이 남겨진 지층 같은 지질학적 이미지들을 찾아 작업에서 그 이미지들을 배치한다"며 "무등산이 마침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되면서 관심을 갖던 차 우연히 무등산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제안을 받아 함께 무등산을 이야기 하고 싶어 참여했다"고 참여 계기를 말했다.

이어 그는 "무등산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 인간이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임 씨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적은 것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존재"라며 "구분을 해버리면 실제로 살아가는 데도 굉장히 편안할 수 있지만 가끔 중간과 경계에 있는 것들을 희생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임 씨는 무등산을 두고 '복원해야 한다', '자생종을 보호해야 한다'와 같은 구호를 예로 들며 구분지음을 경계했다. 그는 "되게 좋은 말처럼 들려도 복원의 의미에서라면 대체 어느 시대 어떤 풍경으로 복원한다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없고, 자생종 이야기 또한 긴 역사 속에서 도대체 '고정된 자생종이라는 게 존재할까'라고 생각하면 사실 그것도 엄청 의문이 든다"며 "산이라는 것을 구분 짓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만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 '무등예찬' 기획전에 출품했던 '새로운 세계의 시작'(무등산). 145.4x290.8cm, acrylic, oil on canvas, 2022 /임수범 작가 제공

그렇다고 임 씨에게 무등이 '구분 지음에 대한 절대적 반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는 "구분은 인간의 문명이 아무것도 없던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며 "구분을 짓는 건 나쁜 게 아니되 너무 많은 것들을 다 명확하게 '여기까지가 뭐야'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요즘처럼 극단화와 양극화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시대에서 더욱 구분 지음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임 씨에게 경계가 허물어짐을 의미하는 무등은 굳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하지 않아도 창작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차기작에서 무등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면서도 "제 작업의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무등이기 때문에 어떤 작업을 해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무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임수범 회화 작가는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의 상징으로 '무등'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광주 서구 내 작업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임 씨는 물론이거니와 광주시민들이 '무등'이란 말을 그토록 많이 쓰고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를 두고, 임 씨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무등산의 존재라고 추측했다. 그는 "집 베란다를 열어 보면 무등산이 가끔 뿌옇게 보일 때도,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는데 그걸 보면서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은지, 날씨가 좋은지를 눈대중으로 확인한다. 매일 작업실에 출근할 때도 무등산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계속 무등산을 본다"며 "그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무등이란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무등은 그에게 '고향' 같은 존재다. 작품을 계기로 무등산을 다시 바라보기 전부터도 어딘지 모르게 어릴 때부터 친숙하면서도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임 씨는 "고향이라고 하는 단어를 떠올리면 내가 태어난 지역일 수도 있는데 마음이 가는 곳,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지역도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처음에는 낯설고 미지의 땅 같은 신성한 공간처럼 느껴졌는데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또 무등산을 직접 가보면서 느꼈던 거는 되게 그냥 되게 편안한, 항상 내 옆에 있었던 편안한 존재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덧붙이는 글: 기획 연재 '당신의 무등' 인터뷰는 오는 9월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광주 파빌리온관에서 전시됩니다. 올해 처음 신설된 광주 파빌리온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무등: 고요한 긴장이란 주제로 시민들과 호흡합니다. 공동체, 연대, 포용, 인권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무등(無等) 개념을 다양한 방식과 협업으로 확장합니다. 5·18민주화운동 '비경험 세대' 가 주축이 된 여러 작가들이 광주정신의 예술적 계승 방식을 탐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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