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시험 '무등을 논하라'에 신선한 충격
대동세상 떠올려…사회 모순 혁파하는 힘
무등 안에서 유등(有等)의 아픈 경험 겪어
타지서도 여전히 간직해야 할 나침반 역할
'무등이 곧 광주이고, 광주가 곧 무등이다'는 말처럼 무등은 그 자체로도 광주의 브랜드입니다. 무등이란 이름으로 무등산의 아랫자락에서 시작된 이 도시에서 무등은 '상징' 그 이상의 무언가로 시민 일상과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광주에서 무등을 상호명으로 쓰는 기관, 법인, 단체가 300여개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무등일보가 묻습니다. 왜 무등인가요? 편집자주.
"저에게 있어 무등은 대체로 일상에서 망각하고 살아가는, 그러다가 문득문득 저 가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어떠한 것…. 무등은 저버릴 수 없는 초심이고 끝까지 간직해야 할 어떤 사유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8년 무등일보 창간과 함께 1기 기자로 입사한 조선희 씨(62)는 젊은 날의 무등과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 무등일보 창간호가 나오기도 전에 진행된 수습기자 채용 시험에서 나온 주제가 '무등을 논하라'였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무등을 논하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죠. 그러면서도 이 문제는 얄팍하게 써서는 안 되겠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종의 무등의 아우라라고 할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사실 그 순간 무등을 처음 만난 거였습니다. 그때까지 저한테 무등은 그냥 무등산이었고요. 어디에서나 눈을 돌리면 만날 수 있는, 등이 없이 완만한 산덩어리가 넓게 펼쳐진 그 무등산이 저한테는 무등이었던 거죠. 그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 논제로 만난 무등, 그 엄정하고 긴장된 시험의 순간에 맞닥뜨린 무등은 정말 굉장히 깊고 넓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정말 그 무등에 관한 사고다운 사고를 했고 그거를 논리정연하게 써 내려갔던 그런 기억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 가장 빛났던 젊은 시절 그 한때 그 순간에 무등을 만난 것은 저는 행운이었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험에서 무등을 맞닥뜨리면서 그는 '대동 세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경계마저 사라진 어떠한 상태'라는 무등의 뜻은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서 황석영 작 '장길산' 결말 부분을 인용했다.
"미륵 세상을 꿈꾸면서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우는 민초들의 열망, 좌절됐음에도 그 사회의 모순을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혁파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바로 그런 게 무등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등의 이름을 가지고, '무등 세상'을 말하는 기자조차도 가슴 아픈 '유등'(有等)의 경험 또한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등일보에서 처음으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기자인 조 씨가 출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자 '취재 파트'가 아닌, '교열 파트'로 인사 발령이 난 것이다. 항의했지만 돌아온 건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었고, 출산한 여기자에 대한 차별로 다가왔다. 그가 무등을 떠나게 된 계기였다.
"추구하는 방향이 무등이라고 해서 거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나 수단이 무등일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선한 출발이었고, 그 지향하는 바는 굉장히 새로운 도전과 모범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 내재화되지 않아 조직의 시스템이나 제도, 또는 경영진의 사고방식까지를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일렀던 거죠. 여전히 야만의 어떤 기운이 남아 있는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무등은 그에게 여전히 아직까지도 나침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무등에서의 첫 순간들의 기록들이 담긴 수습일지를 아직도 갖고 있을 정도다.
늘 무등을 생각하고, 무등을 실천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다. 조 씨는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이 사회 또한 경계조차 사라진 평등한 세상으로 향하는 무등의 나침반이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조 씨는 광주사람들이 그토록 무등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거역할 수 없는 동질감'으로 봤다. 무등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광주에서 어쩔 수 없이 타고날 수밖에 없는 타고난 기질과 성향, 무등산이라는 현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정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광주 사람들이 중요한 이름을 붙일 때 무등이라는 이름을 단박에 생각해 낸다. 그것에는 특별한 이유도, 장황한 설명조차도 필요 없다.
1999년 제주로 이주를 간 조 씨는 그곳에서 무등을 마주한다고 했다. 광주사람들에게 무등이 있듯, 제주사람들에게는 한라가 있어서다.
