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신호등이 꺼졌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4.11.10. 17:36

"신호등이 꺼졌다." 최근 며칠간 독일 관련 뉴스에 등장한 표현이다. '신호등 연정'은 독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상징 색이 각각 빨강, 초록, 노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사회민주당 소속의 숄츠 총리가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던 자유민주당 소속의 린트너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그가 연립정부 구성 당시의 합의에 어긋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로써 연립정부가 무너졌다.

숄츠 총리는 애초에 내년 예산안 처리를 마치고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나서 내년 초에나 자신에 대한 의회의 신임 여부를 물을 계획이었다. 그때에도 의회의 다수가 자신을 여전히 지지하면, 비록 '신호등 연정'은 깨졌지만, 자신이 정부를 계속 운영해 갈 생각이었고, 만약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내년 3월쯤에나 조기 총선을 실시해 새롭게 정부를 구성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소수가 정부를 운영하는 것은 국가에 이롭지 않다"며 성탄절 전에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신임투표와 조기총선의 시기를 두고 당분간 각 당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연립정부 구성 과정은 꽤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나의 정당이 단독으로 의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이제 거의 필수가 되었다. 한두 달이 걸리는 지난한 협상을 통해 전화번호부 두께의 두툼한 합의서가 만들어진다.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하는 각 정당의 정책적 차이를 매우 세세한 수준까지 조율하여 합의한 뒤 각 당의 승인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표들이 서명한다. 지도부에 결정권이 위임되어 있는 정당이 있는가 하면, 당원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정당도 있다. 그러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애써 합의를 했어도 이번처럼 3년 만에 그 합의가 깨질 수 있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합의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합의를 깨기도 한다. 합의를 어긴 쪽에 도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새롭게 다수의 합의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수의 합의는 정부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실행하는 정책이 수용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부는 아쉽게도 절대적 다수의 합의에 근거해 구성되지 않는다. 상대적 다수의 합의만으로도 정부가 구성될 수 있기 때문에 정당성의 측면에서도 취약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기가 제도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정부를 운영하는 대통령은 가급적 자신이 당선될 때 얻은 지지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즉 절대적 다수의 합의를 발견하고 그에 근거해 정부를 운영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소수가 정부를 운영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당연히 "국가에 이롭지 않다." 이른바 '촛불항쟁'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며 정부를 운영했고 '촛불연합'에 참여한 다른 국민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상대적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다.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 사이에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합의는, 지난 2년 반 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와 지난 4월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를 미루어 볼 때, 이미 깨졌음이 분명하다. 신호등에 비유하자면 그저 노란색 불만 꺼진 것이 아니라, 초록색 불도 꺼졌고, 빨간색 불도 곧 꺼질 것처럼 깜빡거리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해하지 않겠다고, 전광판을 보며 야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오히려 자신을 '공만 보고 야구하는' 선수로 묘사하며 정당화한다.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선거 때만 기울이면 될까? 선거가 끝나고 일단 당선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은커녕, 선거 때 자신을 선택한 사람의 지지조차 유지할 생각을 안 해도 될까?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은 과연 그런 것일까? 과거의 독재자는 대통령의 임기 제한 규정을 고쳐 연임하려고 했는데, 현재의 독재자는 임기 제한 규정을 방패 삼아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져도 변화를 거부하며 끝까지 임기를 마치려고 한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신호등은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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