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요산(仁者樂山), 마음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담양 금성면에서 20년째 유로폼 제조·보수회사를 꾸리고 있는 정필웅(59·한성산업) 대표는 산 마니아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그일지라도 산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산 사나이다. 정 대표는 세계 7개 대륙 최고봉 가운데 Everest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대륙 6개 정상을 밟았을 정도로 산 사랑에 푹 빠져 있다. 그것도 산소통 없이 오직 자신의 폐활량에만 의지한 채 이들 정상을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예컨대, ▲아프리카 최고봉 Kilimanjaro(5천895m) 2008년 8월20일 ▲유럽 최고봉 Elbrus(5천642m) 2012년 7월5일 ▲남아메리카 최고봉 Aconcagua(6천962m) 2012년 12월29일 ▲북아메리카 최고봉 Denali(6천168m) 2013년 5월29일 ▲오세아니아 최고봉 Kosiuszko(2천228m) 2017년 12월11일 ▲남극 최고봉 Vinson Massif(4천897m)에 2019년 1월2일 우뚝 섰다. 지난해 그토록 고대하던 Everest(8천850m)를 등반할 계획을 세웠다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자 일단 내년 4월께로 미뤄놓았다. 하지만 그는 소풍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곳에 가는 날만 꿈꾸고 있다.
◆편안하고 행복한 산행…무아지경
"산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마치 사람의 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산에 있을 때의 제 마음과 일상에서의 마음이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산은 그렇게 어떤 사연도, 어떤 인연도 잊히게 만듭니다. 황홀경으로의 초대도 합니다. 산이 있어 정말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는 "산에 오르면서 힘들다보면 호흡만 관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며 "그런 상황이 도래할 땐 무념무상·무장무애 모든 걸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 참 행복하다"고 했다.
능선의 굴곡을 따라 그저 한발 한발 내딛다보면 속된 근심들이 느슨해지고 날카로운 상념들이 뭉툭해지면서 행복한 산행의 무아지경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는 인자(仁者)가 아닌 사람, 산을 모르는 사람, 산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다. 혼자 걷는 길이 너무 적적할뿐더러 가벼운 기분전환이 아닌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가빠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과의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이 더 크게 작용할지 모른다.
산과의 인연은 광주민중항쟁이 한창이던 대학 1학년 시절인 1980년 5월께 시작됐다. 선배들의 권유에 못 이겨 무작정 따라나선 지리산은 그에게 안온함과 아늑함으로 다가왔다. 포근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닿아있는 땅이 바로 산이라는 사실도 설렘과 떨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연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새벽녘 지리산의 아름다운 전경은 아직까지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명산 모조리 섭렵…회사일도 술술
그로부터 지난 2007년까지 짬만 나면 설악산 한라산 소백산 등 전국의 소문난 명산은 모조리 휩쓸고 다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산의 사계절 풍경이 늘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마술에 걸린 것 마냥 산에만 다녀오면 힘들고 어려웠던 회사일도 술술 풀려나갔다.
하지만 부인 김혜경(58)씨는 높은 산에 오르내리는 걸 내심 불안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아마도 사고의 위험이 상존해 있는데다 등반채비를 갖추고 동행하기가 쉽지 않아서였으리라.
"한번은 아내가 친구들과 화순의 사주를 잘 본다는 사람을 찾았답니다. 도대체 어떤 묘책을 써야 앞으로 산에 가지 않겠느냐며 물어봤나 봅니다. 그가 말하기를 '남편은 발이 작아도 세계를 누빌 인물로 묶어놓으면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예언(?)했답니다. 아내는 이후부터 단 한번도 산에 다니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긴 적이 없었어요. 당시 그 역술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워요.(웃음) 급기야 세계적인 명산을 등반하려는 길이 열린 셈이잖아요."
이듬해인 2008년 여름, 그는 6박7일 일정으로 북 알프스로 알려진 일본 중부지역의 3천여m 정상을 편하고 즐겁게 트래킹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서 얼마 있다가 킬리만자로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을 등정한다는 생각에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그래도 예서 멈출 순 없었다. 10박11일간의 일정을 잡고 탄자니아 모시(Moshi)라는 마을로 향했다. 마랑구게이트에서 시작한 등반은 순조로웠다. 하산하면서 문득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게 됐다. 특별하게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뭔가 자신에게 자랑할 만한 선물을 선사해야겠다는 판단했다. 바로 그 선물이 7개 대륙 최고봉을 등정하는 것이었다.