"광주에서 무등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제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는 늘 한라를 만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는 한라산이고 한라산은 제주도라는 말이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여기 제주분들도 가슴 속에 그렇게 똬리를 틀고 있는 정체성 또는 공동체 정신이랄까요? 그런 게 응축돼 나타나는 게 한라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물론 한라일보라는 신문 제호도 있고요. 제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한라, 마치 광주에 가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무등이 있는 것처럼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와 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은 견줄 바 없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주에서 사는 광주 사람이다 보니 여기에서 늘 만나는 그 한라 속에서 저는 역시 또 다른 광주를 늘 만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덧붙이는 글: 기획 연재 '당신의 무등' 인터뷰는 오는 9월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광주 파빌리온관에서 전시됩니다. 올해 처음 신설된 광주 파빌리온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무등: 고요한 긴장이란 주제로 시민들과 호흡합니다. 공동체, 연대, 포용, 인권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무등(無等) 개념을 다양한 방식과 협업으로 확장합니다. 5·18민주화운동 '비경험 세대' 가 주축이 된 여러 작가들이 광주정신의 예술적 계승 방식을 탐문합니다.
- [무등in] 광주에 빚진 마음, 수묵으로 무등을 그리다 김호석 화백이 무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작품 '무등'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무등이 곧 광주이고, 광주가 곧 무등이다'는 말처럼 무등은 그 자체로도 광주의 브랜드입니다. 무등이란 이름으로 무등산의 아랫자락에서 시작된 이 도시에서 무등은 '상징' 그 이상의 무언가로 시민 일상과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광주에서 무등을 상호명으로 쓰는 기관, 법인, 단체가 300여개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무등일보가 묻습니다. 왜 무등인가요? 편집자주.수묵화 대가 김호석 화백은 대표적인 '무등' 예찬론자다. 오랜 시간 '무등 정신'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철학적 담론이자 모두가 평화롭게 서로를 껴안고 대동 세상을 이룰 구심점으로 설파하고 있다. 그는 시간은 변해도 '무등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을 진리라고 강조한다.김 화백은 특히 광주에 어떤 연고도 없음에도, 누구도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가 광주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간다. 또 누구보다도 광주에 애정을 가지고 광주를 작품으로 승화한다. 기획 연재 마지막 인물로 김 화백을 무등일보가 만났다. 인터뷰 내용은 1문 1답으로 정리했다.-자기소개를 해달라▲수묵화를 주로 하고 있다. 먹과 물로 그린 그림을 수묵화라고 하는데, 그것이 지니고 있는 특징 즉 그을음을 태워서 만든 불의 성질인 먹과 물의 성질 두 개를 섞어서 그림을 그린다. 불과 물이라는 상충하는 효과를 통해 서로 상생을 꾀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은유와 또는 담론을 형성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화가다.-무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광주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광주민주화운동이다. 또 그 이전에 떠오르는 단어가 학생운동, 광주 일제강점기 저항운동 그다음에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더 근원적으로 무등이라는 언어다. 무등은 어떤 차별도 없고, 1등도 없고, 2등도 없으면서 모두가 승리자이고, 모두가 정점에 서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가 추구해야 할 앞으로 인류가 미래에서 추구해야 할 하나의 큰 어떤 철학적 담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김호석 화백은 무등일보 인터뷰에서 "무등 정신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평화와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그 정신의 날줄, 씨줄의 근거"라고 말했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오랜 시간 설파한 '무등 정신'이란 게 무엇인가?▲무등 정신은 1등, 2등이 없다. 분배의 원칙 속에서 모두 승리자다. 너와 내가 잘나는 어떤 1등이나 2등의 구조가 아니라 각계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며 서로를 인정하고 다름을 껴안는 사회다. 대동 세상 얘기를 하지만 무등 정신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평화와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그 정신의 날줄, 씨줄의 근거라고 생각한다.-광주에 연고가 없는데, 그토록 무등을 이야기는 이유는?▲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로서 '진정으로 그들이 모든 것을 내놓고 죽을 각오로 싸웠던 그 정신의 숭고함이 내게 얼마만큼 육박해 들어오는 건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예술의 붓끝에 얼마만큼 녹아들어 왔는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굉장히 부끄럽다.또 하나는 민주화운동의 길을 걸었던 많은 사람이 자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감옥, 투쟁이었다면 나는 그들을 그리는 것으로 예술적인 길을 걸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제 발언의 영역을 더 구축하고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광주 영령들이 쌓아 올렸던 공에 대해 저는 한없이 낮고 부끄러울 뿐이다.-무등 정신과 달리 국내외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현 시기에 '무등 정신'이 주는 함의는?▲개인에 대한 성찰이나 개인에 대한 어떤 뛰어난 자기 성취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부가가치를 높이다 보니 양극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개인의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사람들 모두가 서로 한 몸으로 합치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남는 것은 빌려주고 그러면서 평등조차도 넘어서고 있는 그 경지가 지금 사회와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철학적 담론이 아닐까 생각한다.