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사라지는 것들

@정지아 소설가 입력 2021.08.22. 13:38

도시에 살면 계절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비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도시인들에게 비는 그저 출퇴근하기 귀찮은 일일 뿐이다. 도시 사람들은 날이 얼마나 가문지도 모른다. 덥지 않고 춥지 않으면 만사 오케이다. 시골에서는 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바로 보인다. 가물면 고춧잎 호박잎이 타들어간다. 비가 내리면 시들시들하던 작물들이 금세 생기를 되찾는다. 올 여름, 유난히 덥고 가물었다. 날이 너무 뜨거워 호박도 오이도 작년의 반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다. 집 앞 작은 텃밭을 보고 있으면 기후변화의 위기가 먼 데 일이 아니라 내 발밑에까지 다가왔다는 게 실감 난다.

몇 년째 장마를 겪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마는 당연히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온 집에 습기가 차 꿉꿉하고, 방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아 비 맞은 개 냄새 같은 것이 났다. 견디다 못하면 어머니는 방에 군불을 지폈다. 초여름 더위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견뎌냈던 그 시간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듯하다. 이제 장마 대신 아열대의 스콜이 쏟아진다. 생각해보면 사라진 것은 장마뿐만이 아니다. 길에 흔히 보이던 쇠똥구리, 여치, 장수하늘소, 굼벵이 같은 것들도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도시로 나가 편리와 편안에 길들여지는 동안 나의 유년을 풍요롭게 했던 많은 것이 사라졌다. 메기며 은어, 피라미, 참게, 가재, 어린아이 손으로도 한 시간이면 대야 가득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 내 고향 반내골 계곡에는 모기떼만 극성이다.

1930년대 지구 인구는 20억 정도였다. 54년에는 27억, 60년에는 30억, 78년에는 43억, 97년에는 59억, 2020년에는 78억, 이대로라면 2100년 세계 인구가 110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미개척지 면적은 54년 64%에서 2020년 35%로 줄었다. 그만큼의 숲이 사라진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가 변화한다. 인간이라는 단일종이 대자연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면서 생물다양성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졌고, 자연은 그만큼 피폐해졌다. 자연이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인간은 오늘도 자연을 파괴하는 중이다.

40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 상 지금까지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마지막 대멸종은 6천500만 년 전이었다. 운석과의 충돌로 공룡을 비롯한 75%의 종이 멸종했다. 소수의 종만 생존하여 생태계를 새로 구성했고, 이 홀로세 시기는 곧 인간의 시대이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인류문명이 꽃 피었던 홀로세의 대멸종이 이미 시작되었고, 이번의 대멸종을 야기한 것은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금대로라면 2030년대에 아마존 우림이 완전히 파괴되어 건조한 대평원으로 바뀔 것이고 동물 종은 대부분 파멸을 맞이한다고 한다. 북극의 여름에는 얼음이 모두 사라질 것이고, 2040년에 이르면 북극의 땅이 모두 녹으면서 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2050년에는 바다의 온도가 오르면서 산호초가 모두 사라져 바다 생물이 대부분 멸종되고, 2080년에는 농지로 변했던 땅이 황폐화되어 식량위기가 닥치고, 2100년에는 지구 온도가 4도 올라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되고 인간마저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한다고 한다. 2100년이라면 불과 80년 뒤다. 대부분의 동물 종이 멸종한다는 2030년대는 불과 10년 뒤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기후위기는 아직도 먼 나라의 이야기거나 먼 뒷날의 이야기다.

며칠 전 민물매운탕을 잘 하던 식당에 들렀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민물매운탕 중 최고였다. 더위 탓에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올까 싶었는데, 메뉴판에 민물매운탕이 사라지고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섬진강에서 직접 잡은 민물고기로 요리를 해왔는데 더이상 잡히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했던 것 중 하나를 또 잃었다. 뿐이랴. 여름이면 멱 감던 섬진강도 오래전부터 죽어가는 중이다. 자연 속에 있어야 죽어가는 자연의 비명이 들린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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