◆ 등정 성공은 한완용씨 감각 덕분
남아메리카 원주민어로 '경외할 만한 산'이라는 아콩카과. 아콩카과 등정은 2009년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던 한완용 대장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이뤄졌다. 한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세계에서 11번째, 국내에서 3번째로 완등한 산악인으로 유명한 인물. 25일간 3명의 일행과 대장정에 나섰다. 그러나 함께 등반했던 일행이 뇌혈관이 이상하다며 6,200m에서 하산, 실패로 끝났다. 실패를 거울삼아 2012년 12월 재도전, 얼굴에 심한 동상까지 걸리면서 등정에 성공했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산으로 남아있다.
북미의 최고봉 데날리는 '높은 곳, 태양의 집'이란 뜻으로 이래저래 사연도 많은 산이었다. 동절기에는 영하 50℃ 이하로 떨어질 만큼 혹독한 추위로 악명 높았다. 특히 허리케인급 사나운 눈보라는 방향 감각을 잃게 하면서 저체온증으로 사망사고가 빈발한 곳이었다. 2013년 5월 세 사람이 시애틀에서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거쳐 와실라(Wasilla)로 갔다. 장비 점검과 식량준비를 마치고 탈키트나(Talkeetna)로 또다시 이동했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Everest)와 데날리를 등정하고 데날리 하산 중에 사망한 故 고상돈 대장의 추모비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해발 2,600m인 등반 시발지에 도착한 다음, 썰매에 짐을 싣고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닷새 만에 베이스캠프(캠프1, C2, C3(2박), C4(베이스캠프))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짙은 안개에 두 번째 캠프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14시간이 넘는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캠프에 도착했다. 당시는 발에 맞는 3중화가 없었던 관계로 치수보다 큰 신발을 신어야 했다. 발가락 전체와 양 뒤꿈치 모두가 물집 범벅이었다. 밴드와 양말을 겹쳐 신고 괴로움을 견뎌내고서야 비로소 전진캠프(C5, 마지막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데날리 등반에는 무아지경은 없었다. 체력보강을 위해 하루 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한 대장은 일기예보를 보고 지금 출발해야 한다며 일행을 재촉했다. 서둘러 출발한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마침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만약 하루만 늦었다면 최소한 며칠은 지체됐을 게 뻔했다. 최악의 경우 실패한 등반으로 남았을지도 몰랐다.
당시 눈보라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고, 그처럼 눈이 내리면 며칠씩 텐트 안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 까닭이었다. 무사히 등정에 성공한 것은 오로지 한 대장의 탁월한 등반 감각 덕분이었다. 그는 지금도 한 대장의 풍부한 고산 경험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애써 강조한다.
◆산에 대한 첫째 덕목…경외심
"등반의 성패는 날씨가 좌우합니다. 기압차이나 산소부족 등은 어느 정도 훈련으로 잠재울 수 있지만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산에 대한 첫 번째 덕목이 경외심입니다. 이후엔 누구나 포기하지 않으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산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지론이다.
만약 예정대로 내년 4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면 7개 대륙 최고봉 완등보고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간의 사진을 중심으로 한 멋진 책자도 발간하면서 말이다. 여태껏 산을 오르내리면서 사비로 쓴 돈만 해도 1억여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미소 짓는 정필웅씨.
그는 고행의 길인 산행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흥사단 일에도 열심이다. 그는 현재 광주흥사단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 청소년 육성과 함께 사회변혁 운동, 그중에서도 부패문제와 엘리트들의 카르텔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은 말한다. 제발 빨리 만나고 싶다고…. 그도 속삭인다. 너와의 재회를 늘 꿈꾸고 있다고….
김봉일기자 amazingreporter@mdilbo.com
- 패밀리랜드 대신 여기 어때?···광주 산동교 친수공원 '무료' 놀이시설 9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로 야외활동을 나온 광주의 한 어린이집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고 있다.광주 산동교 친수공원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무료로 운영된다.12일 광주 북구에 따르면 구는 16일 동림동 산동교 친수공원 진입광장에 놀이기구를 설치한다.설치되는 놀이기구는 에어바운와 트램펄린 각 1개씩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된다.운영기간은 16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다. 점심시간인 낮 12~오후 1시 사이를 비롯해 매주 월요일에는 휴장한다.북구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에도 해당 공간에 어린이 놀이시설을 운영할 방침이다.북구는 산동교 친수공원 인근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아숲 체험과 연계해 지역 아이들에게 계절별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놀이공간을 조성하게 됐다.북구 관계자는 "봄철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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