사람들이 자기 잘 되고, 자기 불이익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사람에서 '내 자식이 중요한 만큼 네 자식도 내 자식과 똑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등 정신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가 보편적으로 마지막까지 돌아가려고 하는 부분은 결국 평등조차 넘어선 무등 정신이다. 모두가 귀하고 모두가 승리자고 모두가 가치가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 함부로 정의를 훼손시키지 않고,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 인공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도 쉽게 폄훼하지 않을 세상이 된다면 그것이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진리, 무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김호석 화백은 오랫동안 인류가 추구해야 할 철학점 담론으로서 '무등 정신'을 이야기해왔다. 김 화백이 그의 작품 '무등'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왜 이토록 광주 사람들이 무등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지?▲광주 무등산은 어머니같이 넉넉한 산이라고 하지만 저것은 불을 품고 있는 산 같다.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침묵하고 항상 지켜보고 있는 삶 같지만 의롭지 않을 때는 물어 뜯고, 들불처럼 일어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생명력이 없는 산 같지만 가장 생명력이 있는 산이다. 광주는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그 의로운 정신과 냉철한 이 물(담양호)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정신을 생태적으로 환경적 요인으로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광주 출신 사람들은, 광주의 정신적 자양분을 얻었던 사람들은 굉장히 의롭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쉽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광주는 그런 점에서 선택된 땅이다.하지만 무등경기장을 보면 무등이라는 의미로 보면 아무 차별이 없는 경기장이다. 말이 안 된다. 경기라는 것은 선후 1등, 2등이 있어야 하니 사실은 무등이 아니라 유등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언어가 많이 사용된다고 해서 그 언어의 뜻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복제나 자기 스스로가 거기에 함몰될 때 언어의 폐해도 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무등이라는 단어가 왜 사용됐고, 이것이 갖고 있는 철학적 담론은 어떻고, 민주화운동에서 무등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미망들을 조사해야 한다.-향후 '무등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자세히 말해준다면?▲무등산을 그리고 싶다고 하는 욕심이 자꾸 생기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의 실체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오랜 시간 광주를 지켰고,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킨 사람들이 여기서 다 나왔는가다. 이것(무등산)의 에너지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상충하는 것에 대한 조합뿐만 아니라 그것도 뛰어넘는 뭐가 있을까를 그림을 통해서 은유하고 싶은 부분이 많이 있다. 예술적 자양분으로서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거 아니겠나? 부끄럽지만 아니, 겁먹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무등산의 똑바른 어떠한 정신에 대한 느낌을 그린 그림을 아직까지 못 봐서 한번 그려보고 싶다.-광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광주는 정말 위대하다. 그 자부심은 뛰어나지만 그 자부심만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폭넓고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그 마음이 정말 애틋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지금도 충분하지만 조금 더 한국 사회에 큰 인물이 되고 주류가 되려면 결국은 포용할 수 있는 그 자세, 그리고 끌어안고 더불어 함께 평화로운 어떠한 모습을 취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광주 정신이 성립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든다.광주에게 짐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무등산의 정기, 무등 정신, 그다음에 담양호의 그 냉철함, 대나무 위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깨끗하고 소쇄 담백한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 나 같은 사람이 볼 때는 여기는 축복받은 땅이다. 그래서 축복받은 사람답게 남에게도 나눠줬으면 좋겠다. 혼자 독차지하지 말고 그래서 의로운 정신이 서울에서도 퍼지고 부산에서도 펼쳐져서 모두 다 고르게 향상이 될 수 있도록.-당신에게 무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무등은 진리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더 이상 변할 수가 없다. 변한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그것이 곧 무등이다. 차별이 없고 모두 다가 주인인데 더 이상 어떤 언어로 규정할 수 있겠나. 저울을 달아 한쪽이 가벼우면 조금 더 놓아주며 공평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무등이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덧붙이는 글: 기획 연재 '당신의 무등' 인터뷰는 오는 9월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광주 파빌리온관에서 전시됩니다. 올해 처음 신설된 광주 파빌리온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무등: 고요한 긴장이란 주제로 시민들과 호흡합니다. 공동체, 연대, 포용, 인권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무등(無等) 개념을 다양한 방식과 협업으로 확장합니다. 5·18민주화운동 '비경험 세대' 가 주축이 된 여러 작가들이 광주정신의 예술적 계승 방식을 탐문합니다.
- · [무등in] 곱씹을수록 좋은 무등, '이름값' 톡톡히 누립니다
- · [무등in] 주목받는 청년 화가, 이유 있는 '무등예찬'
- · [무등in] '광주 맛' 알릴 브랜드, '무등' 넣고서야 완성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