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촛불과 응원봉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4.12.15. 18:52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또다시 촛불을 들지 몰랐다. 이미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한 역사가 있기에 그 많은 비리와 국정의 난맥에도 촛불을 들지 않았다. 참고 참았다. 그러나 계임이 포고되고 국회에 군인이 난입하자 국민이 직접 나섰다. 탱크를 몸으로 막고, 군인들을 껴안았다. 그리고 다시 촛불을 들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거리에서 만난 건 '낯선 것'이었다. 익숙한 '촛불'이 아닌 '응원봉'이었다. 각 아이돌을 상징하는 응원봉이 탄핵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로 장식되어 빛나고 있었고, '다만세'(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아파트'(로제)와 같은 K-Pop이 울려 퍼졌다. 익숙한 운동가요나 개사곡이 아닌 아이돌 팬클럽이 주도하는 K-Pop 공연과 같은 새로운 문화, 우리의 집회와 문화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집회가 달라진 데는 주도하는 세대가 바뀐 이유가 가장 크다.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그룹은 촛불을 주도한 586그룹과 밀레니엄 세대가 아닌 Z세대(1990년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 세대)와 '알파 세대'(2010년 이후 탄생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4~50대가 아니라 10대와 20대가 중심에 서고 3~40대가 뒤를 받치는 형국이다. 그렇기에 노래가 바뀌고 집회의 형태와 문화가 바뀌었다. 더 즐겁고 재밌는 축제의 장으로, 그러나 더 강한 진지함으로 탄핵을 외치는 집회의 장으로 바뀐 것이다. 기성세대가 아닌, 이제 막 사회 초입에 들어섰거나 초입에 들어설 세대가 집회를 주도하는 문화, 어떻게 이런 문화가 생긴 것일까?

이들 세대가 시위를 주도한 데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참사가 있다. 양대 참사에도 국가는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는커녕,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거나 너희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들은 스스로 일어나 책임지고자 한다. 더는 방관하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K-Pop을 중심으로 한 K-Culture 또한 강한 영향을 미쳤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K-Pop은 지금도 이들 세대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시위에 참석 못 한다고 '선결재'를 날리는 문화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더 글로리', '오징어 게임', '학교 시리즈'와 같은 많은 K-드라마를 통해 일상의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관을 맛봤다. 불의에 맞서 정의가 이기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쾌감'을 맛본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정의에 민감하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이들은 거리로 나선다. 부당한 국가 권력 찬탈행위에 맞서기 위해.

SNS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언어에 강한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보여주고자 이상한 포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아닌 '럭키비키'(나에게 행운이 있다는 뜻)를 외치는 이들 세대는 지금의 어려움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행운이라 말한다.

탄핵이 부결되는 그 순간 화난 표정으로 돌아서는 기성세대와 달리 더 큰 소리로 노래하고 즐기며 집회의 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 이들은, 이번 주 못하면 다음 주에 하면 되고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하면 된다고 말하는 초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집회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한 순간까지 즐겁게 이어간다.

기후 위기를 포함해 여러 사회 의제에 대응해 본 경험 또한 손쉽게 집회에 나오는 이유다.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힐난에도 지구 위기를 외쳤고, 어른들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이들을 당당하게 만든다. 바로 내 문제이며 내가 살아갈 나라의 문제이기에 지금도 당당하게 나선다.

혹자는 아이들이 '인스타 찍으러 가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럼 어떤까. 이 또한 새로운 시위고 집회의 문화 아닌가. 지난 40년간 우리의 정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문화는 변했다. 세대도 변했다. 지금 이 세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다. 그들이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 서 있던 그 청년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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