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곳곳에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AI컴퓨팅 센터 입지가 사실상 해남 솔라시도로 정해진 이후 지역 풍경이다.
광주는 충격과 허탈, 반발로 격앙돼 있다. 전남은 '표정관리'랄까, 한껏 기대에 차 있으면서도 대놓고 좋아할 수 없는 모양새다. 한 뿌리, 이웃 도시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오랫동안 AI컴퓨팅센터 유치에 공을 들여 온 광주시의 입장은 십분 이해가 간다. 대통령 공약이었고 국정 5개년계획 광주 1호 사업이었으니, 왜 격앙치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분노보다는 설득, 반발보다는 협의를 거쳐 광주·전남 AI 상생벨트라는 미래지향적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 또한 지역의 요구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는 것이 대명제다.
AI컴퓨팅센터는 대한민국이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인공지능 학습과 서비스 개발을 위한 국가 인프라로 2028년까지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천장 이상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다. 1엑사플롭스(EF) 이상의 AI 연산 능력을 갖춘 초대형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민관 출자와 정책금융 대출 등을 합쳐 총 2조5천억원이 투입되는, 말 그대로 메머드급이다.
광주를 비롯해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앞다퉈 유치에 나섰고 결과는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전남 해남 솔라시도의 몫이었다.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공모에 참여한 삼성SDS 컨소시엄이 해남 솔라시도 데이터센터파크 부지를 사업 후보지로 선택한 것이다. 광주와 전남, 전북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던 삼성SDS 컨소시엄은 결국 부지 비용과 냉각수, 전력망 등 경제성 원리에 따라 솔라시도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발표까지 금융심사, 우선협상대상기업 선정, 특수목적법인 설립 등의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해남 솔라시도가 최종 입지가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20년 미완의 기업도시 솔라시도가 오픈AI-SK그룹의 AI데이터센터에 이어 국가AI컴퓨팅센터까지, AI.재생에너지 신도시로 떠올랐다.
전남도로서는 벅차오르는 순간이지만 드러내놓고 기뻐할 수도 없다. 그동안 국가AI컴퓨팅센터 유치에 '올인' 해왔던 광주시의 입장을 고려해서다.
광주로서는 속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은 이재명 대통령의 광주 공약사업이었다. 새정부 출범 후 국정과제에도 '고성능 반도체 집적 국가AI컴퓨팅센터 광주 조성'이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광주시는 SK가 민간데이터센터 입지로 광주와 전남을 저울질 할 때 일찌감치 손사래를 쳤다. 기본적으로 전남에는 SK의 민간데이터센터, 광주에는 공공형인 국가AI컴퓨팅센터로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뒤늦게 국가컴퓨팅센터 경쟁에 뛰어든 전남도가 후보지로 선정되자 멘붕 상태에 빠진 것이다.
광주지역 각계의 반발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광주를 AI 선도도시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져야 하고 국가AI컴퓨팅센터 입지 선정이 민간기업 논리에 좌우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광주시는 "대한민국이 AI 3강으로 도약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광주에 국가AI컴퓨팅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는 AI 전문가와 산업계는 물론 대통령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반발은 사태만 악화시킬 뿐, 지금은 미래지향적 상생모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광주와 전남은 어차피 한 뿌리이고 AI산업의 특성상 광역 단위의 메가 샌드박스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광주는 국가데이터센터를 비롯해 AI 관련 핵심 인프라와 집적화된 기업, 인재육성기관 등의 장점을 살려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창업 중심으로 가고 전남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AI컴퓨팅 기반 조성에 집중하는 이른바 '상생형 AI 벨트' 모델이다. AI연구소 설립이나 해남의 민간 영역 데이터센터, 국가AI컴퓨팅센터의 GPU를 일정 부분 분산해 광주에 집적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기존 국가데이터센터의 기능과 용량을 대폭 확충하는 안도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정부의 호남 접근법이다. 과연 대통령의 공약대로 광주를 AI선도도시, 전남을 AI.에너지 수도로 만들 의지와 실행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여당의 대표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광주에서 증명됐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을 분명히 기억한다. 광주와 전남이 AI 관련 큰 그림을 그린다면, 이재명 정부 또한 여기에 화답해야 한다. 정무수석을 통해 '안타깝다'고 표현하는 정도로 대강 눙치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됐뜬 대통령의 공약사업이 어그러졌다면 여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들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한울타리다. 그런데도 유체이탈식으로 "대통령 공약사업이 이행되지 않아 깊은 유감"이라며 정부와 대통령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그에 앞서 광주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게 우선 아닌가. 이래저래 민심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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