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 종결
시민들 “사죄 않고 떠난 전씨 책임 물을 것”
1980년 신군부의 핵심이자 5·18민주화운동 광주학살의 총 책임자로 알려진 전두환씨가 23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면서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특히 전씨는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 당시 헬기사격과 시민군 대상 총기 발포 명령 등 41년 전 학살에 대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씨도 사망하면서 책임자 처벌이 미완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5월 단체와 5·18진상규명위원회 등은 전씨 사후에도 그의 죄를 끝까지 조사해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23일 5월 단체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졌다. 전씨는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같은 이유로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항소심에도 세번째 재판을 제외하고는 출석하지 않았다.
그의 변호인은 최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군사 쿠데타와 5·18 유혈 진압을 비롯한 전씨의 과오에 대해 '사격은 없었고 정당한 절차였다'며 사과하지 않았다. 결국 전씨가 사망하면서 '사자명예훼손' 재판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첫 재판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전씨의 사망소식에 지역사회가 분노를 참지 못했다.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찬탈하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죽음에 명복을 빌 수가 없다. 끝내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죽은 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역사적 단죄를 묻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 이런 자의 죽음에 국가장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한탄했다.
류봉식 광주 진보연대 대표도 "진실 고백은 물론 사죄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단죄할 기회도, 역사를 바로 잡을 기회조차도 놓쳐 안타까울 뿐이다"면서 "국가장은 국민적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업적 등을 기리는 것인데 행여라도 이번에도 국가장이 정부에서 거론되고 논의된다면 그야말로 개탄스럽고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대학생 김민지(23)씨는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죄는 물론 참회조차 하지 않고 떠났다"며 "부디 사후에라도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수(33)씨도 "국가 권력이 시민들을 유혈 진압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전씨는 죽어서도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 골프를 치는 등 여유롭게 산 그가 내지 않은 수백억원의 추징금은 꼭 환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5월 단체들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장' 반대와 '사후 처벌'에 대한 계획을 내놨다.
김영훈 유족회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를 명령했으며, 암매장을 지휘한 전씨가 끝내 사죄의 말 없이 죽었다"며 "아직 5·18진상조사위의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전씨를 따르던 사람들이 죽기 전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씨가 이날 오전 사죄의 말 한마디 없이 사망함으로써 국민들도 허탈감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가 죽었다고 해도 학살 최고 책임자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그의 후안무치한 모습을 광주 시민들은 잊을 수가 없다. 집단발포와 헬기사격 책임자인 그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전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씨는 1979년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조직, 12·12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며, 다음해 5월 군부 독재를 반대하는 광주 시민들을 무력 진압해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전씨는 헬기 기총소사와 집단 발포 명령을 내려 수없는 무고한 시민들을 사망케 했다.
1988년 임기를 마친 전씨는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구속기소됐고, 반란수괴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1997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이듬해 복권됐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 오월지키기대책위 "5·18조사위, 조사 결과보고서 폐기해야"
- · 박형대 전남도의원, 5·18조사위 보고서 관련 간담회 개최
- · 광주공동체 "5·18조사위 보고서는 왜곡·폄훼 빌미 투성"
- · 광주 찾은 이재명 "5·18 부정하는 반역집단 심판해야"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