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를 그만 두고 4년 가까운 시간을 변호사로 살고 있다. 어떤 일들은 가끔 아무런 논리적 대안도 없는 넋두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어쩌면 이 글이 이 지면을 낭비하는 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개인적인 소회라도 써서 누군가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변호사는 대부분 의뢰인을 만나 1시간 남짓의 상담을 하고 사건을 맡을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담을 할 때는 모든 것이 명확한 듯 보여 선임하기로 마음 먹었던 사건 중 상당수가 다시 들여다 보면 내가 제대로 알았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 중 어떤 것은 의사소통의 오류나 법적으로 중요한 부분에 관한 당사자의 설명 부족에서 기인하지만, 어떤 것은 내가 아직 부족해서임을 느끼게 된다. 송사는 사람과 세상에 관한 것인데, 내가 가진 것은 법률적 지식일 뿐,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부는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선임할 사건을 고르기 위한 사전 절차도 없이, 변호사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판사는 위와 같은 공부 부족으로 인한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서 판사는 늘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판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판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당시 나는 세상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충만해 있었다. 판사를 하는 동안 세상을 잘 알고 재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노력도 꽤 했던 것 같다. 판사를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사건에서 사건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런 어려움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유사한 사례를 찾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그 사례가 내린 결론에 사건을 맞추어 가려는 유혹을 느끼는 일이 잦아진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몸에 베어 있음을 깨닫자 나는 판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로서 법대 아래에서 재판을 받고, 사건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를 만나 보니 상대적이나마 사건의 내면을 판사 때보다는 더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건의 내면에 관한 주장은 늘 사건의 쟁점에 관한 주장이 아니지 않느냐는 법정의 논리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이는 송사의 당사자에게는 판사가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만다. 나 역시 법대 위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대응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에 대해 딱히 대응할 논리도 없다.
그래서 변호사 등으로 사건의 내면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을 판사로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이제는 법조 영역에서 일정 기간 일한 사람만이 판사로 채용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경험의 문제이기보다는 태도의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판사를 하려는 사람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가 없다. 누가 적임자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장기적 숙제다. 그러나 그것이 장기적 숙제라고 해서 지금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사법연수생들은 모두 법조윤리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법조인이 어떤 태도를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토론하던 과목이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법조윤리는 학점이 부여되거나 시험을 치루는 과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연히 모든 사법연수생들이 그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지도 않다.
한낱 변호사 따위의 불경스러운 제안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법조윤리 과목처럼 법대에서 재판을 하는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치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필자는 그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할 수도, 방법이 있더라도 실현할 수도 없는 사람인지라 위 제안은 무책임하기도 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분이 사법행정을 책임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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