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통신 윤리 단원에서, 학생들이 현재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 또는 웹사이트 등을 친구들에게 추천해 보는 탐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중,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집의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업로드하면 문제 풀이 과정을 볼 수 있는 페이지가 바로 뜨는 특정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한 학생이 있었다. "어? 그거 나 학원 숙제 할 때 많이 보고 베끼는데..." 솔직한 친구의 표현에 꽤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다. 어려운 문제를 끙끙대며 스스로 해결해 보는 과정 자체는 정답에 이르는 길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 자체로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요즘 학생 중 일부는 손쉽게 기술에 의지한다. 과연 과학기술은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 구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학교 현장에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다양한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다. 특히 학생 개인별 학습 수준과 속도를 분석하여 맞춤 학습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교육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에 영어, 수학 등의 교과에 도입된다. 일부 도시에서 도입하여 운영하는 해외 사례는 있으나,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현장에서 적합한지에 대한 시범 운영을 해 보지도 않은 상태이며, 교육적 효과에 대한 검증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스웨덴은 학생들의 문해력과 사고력이 디지털 교과서 사용 이전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정책을 철회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초등학교 4학년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며 정책을 도입한 폴란드도 목적은 교육의 본질적 측면이 아닌 기술 경쟁력 강화이다.
또한 화면에 입력 가능한 객관적 수치만을 가지고 한 인간의 교육 정도에 관하여 무엇을 얼마나 분석하고 피드백할 수 있을까? 인간의 교육은 심리적이고 환경적인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인데, 기술적으로 측정 가능한 일부를 뚝 떼어 관리한다고 해서 교육 격차 해소가 가능할까? 기술의 진보는 사회 내 차별 해소와 연대 등의 인간적 가치가 함께 실현되지 않는 한 오히려 사회 내 더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AI와 관련한 과학기술 분야는 오히려 인간의 창의적인 활동을 제한할 수 있으며, 알고리즘 편향에 빠져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구로만 활용되어야 함을 약속해야 할 뿐 아니라 도구로서 AI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된 기술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나 다양한 사이버 범죄들에 대한 지침, 이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사회에 소속된 우리 모두에게는 책임이 있다. 책임은 올바르게 행동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좋은 판단과 능력이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우리가 속해 있는 정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은 특정 공동체에 속해 있기에 지게 되는 집단적 의무이다. 정부 관료나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판단이나 행위에 침묵하거나 협조하지 않아야 하는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다. 이는 AI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해서도 당연히 져야 할 예견적 책임에 해당한다.
AI 디지털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1월 28일,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해 활용 여부를 학교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일것이다. 이는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 추진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 타당성 검토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숙의 과정이라는 사회적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이다. 더 눈여겨 볼만한 점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서 지위를 박탈당했을 경우를 준비하는 관련 업체들의 '총력 대응'이라는 반응이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술 혁신은 자본 축적의 수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 축적이라는 과도한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과정에 교육의 본래적 목적이 끌려가지 않고, 진정한 인간 존엄성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유진 산정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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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광주·전남 행정통합, 민주시민교육의 현실을 묻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이 학생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교사로서 지역 사회의 굵직한 현안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가볍지 않다. 교실에서 다루는 민주주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우리는 민주주의가 토론과 숙의,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과정이라고 가르친다. 그렇기에 지역 사회 현안의 실제 결정 과정은 교실 수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 중심에 시민으로서의 학생이 존재해야 한다.최근 공식 선언을 통해 통합의 단계를 밟고 있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안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과 교육, 나아가 지방자치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선택이다. 교단의 한 사람으로서 통합의 찬반을 먼저 말하기보다, 이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논의의 언어가 지나치게 행정 중심이라는 점이다. 통합이 가져올 효율성과 경쟁력, 행정 구조 개편의 필요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체감하는 민주주의는 효율보다 참여에 가깝다. 결정의 속도보다,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누가 얼마나 말할 수 있고, 결정의 주체가 누구냐가 더 중요하다.교육 현장은 광주와 전남이 결코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도심의 과밀학급과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존립 문제는 동일한 기준으로 다루기 어렵다. 교육과정 운영, 교원 배치, 교육재정의 사용 방식 역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행정통합이 추진될 경우, 교육자치가 행정 논리에 종속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교단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사로서 특히 고민되는 지점은 학생들에게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살펴보자면, "왜 이렇게 빨리 결정하려고 하나요?", "우리 의견은 어디에서 말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질문들 앞에서 교사는 교과서 속 민주주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낀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민주시민교육은 설득력을 잃는다.교사들은 통합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기보다, 최소한 충분한 숙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민 공론장, 교육 주체의 참여, 학교와 지역을 연결한 토론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이 논의는 교육적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임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교단의 시선에서 볼 때, 행정통합 논의는 민주시민교육의 중요한 시험대다. 통합이 성사되느냐의 문제보다, 그 결정 과정이 민주적이었는지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교육 현장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학생들과 함께 목격하고, 해석하고, 토론하게 된다.교실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행정의 필요와 교육의 가치를 분리해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통합 논의가 교육자치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지역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럴 때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말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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