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달빛교류와 동반성장

@박성수 광주전남지역혁신플랫폼 총괄운영센터장 입력 2021.10.31. 14:03

지난 1997년 어느 날로 기억된다.당시 대학본부에서 기획처장 보직을 맡고 있던 필자에게 지역의 유력 신문사 편집국장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사연인즉, 영호남지역의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비법이 있다는 것이다.

들어 보니 내용은 이렇다. 광주와 대구의 학생들이 상대지역 대학에 다닐 경우, 4년간 수학하도록 등록금 전액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장학금을 주자는 것이다. 유학 와서 부대끼고 살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남녀 대학생들은 정들면 결혼도 하게 되어 영호남 커플들도 탄생하게 되리라는 것.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갈등도 해소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듣고 보니 공감이 가는 바 컸지만, 현실적으로 4년은 힘들다 싶었다. 1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우선 경북대와 전남대 간의 교환학생제도를 만들게 되었고, 그 이듬해부터 120명의 학생이 오가게 되었다. 나중에는 울산대까지 확대되었으며 총장자제부터 보내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덕분에 학생들 간에 인기가 많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교환학생제도는 운영되고 있지만, 초창기보다는 열기가 식었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3년 가을이었다, (사)한국산학협동연구원을 이끌던 필자는 산학협력을 통한 영호남교류를 제안하였고, 이에 화답한 대구 (사)산학연구원의 기업인들과 교수들 40여 명을 광주로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두 지역 회원들은 대학과 유관기관, 그리고 산업체를 방문하는 1박 2일의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며 아름다운 달빛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듬해는 광주의 회원들이 대구의 초대를 받아 답방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로부터 19년 세월이 지난 이번에는 대구팀들을 데리고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과 강진군 일원을 찾아 영호남 상생의 기틀을 다졌다. 노사상생의 모델, 광주형 일자리의 GGM을 찾은 영남지역 방문단은 부러움을 갖고 최신 스마트 공장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어서 남도답사일번지 강진군으로 내려가 영랑생가, 시문학파기념관, 사의재를 둘러본 다음, 영호남산학협동포럼을 가지며 양 지역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튿날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다산초당을 찾아 정약용선생의 실학사상을 공부하였고, 순천만 못지않게 보존되고 있는 강진만의 생태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고려청자 박물관에 가서 상감청자를 보며 남도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즐겨 말하는 달빛동맹은 이미 90년대부터 시작된 두 지역의 활발한 교류가 마중물이 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말하고 싶다. 물론 영호남의 여러 기초자치단체, 사회단체와 기관들이 나름대로는 교류를 이어 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간 주도의 교류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발적으로 지역 갈등을 해결하면서 상생하겠다는 생각으로 의기 투합되었을 때 동반성장의 길은 훨씬 쉽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광주와 대구는 200여 km밖에 안 되는 거리임에도 교통인프라는 참으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늦게나마 1984년에 개통된 88올림픽고속도로는 2차선에 불과하여 전국에서 교통사고 많기로 악명높았던 그 당시를 기억할 것이다. 30년을 넘긴 2015년에야 4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으니 영호남간의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았겠는가. 전남대 교류학생들을 실은 버스가 대구로 가다가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했던 그 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며 온다.

최근 양 지역 시도민들의 염원인 달빛고속철도 건설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 서라도 지혜를 모아 최단 시일 안에 성사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국토부의 4차 국가철도망계획(2021~2030) 중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사업은 본격적인 착수에 앞서 경제적 분석을 하는 절차가 있긴 하지만 조기착공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광주시와 대구시가 함께 적극적으로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이 광역화되면서 날로 위축되고 있는 영호남의 비수도권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며 공동전선을 펴가고 있다. 특히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행정통합과 부산, 울산, 그리고 경남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메가시티 전략은 더없이 중차대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역지사지하며 서로가 머리 맞대고 영호남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해가야 하기에 이번 달빛교류는 매우 뜻깊은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박성수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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