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농촌 일손 부족 덜어 준 '수정벌' 개척 농부

입력 2022.03.23. 19:14 나윤수 기자
[미래식량 곤충이 답이다]
⑤보성군 벌교읍 김정관
40대 중반 귀농해 전남 최초로 수정벌을 개척한 김정관씨

[미래식량 곤충이 답이다]⑤보성군 벌교읍 김정관

우리 농촌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이다. 이런 문제를 일찍이 깨닫고 벌로써 작물의 수정을 대신하는 수정벌을 전남에 처음 도입한 개척자가 김정관씨 (58).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에서 수정벌을 키우기 시작한 김정관씨는 전남 곤충 산업 그중에서도 수정벌에 관한한 독보적 존재다. 전남 수정벌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로 고령화된 농촌에서 일손을 돕고 소득도 올리는 일석 이조의 수정벌을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수정벌을 처음 도입해 미래 곤충 자산으로 키우는 데는 김씨의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이 빛을 발했다. 어렵게 탄생한 수정벌 하나 하나에는 김씨가 쏟은 정성과 열정이 기록돼 있다. 그의 기록은 전남 수정벌의 역사이자 역경의 현장이다.

고추밭에서 수정하고 있는 수정벌의 모습

◆불굴의 의지로 키워낸 수정벌

농촌이 고향인 사람들은 나이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누구나 한 번쯤 꾼다. 김정관씨도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잊지 않았다. 손씨의 귀농 이력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그는 실업계고를 거쳐 대학에서 일문학(한양대)을 전공했다. 평범한 무역회사 샐러리맨으로 시작해서 한때는 해외 법인장을 맡을 정도로 활약이 컸지만 그는 직장 생활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과위주 기업경영에 회의가 들어 40대 중반에 귀향을 결심하고 이곳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로 내려왔다.

고향으로 내려온 2009년께는 곤충 사육붐이 한창 불던 때였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도 중년 나이에 곤충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슨 곤충을 키울까 고민하다 애완 곤충을 선택했으나 시장 조사 결과 애완 곤충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고민 끝에 뭔가 새로운 품종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선택한 곤충이 수정벌이다. 당시는 수정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소득은커녕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수정벌은 양봉과 달리 호박벌이라 불리는 외래 종자여서 키우는 사람도 없었다. 농업진흥청 농업과학원에서 실험 사육했으나 기술 이전도 쉽지 않았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서양 뒤영벌로 불리는 수정벌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몇 마리 수입해 실험 사육한 것이 전부였다.

전국의 곤충 사육 현장을 누볐으나 현실은 척박했다. 수정벌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키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키운 수정벌을 판매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김씨는 스스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판매처를 만들기 위해 일일이 하우스 농가를 찾아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보성 수정벌은 유명세를 타고 전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 없는 길 찾다 아파트 한 채 날려

김씨는 수정벌만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오롯이 혼자 연구에 몰두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빛 조절, 먹이와 습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모든 게 생소한 것이었다. 연구와 실험이 거듭될수록 살림은 쪼들렸다. 거의 무일푼 신세로 전락했다. 김씨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없는 길을 혼자 찾는 막막한 신세로 아파트 한 채를 그냥 날려 먹었다"고 회고한다.

그래도 확신은 있었다. 김씨가 수정벌 사육지로 택한 고향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기후가 온화하고 인근 조성면의 방울토마토 시배지라는 상징성에다 딸기 같은 무밀 작물 비닐하우스가 많은 것도 수정벌 사업 성공에 믿음을 주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지금 김씨는 '수정벌 박사'로 통한다. 현재는 13년 노하우로 그만의 특화된 수정벌을 시장에 내놓고 안정적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가 키운 수정벌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추위와 바람에 강한 특징을 지녔다. 특히 흐린 날씨에도 활동성이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 하우스 200평 규모의 방울토마토 하우스를 수정시키는데 여왕벌과 일벌 80~100여마리가 들어있는 1통이면 수정이 가능하다. 벌 한 통은 하루에 3만개까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수정벌 한통 가격은 6만원 정도로 인공 수정하는데 드는 인건비 40만원 정도에 비하면 훨씬 싸게 먹힌다.

김씨가 처음 키울 때만 해도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한 통에 22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6만원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다. 그는 현재 연간 5천통 정도를 생산해 한해 수익 3억원 정도를 올린다. 수정벌은 토마토 딸기 멜론, 블루베리, 애플망고 등 각종 무밀 작물 수정에 없어서는 안 될 환경 지킴이이자 농촌 일손을 돕는 효자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김정관씨는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일손부족이 가장 큰 문제인 상황에서 수정벌은 반드시 필요한 곤충사업이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요즘에는 수정벌이 귀한 곤충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가 키우는 수정벌은 최고 품질로 전국에서 찾는 이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에는 택배로 공급이 가능한 세상이니 초창기와는 격세지감의 변화다.

수정벌 한통은 여왕벌 1마리와 일벌 80~100마리로 구성된다.

◆ 몸으로 체득한 기술 적극적 멘토

수정벌 개척자 김정관씨는 곤충으로 귀농하려는 이들에게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곤충이 더 이상 사육만으로 돈 버는 시대가 아니라는 충고다. 그는 몸으로 체득한 곤충인으로서 귀농자들에 대한 멘토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곤충으로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여주려는 의도다. 전남 곤충자원연구회 부회장직을 맡아 후배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다. 비록 초창기 어려움도 있었지만 고령화된 농촌 일손을 돕는다는 수정벌 농가의 자부심도 크다.

김씨는 곤충 사육 귀농 1세대로서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하면서 혼자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곤충연구회에서 활동 중이다"면서 "사육 농가가 함께 판매 개척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김씨는 "곤충 사업으로 돈 벌게 해준다"는 말만 듣고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그는 일단은 먼저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무슨 사업이든 판매를 어디에 할 것인지부터 고민하라는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스컴만 믿고 도전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말도 덧붙인다.

잘키운 수정벌 1통이면 200평 하우스 한 동을 넉넉히 수정할수 있다

◆ 미래식량자원으로 주목 가치 올라

지금 우리의 벌산업 이른바 꿀벌로 대표되는 양봉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월동을 지낸 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해남군을 비롯 인근 영암, 고흥, 여수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벌이 사라지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전남 곳곳의 꿀벌 집단 실종은 원인도 모른 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조차 원인을 모르는 현실이 답답하다. 다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꿀벌 실종은 양봉 사업을 넘어서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람에게까지 치명적이라는 경고다.

양봉 농가가 생계에 직접적인 영양을 미치기 시작했고 참외와 딸기 등 농가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정이 안되면서 기형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꿀벌이 사라지는 위기의 시대에 수정벌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수정벌이 미래 식량 자원으로 주목받으면서 김정관씨의 수정벌 가치도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오늘날 수정벌은 순전히 김씨 같은 개척자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곤충을 통해 새로운 농업미래를 설계하는 김정관 씨야말로 미래 식량산업의 개척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벌이 꿀을 채취할 수 있는 밀원(蜜源)숲을 복원하는 것이다. 김정관씨 같은 개척자 정신으로 하루빨리 생태계 복원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벌의 수난시대! 수정벌이 생태계를 지키는 보루로 떠오른 지금 김씨의 혜안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나윤수기자 nys2510857@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2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