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괜찮니, 괜찮아"

입력 2022.02.27. 15:16 도철 기자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닭싸움 하는 게 유행이었다. 때문에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닭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항상 그 때가 떠오른다.

먼저 소문난 친구와의 맞짱(?)이다. 겉보기에 크게 잘 할 것 같지 않았지만 많은 친구들이 피하거나 꺼려해 한번 겨뤄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한꺼번에 겨루는 방식이어서 대결은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이 다가왔다. OK목장의 결투도 아닌데 긴장하던 순간 무릎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서로 심하게 부딪혔다. 하늘은 잿빛이고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땀방울이 흐른다. 겨우 발을 놓치지 않았지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을 때 같은편 친구가 왔다. "괜찮냐, 목발과 부딪히고 살아남은 놈은 너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건이 이어졌다.

양팀 모두 한두 명 정도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힘들어서 잠시 고개를 숙이던 틈을 상대 친구는 놓치지 않았다. 무릎이 날아오는데 불행히도 안경을 쓰고 있던 눈으로 향했다. 쓰러지고 피나고 부서지고 난리가 났다. 겨우 정신 차려 수돗가에서 씻고 보니 멍든 눈 주변에 찢긴 상처가 제법 많다.

비상금으로 가장 싸고 비슷한 안경을 사고 일부러 밤늦게 집에 들어가 들키지 않았는데 월요일 아침 갑자기 담임선생님 호출이다.

개구쟁이처럼 놀기만 한 입장에서 선생님과의 대면은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말이 툭 던져진다. "괜찮냐, OO이 어머님께서 전화하셨더라!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다친 나를 걱정하던 친구가 집에 가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것이다.

눈에서 피가 났다는 말에 놀란 친구 어머니는 연락할 방법이 없자 선생님에게 전화하고 친구에게 안경을 새로 살 돈까지 보내셨다.

사실 그 날 사건은 문화 충격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다친 나보다 깨진 안경 값 걱정이 앞서 위로는커녕 혼나기만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어쩐 지 요즘 조용하더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유리창 깬 것이 엊그제인데 또 사고냐?" 우리 집 스토리에 익숙한 나에게 "괜찮냐"는 두 번의 말은 평생 기억 됐다.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많은 선수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쉬움을 삼켰다. "열심히 했으니 괜찮아"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해 본다. 도철 신문제작부부장 douls18309@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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