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이 만난 사람

"왜 또 건설업이냐고?" 고정주 나영산업 회장

입력 2021.10.14. 16:43
[조영석이 만난 사람⑯]
"베풀고 나누고자 돈 벌면서 더 행복해졌다"
빈농의 칠남매 중 막내로 자라
배고픈 설움 면하는 게 목표
중·고교 장학금으로 겨우 마쳐
이젠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줘야
광주에서 최초로 지식산업센터 ‘KBI하남’ 준공을 완성한 고정주 ㈜나영산업 회장이 무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걸어 온 40년 중소기업운영의 마침표를 지식산업센터로 갈음하고 싶었다” 며 “시대의 산업트렌드는 ‘경박단소’ 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할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오세옥기자 dkoso@mdilbo.com

"제조업으로 그 만큼 돈을 벌었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벌려고 건설업에 까지 뛰어드느냐." ㈜나영산업 고정주 회장(74)이 광주 하남산단에 지식산업센터를 짓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물욕'의 눈초리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의 건설업은 아직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고, 건물을 지어 입주자에게 분양한다는 측면에서 지식산업센터는 낯선 이름, 또 다른 형태의 건설업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고 회장은 자신이 걸어 온 40년 중소기업 운영의 마침표를 지식산업센터로 갈음하고 싶었다. 시대의 산업 트렌드는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중후장대'에서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경박단소'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지식산업센터야 말로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에게 지식산업센터는 '창업하기 쉬운 나라'를 위한 선배 경영인의 노하우이자 책임의 발현이기도 하다.

'젊은 창업가 육성'은 '유능한 인재 양성'을 위해 그가 맡고 있는 광주과학기술원 발전재단 이사장직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과학도와 젊은 창업자를 길러내는 일은 비행기의 양 날개처럼 비상하는 국가의 첫째가는 핵심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길에 스카이장례식장 대표를 맡고 있는 아내 박화자(68) 씨도 동참, 3년 전부터 광주과학기술원에 기부를 함께하며 부창부수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27일 광주과학기술원 오룡관의 발전재단 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나 '성공한 다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에서 최초로 지식산업센터 ‘KBI하남’ 준공을 완성한 고정주 ㈜나영산업 회장이 무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걸어 온 40년 중소기업운영의 마침표를 지식산업센터로 갈음하고 싶었다” 며 “시대의 산업트렌드는 ‘경박단소’ 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할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오세옥기자 dkoso@mdilbo.com

-지식산업센터는 어떤 곳인가.

"하남 지식산업센터는 정부(산업통상자원부)지원 제1호 지식산업센터로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창업과 관련된 종합적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입주업체를 위한 연구실과 사무실, 기숙사는 물론 은행, 병원 등 근린 생활시설이 들어서고, 아파트 공장까지 갖춰져 있어요. 일도 하고, 거주도 하고, 기업활동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곳이죠. 산업의 트렌드가 '단소경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큰 공장과 거대한 기계, 많은 인원을 갖고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지식산업센터는 이러한 변화된 시대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생산과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다면 공단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가 효율적인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중소기업을 경영해왔다. 기억에 남는 일이나 성공 스토리가 있다면.

"1980년 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아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0년 넘게 중소기업을 경영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소기업유공자 대통령표창과 제32회 국가품질경영대회 대통령 표창, 제44회 광주시민대상, 제45회 발명인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죠. 빈농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배고픈 설움을 면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만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요(웃음). 한 때는 '설레임'이라는 자체 브랜드의 소주 냉장고를 개발해 큰돈을 벌기도 했어요. 일본·스위스·미국·독일 등에서 물속 용접기술까지 배워가면서 개발했는데 전국 요식업체마다 우리가 만든 '설레임'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죠.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제조업을 하다 지식산업센터를 짓는 것은 사업 확장인가.

"지식산업센터를 짓는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돈을 더 벌려고 건설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냐'라고 쳐다보는 시선이 많더군요. 돈 보다는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40년 넘게 대기업 협력업체를 운영하다보니 말이 좋아 협력업체이지 실질적으로는 하청업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하청업이 버거워서 정리할까도 생각했지만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온 경영자로서 후배 창업자들을 위해 무엇인가 남기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끝에 지식산업센터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와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지식산업센터에서 창업이나 연구활동을 한다면 집적화된 공단과 호흡이 가능하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고 빠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창업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선배 경영인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배고픔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옆이나 뒤를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점에 닿아 있더라고요. 창업을 하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창업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좌고우면 주저하지 말고 꿈꾸는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모두 던지라고 말하고 싶네요."


-광주과학기술원 발전재단 이사장까지 겸하고 있는데 어떤 자리인가.

"이사회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학교운영을 책임지는 이사회는 따로 있고, 발전재단은 순수한 후원회 형식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광주과학기술원을 특정해 후원하게 된 이유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과학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학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4년 전부터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인 광주과학기술원에 후원해 오고 있어요. 그 전에는 여러 단체나 학교에 기부하거나 후원해 왔는데 선택과 집중으로 과기원에 후원을 집중 하고 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은 2017년 오룡관 101호를 '덕운(德雲) 고정주 강의실'로 명명해 그에게 헌정했다.

고정주 나영산업 회장

-후원금을 밝힐 수 있는가.

"발전재단 이사장은 재단 이사회에서 선임하는데 이사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후원금액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년 일정하지는 않지만 지금껏 4억 원 가량 후원해 온 것 같네요. 아내도 3년 전부터 후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이외에도 알게 모르게 후원과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 특별한 철학이 있는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무척 어렵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학금이 아니면 중·고등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됐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 장학생 시험에 한 번 떨어진 뒤 이듬해에 다시 도전해서 들어갔고, 고등학교도 야간 고등학교 장학생으로 다녔지요. 장학생으로 다녔지만 제 때에 입학하지 못해 몇 년씩 늦다 보니 동창들보다 나이가 서너 살 더 많은 편입니다. 내가 장학금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었으니 이제는 어려운 누군가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릴 때 내가 받은 장학금은 절대적이었지만 내가 기부하거나 후원하는 금액은 내 삶에 그 때만큼은 절대적이지는 않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요(웃음)."


-기부나 후원행사에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돈 버는 목적이 처음에는 나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데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베풀고 나누기 위해 돈을 벌게 되더라고요. 그게 더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자녀들을 기부나 후원행사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베푸는 삶을 가르치고 싶어서입니다. 자녀들이 '나도 돈 벌면 사회를 위해 기부도 하고, 후원도 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죠. 자녀들도 아마 보고 배웠을 거예요. 베풀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도 느꼈을 테고요."

조영석 시민기자·kanjoys@hanmail.net

조영석

오랜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예순을 넘어서자 팔뚝 굵은 적들이 가여워졌다. 대신 젊은 시절 가여웠던, 이를테면 풀잎이나 참새 같은 그런 나약한 생명들이 경외스럽다. 자신의 고향인 진도군 조도가 대한민국을 대양으로 이끄는 예인선이라고 우기고 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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