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20> 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입석

입력 2020.12.23. 18:15 조덕진 기자
토라자족의 입석. 뒤는 작은 똥코난(보리, 세안, 타나 토라자, 필자 사진)
자연과 사람, 지역 전체가 박물관인 토라자의 시간

세계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975년 여름, 나는 '토라자(Toraja)족의 입석(立石, menhir)'과 처음으로 만났다. '민족지고고학(民族誌考古學, Ethnoarchaeology)'이라는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발간된 서적의 일부였다. 필자는 에릭 크리스털(Eric Crystal). 그는 1968년부터 1971년까지 약 19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의 토라자족 마을에서 머무르면서 입석 세우는 과정을 민족지고고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민족지고고학은 고고학자가 고고학 자료의 해석을 민족지에서 찾아보는 데서 출발한다. 고고학 자료는 물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현대 민족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하여 고고학자료의 생성배경과 자료의 속성 및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물론, 현지에서의 관찰이 기본요건이다.

 물소 뿔이 빼곡하게 걸린 똥코난(엠바씨의 가옥, 레아퉁, 타나 토라자, 필자 사진)

당시 입석이란 나에게 친숙한 민속자료여서 영한사전을 꼼꼼히 뒤져보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무진 애를 썼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다 보내도록 내용은 파악조차 어려웠다. 단지 겉 문장 몇 줄만 또닥거렸을 뿐인, 이 미완의 독해를 해소할 실천의 기회를 얻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17년 12월, 운이 좋게도 나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 있는 토라자 부족의 마을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인천을 출발한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거쳐 술라웨시의 관문 도시 마카사르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토라자족의 마을까지는 약 240㎞. 차량으로 아스팔트와 자갈길을 반복하며 8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른 아침 창밖의 들녘은 온통 푸른 산과 벼가 자라는 계단식 논, 야자수 숲을 비롯한 열대 우림의 아름다운 이국적 경관과 특히 신선한 공기로 가득하였다. 석양의 해가 붉게 빛날 즈음 자동차는 붉은 황토물이 흐르는 강 위의 다리를 지나 똥코난(Tongkonan)이라는 게이트를 통과하였다. 이곳이 타나 토라자(Tana-Toraja), 즉 술라웨시섬의 중앙부, 토라자족의 생활터전임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토라자의 똥코난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통건축물이다. 대나무를 사용하여 만든 배모양의 지붕을 얹은 이 건축물은 고고학적으로 고상식주거(高床式住居)에 해당한다.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용 똥코난은 아랑(Alang)이라는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4개에서 8개 정도의 굵은 기둥을 세우고 나무 마루를 깔아 만든 똥코난은 2개 층이 일반적이다. 1층은 가족이 거주하고 2층은 장례를 기다리는 죽은 가족을 모시는 공간이다. 고상식 주거는 우리나라에선 청동기시대 마을에서 신전이나 창고건축으로 출현하지만, 단층으로 복원되며 지붕의 형태도 다르다. 처음 본 수많은 물소 뿔과 아래턱뼈가 빼곡히 장식된 똥코난의 정면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물소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축이며 엄청나게 걸린 뿔과 뼈의 숫자는 장례식의 풍요로움과 가문의 권위나 지위를 상징하는 물질들이다.

토라자 마을은 밭과 계단식 논이 펼쳐진 구릉의 하부나 평지에 위치하며 약간 떨어진 뒤쪽에 무덤이 있다. 이곳의 무덤은 석회암지대라는 지형적 특징을 이용한 가족무덤이다. 무덤은 바위 절벽에 굴을 파서 만들거나, 석회암 동굴 속에 관을 매달아 걸고, 또는 시렁 위에 얹기도 하며, 유아들은 살아 있는 나무에 구멍을 파고 수목장을 한 뒤 풍란 같은 꽃을 심어 놓기도 한다.

바위 절벽의 무덤들(레모, 타나 토라자, 필자 사진)

자연과 사람, 그리고 지역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인 토라자의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나는 여러 마리의 물소들과 돼지들이 공헌물로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1일차 엠바씨 부인의 장례식을(3일간 계속) 아쉬워하며 에릭 크리스털이 기록한 토라자족의 입석을 찾아 이동하였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리 깔림부앙(Bori Kalimbuang) 입석이었다. 현지에서 심부왕 바투(Simbuang batu)라고 부르는 이 특별한 입석들은 북부 토라자지역 세산(Sesean)마을에 위치한다. 높이 3m 정도의 큰 돌 24개, 중간 크기 24개, 그리고 1m 미만의 작은 것 54개 등 전체 102개의 크고 작은 입석의 무리들! 까르나크처럼 열 지어 있거나 하나씩 서 있는 우리의 입석과는 다른 구조이다. 이들 입석은 최소 7일간의 장례기간 동안 24마리 이상의 물소를 도살한 마을 지도자를 위해 세워진 거석기념물이다.

유아들의 작은 무덤-수목장(깜비라, 타나 토라자, 필자 사진)

지구상의 여러 곳에 분포된 입석(필자의 고고학 산책 16 참조)을 포함한 거석기념물들은 선사시대 이래 기술과 과학의 진보뿐 아니라 종교적 열정의 집합물이다. 이러한 거석기념물들은 한때 우월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부족들의 문화를 증거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그것이 과거의 것만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민족지고고학의 가설모델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토라자족의 입석들은 사후와 관련된 특별한 관념들, 예컨대 저승에서 영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안전하게 인도하며, 기념물을 세운 사람에게 영생을 보장하는 의식의 과정과 함께 세워진다. 물소는 언제나 그들의 부와 특권의 척도이다. 그리하여 종교적 의례, 특히 장례식에서 그들은 많은 물소를 도살하고 소비하며 신분을 과시한다. 지금도 의례의 절차를 대표하는 장엄한 장례식은 토라자의 전통적인 상호부조와 위계를 재생시키고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에 이바지한다. 그러나 내가 찾은 현지의 토라자는 점차, 신문물의 파도 그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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