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양궁인생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소중했던 경험·열정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어

"선수로서 양궁인생은 마감하지만, 광주양궁을 위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특영(광주시청)이 24년간 함께했던 활을 놓는다. 지난 23일 광주국제양궁장에서 만난 이특영은 길었던 선수생활을 되돌아 봤다.
이특영은 "올해 초부터 선수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랜 시간 부상과 재활과 싸우며 많이 흔들렸다"고 밝혔다.
두암초 4학년 때 양궁지도자인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활을 잡은 이특영은 중학교 2학년 때 첫 출전한 소년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이특영은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개인전 우승자 자격으로 참가한 그해 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특영은 그때를 양궁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이특영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박성현, 윤미진 언니를 제치고 1등을 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특영은 광주체고 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여러 대회를 석권했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신궁의 반열에 오른 이특영은 2008년 실업무대(광주시청)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양궁만을 오직 최선이었던 이특영에게 주위의 기대는 독이 됐다.
실업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한 훈련을 이어가던 그녀는 어깨부상이라는 악재를 맞는다.
힘든 치료와 재활 속에서도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해 천재성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이특영은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1차선발전을 3위를 차지. 2차선발전에서 6위만 차지해도 리우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부상 악재 속에 태극마크를 놓쳤다. 그는 이 순간이 양궁인생서 가장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이특영은 이날 인터뷰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했다.
이특영은 "선수가 사대에서 활을 쏘는 순간도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라며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지금 문득 고등학교 졸업 후 선택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고 밝혔다.
화려했던 고교시절 그녀를 향한 LH 등 국내 유수의 실업팀 구애는 끈질겼다.
'많은 연봉과 평생직장'이라는 좋은 조건이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지만, 당시 '광주 출신이면 광주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야한다'는 주위에서의 무언의 압박은 그녀를 광주시청이라는 목적지로 끌고 갔다.
이제 광주시청에서 15년 추억을 뒤로하고 신분 보장 등 퇴로마저 없이 마치 쫓기듯 떠나야하는 그녀에게는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진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특영은 "그래도 광주시청 선수로서 15년은 선수로써 최선을 다한 값진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는 직장실업팀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거나 장기근속을 한다면 신분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 줘야한다. 무조건 연고지를 주장하며 마치 당연한 듯이 장기적인 대책 없이 선수들을 요구하기보다는 후배들의 선택도 때로는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특영은 "지난 24년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학생시절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이 없다는 게 때로는 슬프다. 어린 시절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선수로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재혁기자 leeporter5125@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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