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키운 꿈 꾸준히 다져가는 20대 청년 농부

입력 2022.04.06. 18:50 선정태 기자
[농촌 창업 청년들 성공스토리]
⑤ 담양 시골과 작은농부 조명현 대표
담양 시골과 작은농부 조명현 대표.

[농촌 창업 청년들 성공스토리] ⑤ 담양 시골과 작은농부 조명현 대표

며칠 동안 올해 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 보수 작업을 마쳐 피곤한 상황이지만 아직 앳된 얼굴의 26살 청년의 얼굴은 기대와 자신감, 생기로 넘쳐났다.

이 청년은 지난 해 7월 담양에 자리를 잡고 아직은 낯선 열대과일인 패션푸르츠 농사를 시작했다. 다양한 맛과 향이 난다고 해서 백향과라고 불리는 이 과일을 선택한 청년은 ‘농사가 인생의 전부다. 인생을 걸고 있다’고 당당히 밝혔다.

키 180㎝가 훌쩍 넘는 청년 조명현씨가 세운 ‘시골과 작은 농부’라는 농업법인 명칭은 늘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마음으로 2행시를 짓다 만든 이름이다.


◆10대부터 키운 농부·농촌의 꿈

중학생 시설 조씨는 '앞으로의 꿈'이 또래들과 달랐다. 친구들은 배우나 탤런트, 유튜버 등 유행하는 직업을 꿈꾸는 반면 그의 꿈은 수의사와 소를 키우는 농부였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들은 그의 꿈을 말리거나 비웃기 일쑤였다. '농사짓지 마라. 그 더러운 일을 왜 하려 드느냐', '농부는 못 배운 사람들만 하는 일 아니냐', '소똥이나 치우면서 살거냐'는 거침없고 어리석은 10대들의 핀잔에 상처받기도 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오히려 '10년 후에 보자'며 조씨의 의욕을 불태우는 자양분이 됐다.

그렇게 그는 고등학교는 농업 마이스터고로, 대학도 농업대학으로 진학해 축산 관련 전공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이내 진로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쳤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조씨는 중학생 시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픈 강아지나 동물을 치료하는 장면에 푹 빠져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갖자'고 결심, 수의사가 되기로 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소와 돼지, 염소 등 가축의 새끼 출산 장면에 감동받아 수의사의 꿈을 가졌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은 기대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출산과 치료보다는 도살 관련 수업과 실습을 다니면서 동물을 죽이는데 강한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진로 변경을 고민하다 작물을 키우는 것으로 정하고, 대학을 전주의 한국농수산대학으로 진학해 본격적으로 농부의 꿈을 키웠다.

◆어리지만 어엿한 10년차 농부

그렇게 대학에 진학한 조씨는 1학년 때 농업 선진국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농업이라는 전공 특성상 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현장 실습을 많이 다녀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1년 동안 고생하면서도 농부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2년을 공부한 후 3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나섰다.

어떤 작물을 키워야 할지 고민하다 고도의 전문 기술없이 혼자서도 키우고 운영할 수 있는 작물이라는 판단에 패션프루트를 선택했다.

전국 100여곳의 농장에서만 키우고 있을 정도로 아직은 낯선 과일이라 정확한 재배 방법이 전파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병충해가 없는데다 특별한 양분없이 물만 줘도 잘 자란다는 특징이다. 여기에 단맛 일색인 과일 속에서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도 매력적인데다 저장성이 좋고 껍질까지 활용할 수 있는 '버릴게 없는' 과일이다. 조씨가 아직 여력이 안돼 원물 판매만 가능하지만, 다양하게 가공해 판매할 수 있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가 됐다.

하지만 열대과일인 탓에 겨울 버티기가 힘들어 냉해가 심해지면 하루만에 죽기도 한다는 단점도 있다. 침수 피해에도 약하다. 장점과 단점을 고려하면 쉽게 도전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의 도전의식을 키웠다. 조씨는 "젊어서 무모하고 과감한 것 같다"며 "중학생 때부터 수의사와 농부를 함께 꿈꿨고, 진학과 유학도 다녀왔다. 젊지만 농사일한지 10년이나 된 어엿한 농부다"고 강조했다.


◆고교생 때부터 자금 마련

조씨의 뽀얀 얼굴은 고생하지 않고 공부만 한 청년으로 보이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금을 모았다. 형편 상 가족의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조금씩 저축한 것이다.

조명현 대표가 최근 수확한 패션푸르츠를 선별하고 있다.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는 일을 못한다며 "그렇게 일 할거면 당장 그만둬라"며 많이 혼나 혼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독일 유학 후에는 나주 배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작물 키우는 법을 배웠다. 대학교 3학년 때 패션프루트를 키우기로 결심하고, 해남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노하우를 빼앗길까 두려워 문전박대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농가에서 일을 도우며 패션프루트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5년여를 견습하다 2019년 그 농가 주인이 농지 일부를 빌려 줘 처음으로 자신의 농장을 갖게 됐다. 오랜 기간 연습과 경험을 쌓았지만 여전히 초보 농부였던 조씨는 당연하게도 실패부터 맛봤다.

남의 농장을 보조로 돕는 것과 자신의 농장을 직접 키우는 차이가 컸던 탓이다. 이듬해 전년의 실패에서 벗어나 작황이 좋았다. 농장주는 조씨 혼자 키워도 되겠다는 판단에 '농장을 구해서 키워보라'는 허락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자금에 대출 받아 담양에 1천200평의 땅을 구해 800평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자신이 키우던 패션프루트를 옮겨 심었다.

패션푸르츠 과실.

◆10년 후 계획까지 준비 착착

패션프루트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는 과일이다. 일조량이 많은 여름에는 단맛이 강한 반면 겨울에는 신맛이 강하다. 또 나무이면서도 한 해 키운 후 뽑아버리고 새 나무를 심어 수확한다.

이런 특성을 파악한 조씨는 다른 농부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우선 매년 새 나무를 심는 대신 5~6년 정도 키울 계획이다. 또 자신만의 작부 체계를 만들고 비료 조합도 연구하면서 겨울 열매의 당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도 시도 중이다.

조씨는 "패션프루트는 공판장 판매가 전혀 되지 않아 판매처 찾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며 "개인 거래나 SNS 등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그는 "당분간은 여름 재배와 겨울재배의 맛을 비슷하게 만들고 원물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3~4년 후 잼과 청, 젤리도 판매도 계획 중이다"며 "판매가 어느 정도 되는 7~8년 후 쯤이면 체험농장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농업 법인이어도 지금은 혼자 관리하지만, 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을 만큼 농장을 더 넓히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들을 꼭 실현시킬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농사 시작, 제가 가르쳐 드려요"

조씨는 젊은 세대 답게 다양한 온라인 활동에도 익숙하다. 과일 판매를 위한 여러 SNS를 잘 활용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경험을 영상과 사진으로 하나하나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그의 블로그는 비닐 하우스를 짓는 과정이나, 비닐하우스를 짓는데 필요한 정보, 지하수 설치 노하우, 초보 농부로 느끼는 일기까지 올리고 있다.

조씨는 "귀농하는 분들께 보다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며 "1년차 초보 농부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 2년차 농부로서의 느낌을 비롯해 앞으로 3년차, 4년차 등등 계속 쓰면서 한분이라도 더 도움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패션프루트는 아직 시세가 정해지지 않아 판매자가 정한 가격에 판매되지만, 비싸게 팔지 않을 것"이라며 "맛있는 과일을 키워서 손님들이 오랜 기간 꾸준히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다. 가격보다는 맛있는 과일을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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