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음식 불평등 ②김치찌개
폭염·한파 등 금배추 금무
1인분 1만원 서민음식 옛말
재료값 뛰면 매장은 힘들어

광주에서 김치찌개 백반 가격 평균 8천원 시대가 열렸다. 2024년 1월, 7천800원에서 8천200원(2025년 1월 기준)으로 5.1%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 조사 결과다. 이들 가격은 광주 평균인 만큼 유명한 식당은 더 비싸다. 한 번 올리면 낮추는 일이 드문 외식 가격 특성상, 1만원 대까지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금(金) 배추' 파동의 후과다. 주재료인 배추 가격이 요동치면서다. 최근 빈번해진 폭염·극한 호우·한파 등 이상기후의 영향 탓이다.
지난 14일 오후 1시께 동구 대인동의 유명 김치찌개 백반집인 나산식당. 묵은지만으로 푹 끓여 내면 특별한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는 김치찌개는 대표적 서민 음식이다.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도 '스테디셀러'다.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인데도 10여 개 중 3개의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30대 직장인에서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서민 음식'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만 원이 넘는 김치찌개 식당이 곳곳에 나타나면서다. 다행히 나산식당의 김치찌개 가격은 9천원. 2015년 6천원에 비해 50%, 5년 전인 2020년 7천원에 비해 29%가량 올랐다. 통상 500원씩 상승했던 가격이 지난해엔 1천원 뛰었다. 올해도 배춧값이 치솟으면서 가격 상승 압박을 받고 있지만 동결했다. 단골 손님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식당 주인인 김모(69·여)씨는 "아무리 재룟값이 올라도 단골이 많아 한 번에 올리기도 힘들다"면서 "김치찌개하면 서민음식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1만원이 큰 고개'라 그만큼 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우리는 가족끼리 운영하고 있어서 노동으로 떼우고 있는 데다 가겟세를 내지 않아 이 정도라도 하지 다른 집들은 많이 힘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배추 가격 상승은 매출의 직격탄이다. 손님들이 뜸해지면서 김씨의 남편과 딸은 식당 뒤편 부엌에서 배추를 갈라 간을 했다. 국내산 배추로 담근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게 원칙이다. 수요가 많은 김장철엔 500~600포기를, 매주 토요일에도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농산물도매시장에서 구입한 배추로 1년에 1천 포기가 넘는 양의 김치를 만든다. 배추 1포기 당 1천원만 올라도 10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식당에서 '배추가 귀족'으로 대우받는 이유다. 그는 "우리 집에서는 귀족김치라고 부른다"며 "지금 간하고 있는 배추는 어제 사 왔는데 한 포기에 8천원이다. 이번 겨울에는 저장한 배추가 적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3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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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한달 일찍 틀고, 한달 더 가동···폭염 땐 전기세 두 배" 순천에 위치한 로뎀축산에서 사육 중인 돼지들 모습. "기온이 오를 때마다 관리·운영비가 뛰어요. 땀샘이 없는 돼지들은 에어컨 등 냉방장치와 깨끗한 물·사료 공급이 필수죠. 무더운 여름에 삼겹살 등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의 설명이다. 각각 1개 동이 250평씩 하는 4곳의 축산동에서 돼지 2천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분만·생장·출하 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일괄 사육 농장'이다. 돼지는 고온에 민감하다. 그는 "돼지는 땀샘이 없어 호흡과 물을 마시는 것으로 체온을 조절한다"면서 "물을 많이 마셔서 열을 배출 해야 하는데, 서열상 어린 돼지들은 물통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 폐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축사 관리비가 증가하는 이유다. 폭염일 수가 늘면서 냉방시설 가동기간도 길어지면서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전남 지역의 폭염일 수는 30.1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20년(7.7일)보다 폭염일 수가 4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14.2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3년 전 만해도 5∼6월께 시작해 9월까지 에어컨을 틀었다"면서 "하지만 여름이 길어지면서 2023년부터는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가 폭염과 사육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전기세를 낼 때 체감한다고 했다. 에어컨 가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냉방에 들어가는 전기세 부담이 더욱 커져서다. 봄·가을철(3월~5월, 10월) 한 달 평균 300만~350만원 내던 걸, 여름철(6월~9월)엔 800만원대를 부담한다. 시설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7년 전, 4개동에 에어컨 설치 비용으로만 2억원가량 들었는데, 현재는 40~50% 올라 3억원 가까이 된다. 축사의 평당 에어컨 규모가 커지면서 비용도 늘었다.여름철 폐사와 무관치 않다. 최근 5년 가운데 폭염일 수가 가장 길었던 지난해(30.1일)에는 104농가에서 돼지 1만4천718마리가 폐사했다. 해당 기간 가장 큰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5년 전인 2020년 폭염일 7.7일 동안 5농가에서 30마리가 폐사한 것과 비교하면 폭염일 수가 5배 가까이 늘었고, 폐사한 돼지는 490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시설이 열악할 수록 폐사가 많이 일어난다"며 "폭염 기간이 매년 길어지고 있는 만큼 에어컨 등 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장은 축사 운영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0월께 장기간 농장을 비웠을 때다. 갑작스런 정전 탓에 축사 에어컨 가동이 멈추면서 10여 마리가 폐사했다. '하석' 등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던 시기다. 다행히 이를 빨리 발견한 직원들이 창문을 열어 환기 시켰고, 전기도 10시간 만에 다시 들어와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한여름이었다면 더 큰 피해가 불가피 했던 순간이었다.광주 지역 연도별 삼겹살 1인분(200g) 기준생산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주 대표는 "지속된 더위에는 서서히 적응을 하지만, 갑작스런 폭염 땐 폐사가 늘어난다"며 "무더위 뒤, 극한호우와 함께 찾아오는 찜통더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단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어미돼지는 사료 섭취량이 줄어들고 분만이나 젖주기 등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출하를 앞둔 돼지들 역시 섭취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출하 일령이 늘어나거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실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폭염 시 160일인 출하 일령'을 늘리지 않고 ㎏ 수가 조금 떨어지더라고 정해진 날짜에 출하하고 있다. 평상시 땐 1마리 당 1등급으로 50만원 가량 받았을 돼지 가격을 2급 45만원 정도에 출하하고 있다.치솟는 사룟값도 부담이다. 주 대표는 "시중에서 가장 비싼 사료를 사용해 사룟값만 한달 평균 1억원이 든다"며 "최고급 사료로 품질 좋은 돼지를 키워내기 위해 1년 내내 품질 좋은 사료를 공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분뇨 처리 비용 또한 여름철 운영 비용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돼지들이 고온 속에서 적정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물을 섭취하는 만큼 분뇨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분뇨는 발효시켜 비료로 만든 뒤 논과 밭에 뿌려지는데, 여름철 우기 땐 논·밭에 처리하기 힘들어져 처리 비용은 '부르는 게 값'된다"며 "평상시보다 30%는 늘어난다"고 토로했다.폭염 피해에 대한 근본적 지원책도 주문했다. 전남도가 고온 피해 예방을 위해 사료 첨가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돼지 축사 자체가 단열이 돼야 사료 첨가제를 먹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에어컨 설치도 단열이 돼야 의미가 있는 만큼, 낙후된 농가들이 이상 기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설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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