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토지주택연구원
주택주거연구실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1920년대 르 코르뷔지에는 효율성을 중시한 건축과 도시 설계가 시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는 1961년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이러한 기능적 분리와 획일화가 도시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죽이고,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통찰은 이후 복합 용도 개발과 도시 재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는 제이콥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 코펜하겐과 캐나다 밴쿠버는 보행자 중심의 거리 설계를 통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파리는 '15분 도시' 개념을 도입해 시민들이 도보로 15분 내에 생활 필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심에 거주하는 고소득 근로자들에게 사회적 활동과 여가, 가족과의 유대감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저소득층은 외곽으로 밀려나며 긴 출퇴근 시간과 혼잡한 대중교통에 시달리게 했다. 이는 도시가 점점 더 포용적이지 않은 구조로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택은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1970~80년대 한국과 비교해보면, 현대의 생활 방식은 훨씬 더 다양해졌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에 함께 살고 있다. 가족 구조 변화, 자연 재해 증가, 전염병 발생, 자율주행 기술 도입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도시 주거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주택 가격 상승과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소형 주택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이웃 간의 단절로 고립감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주거 문제 해결은 도시 발전의 첫걸음이다.
도시는 부유층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도심에는 저렴한 주택이 부족하며, 다양한 계층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심 내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이 필수적이다. 엔리케 페날로사 전 보고타 시장은 슬럼가 주민들에게 고품질의 대중교통과 문화 시설을 제공하며, 모든 시민이 도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 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제이콥스가 강조한 다양한 계층과 기능의 혼합은 주거 문제를 넘어 공정한 삶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계층 간 이동을 촉진하여 사회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낸다.
급변하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요구에 대응하며 도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중 하나는 모듈러 주택이다. 모듈러 주택은 OSC(Off-Site Construction, 탈현장) 공법을 활용해 공장에서 부재의 80% 이상을 사전 제작한 후 현장에 운반해 설치하는 주택을 말한다. 건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지속 가능성과 적응성을 제공한다.
모듈러 주택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설계가 가능하며, 기술집약적인 건축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다. 모듈러 주택은 물리적 유연성을 갖추어 쉽게 재조립하거나 이동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도시 형태에 맞춰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기둥식 구조로 되어 있어 공간의 치수나 창문 크기 및 위치 등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하여 제작할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결정하며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 안에서 세포들처럼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 도시는 에너지 흐름을 측정하고 관리하면서 점점 유기체처럼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모듈러 주택은 단순히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8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 공급과 주택 소유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504만 가구로 전체의 26%, 20년 이상 된 주택은 1천49만 가구로 54%를 차지한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기준으로 기존 아파트가 평균 27년 동안 사용된 후 신축 아파트로 교체된다고 밝혔다.
일부 주택은 철거 후 신축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시기에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발전하며 공간의 재편이 이루어지던 가운데, 르 꼬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와 동양 건축의 공간 개념을 융합해 기둥식 구조와 근대 건축 원칙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주택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 후 도시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과 사회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는 혁신적인 기술을 적극 도입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를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경제적 약자도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공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의 양극화와 주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도시의 미래는 단순히 물리적 확장에 있지 않다. 진정한 발전은 내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계층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모듈러 주택은 이러한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가 함께하는 포용적인 도시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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