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판타지에 녹아들다
공업지역·베드타운 이미지에 정체성 모호
판타스틱 영화제·만화산업 특화 산업 시도
영상산업 중심지로 우뚝···파급 효과도 커
[지방소멸, 도시브랜딩으로 극복하자 ③]
경기도 부천시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있어 교통여건이 좋은 도시다. 이 같은 환경 때문에 인구밀도만 높은 도시로 각인됐던 부천시지만 최근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판타지아 부천'(Fantasia Bucheon)이라는 브랜드슬로건을 내걸고 도시 전체가 '판타지'(환상)에 물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서울의 베드타운이자 낡은 공업지대 이미지가 강했던 부천이 최첨단 영상산업을 선도하며 만화와 영화, 웹툰 등 콘텐츠 도시로 변모하며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부천의 '도시브랜딩'에서 시작됐는데, 특색 없는 한 중소도시가 지속적인 도시브랜딩을 통해 어떻게 특색있는 도시로 변모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도시 곳곳에 녹아든 '판타지'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유행을 따라 문화를 핵심 축으로 도시브랜딩에 나섰지만 실제 자산화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부천의 도시브랜딩 성공 원동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부천이 도시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허구적인 선언이 아닌 문화적인 실체를 갖도록 하면서 도시의 발전과 일체화했다는 점이다. 부천시가 브랜드슬로건으로 내건 '판타지아 부천'을 영화제 등 축제, 관련 산업,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 등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시 공간과 브랜드 이미지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독보적이다.
'판타지'는 현실을 왜곡한 요소 또는 해당 요소가 들어간 매체를 이르는데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에서 다뤄지는 장르다. 그 이름 그대로 '판타지아 부천'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판타지의 장'이다. 또한 브랜드슬로건에 맞는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실제 최근 취재를 위해 찾은 부천시 곳곳에는 '판타지'가 물들어 있었다. 부천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모이는 부천역사 내부에서부터 그 시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역사 내부 벽면에는 만화적 요소가 담긴 그림으로 가득했다. 역사에서 나가자 '버스킹역'을 알리는 만화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를 타는 승강장에는 보다 입체적인 만화들이 정류장 벽면을 채웠다. 수십년 전 지상파 방송에서 나오던 만화에서부터 최신 웹툰까지 있었는데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한 둣했다. 상업지구 한 가운데 있는 광장에는 층층이 쌓인 책들을 묘사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부천 영화의 거리'를 가기 위해 들른 송내역 환승정류장에는 브랜드슬로건인 '판타지아 부천' 로고가 적힌 LED알림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로 나가자 '판타지아 부천' 로고를 더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면 맨홀 뚜껑에 로고가 있었고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서 있는 동안에, 무더위 그늘막에서도 로고는 쉽게 눈에 들어왔다.
정작 영화의 거리에는 이를 알리는 조형물 몇 개가 전부였지만 도시 곳곳에 녹아든 '판타지아 부천'을 발견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회색의 성냥갑 아파트 벽면에 도색된 만화에서는 '판타지 도시'를 꿈꾸는 부천시의 진심이 담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좁고 삭막한 도시, 환상을 품다
부천시는 산업화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밀려나서 자리잡은 지역이다. 순식간에 공장과 인구가 늘면서 급격히 도시가 형성됐다. 1980년대 서민층과 빈민층이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원미동 사람들'에서도 전라도, 경상도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이 등장한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한 덕에 공장이 대거 들어서고 서울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 부천시는 전국 최고 수준의 높은 인구밀도와 산업단지, 상업지구 비율을 보였다. 도시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높은 범죄율을 가진 도시라는 오명까지 안았다. 실제 53.45㎢ 에 80여만명이 거주하는데 광주 서구가 비슷한 면적에 30여만명이 사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높은 인구밀도인지 알 수 있다.
그런 도시여서일까. 부천의 도시브랜딩은 문화를 통한 환상의 구체화로 그려진다. 부천은 지난 2008년 브랜드슬로건을 탄생시킨 때를 기점으로 도시브랜딩을 본격화했다. 1년여간의 명칭 공모와 디자인 용역개발 등을 거쳐 탄생한 도시 브랜드슬로건은 '판타지아 부천'이다.
판타지아 부천의 3대 핵심 키워드는 'Fun', 'Modern', 'High-Tech'로 즐거움과 재미가 있는 도시, 첨단기술과 젊고 신선한 현대감각이 어우러진 도시 이미지를 보여준다. 특히 리듬감과 색채감이 넘치는 글자배열은 부천이 지닌 '다양한 즐거움'과 '행복선율'을 상징하는데 활기찬 문화와 선진형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부천의 미래상을 그려냈다는 게 부천시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공업지대 밀집으로 인한 삭막감과 베드타운이라는 데서 비롯된 '무색'의 도시 정체성이 판타지라는 욕망을 끌어냈고 이를 도시브랜딩에 녹여 도시 미래 비전으로 삼은 셈이다.
◆영화로 시작해 음악, 소설, 만화의 도시로
현재 부천을 판타지의 도시로 각인시킨 주인공은 자타공인 '판타스틱 영화제'(BIFAN)다. 1997년 처음 시작된 이후 매해 열리는 BIFAN은 현재 아시아 최대·최고의 장르영화제로 발돋움해 '판타지아 부천'을 상징하는 영화 축제이자 부천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다. 매해 영화배우와 감독, 영화종사자, 관람객들이 한 데 모이는 축제의 장에서 부천이라는 도시에 특색이 입혀지고 이는 고스란히 부천의 도시경쟁력을 높였다.
무엇보다 BIFAN은 지난 2008년 장르 영화 제작과 발전을 위해 '아시아 판타스틱 영화 제작네트워크'(NAFF)를 발족한 데 이어 '환상영화학교' 등을 통해 아시아 장르 영화인들을 발굴·육성하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부천은 문학과 만화 등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산업도 골고루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7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됐다. 문학창의도시 지정 후 복사골 인문르네상스, 부천북페스티벌, 꽃보다 청춘 문학원정대, 2018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총회, 2018 동아시아출판인회의, 2020 해외작가 레지던시 사업 등을 통해 부천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여갔다.
지난 2009년에는 만화영상산업진흥원을 설립한 후 만화영상산업 클러스트 고도화를 통해 만화콘텐츠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일에는 9회 '2021 세계웹툰포럼'을 성황리에 끝낼 정도로 만화도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부천 상동에 조성되는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는 약38만㎡에 4조1천900억원이 투입돼 영상문화콘텐츠 거점 공간으로 조성되는데 문화산업 융·복합센터, 70층 높이 랜드마크타워, 국립영화박물관, e-스포츠 경기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판타지아 부천'의 핵심 브랜딩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성아 부천시 경관디자인팀장은 "부천은 서울과 인천 경계에 있어 거주지를 두고 출퇴근하거나 통과하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었다"면서 "그러다보니 일찍부터 문화를 통해 부천만의 색깔을 만들어야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도시브랜딩으로 현재 영화와 만화의 도시 부천을 만들었고 도시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조 팀장은 "브랜드슬로건인 '판타지아 부천'을 도시 내 공간, 축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린 결과 현재 대부분의 시민들이 브랜드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다만 시대가 바뀌면서 통합브랜드 등의 변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리뉴얼(재단장)을 검토할 단계가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판타지아 부천'이 현재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전면개편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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