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부터 끝까지 비리 막장
경찰이 이런 불법 몰랐을까
잊혀져간다는 게 안타깝다
하루빨리 '학동법' 나오길
[week&people]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
처참한데 또 부검이라니
안하면 불이익 압박하더라
생업? 이 마당에 다 포기
자살기도 한 유족도 있는데…
심리치료 받고 있다지만
다들 항우울제 먹는 정도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대참사였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3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던 5층짜리빌딩이 순식간에 7차선 도로변으로 쓰러졌고, 정류장에 막 정차한 54번 시내버스를 그대로 덮쳤다. 큰 도로 맞은편 버스 정류장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충격이 컸으며 붕괴된 건물의 잔해와 토사 높이는 10m에 달했다. 대참사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날벼락같은 참사로 가족을 잃은 80여명의 사망자 유가족들은 뒤늦게 협의회를 꾸렸다. 참사 현장과 경찰청, 국회, 서울 현대산업개발 본사 항의 기자회견까지 백방으로 뛰었다.사고발생 5개월째를 맞아 지난 25일 전남대학교 내 한 커피숍에서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실험실 기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사고를 당한 어머니는 문화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청소일을 했다고 했다. 1시간 인터뷰 동안에 유족들의 전화벨이 간간이 울려댔다. 하루하루 눈물의 생활이며, 생업 포기는 물론 심한 충격과 트라우마에 따른 우울제 처방이나 자살기도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처지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안됐는데,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학동 참사가 발생한지 5개월째다. 현재 유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참사 이전에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었는데…, 그동안 여러분들을 만났다. 광주지역 8명의 국회의원과 이용섭 광주시장, 여러 정당 국회의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만났다. 한순간에 생이별한 유족들은 하루하루가 눈물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슬렁거리고, 식음을 전폐한 아버님도 계시고, 생업을 다 포기하고 유가족 협의회 일을 자처하신 분도 있다. 그만큼 학동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절실하다. 재발방지나 피해회복, 책임자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다.
-참사 이후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당시에는 아무도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유족들은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기독병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시신 부검이 유족들 사이에서 큰 이슈로 떠올랐다. 유족들은 반대했으나 상황은 달랐다. 버스에 짓눌려 처참하고, 상처투성이인 시신에 또 다시 칼을 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도 부검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검찰에서 가족 동의를 거듭 요구했다. 하지 않으면 추후 발생할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압박도 해왔다. 끔찍했다. 결국 논의 끝에 울며불며 발인 5~6시간 전, 새벽녘에 국과수 부검이 진행되었다.
-유족들의 사고 트라우마가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참사 발생 직후 3개월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협의체가 없었다. 초반에는 장례 지원과 TF팀 수립 등 이야기만 전해졌지 사실상 누구도 연락을 받거나 관계자를 만나지 못했다. 대책도 말뿐이었다. 그래서 광주지역 21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민관협 협의회를 꾸리게 됐다. 뒤늦게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첫 회의에서 유족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니 심리적 치료를 받도록 도와달라고 건의했다. 광주시에서는 각 구에 있는 정신건강센터 방문을 권유했다. 하지만 실상은 1~2분 정도 체크하는게 전부였고, 대부분 항우울제 처방과 약 먹는 것으로 요약된다. 트라우마 극복이 어렵다. 새벽에 일어나 고인의 방을 둘러본 뒤 자살기도를 한 유족도 있었다. 심한 분들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병원에서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관련기관의 트라우마 대처는 미흡했었다고 생각한다.
-경찰 수사 과정과 국과수 원인 규명이 시원치 않다는 반응이다.
초기엔 모든 언론이 대대적으로 참사 원인을 다뤘다. 하지만 50여일 뒤 1차 국과수 발표에서 언론 보도를 재탕한 수준이어서 많이 실망했다. 경찰도 현산 등 재개발 사업 전반에 걸친 비리를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짜고 재재하도급으로 리베이트를 갈취하고, 공기단축을 위해 계획서를 무시한채 철거에 들어가고, 감리 감독도 안하고 원청 시작부터 끝까지 막장 아닌가. 한달 전에는 담당 수사관이 구속되면서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마지막에 구속된 브로커는 4개월 넘게 시일이 걸렸고, 3·4구역 조합장은 맨 처음에 구속될 줄 알았는데 최근에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부터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유족들의 진정서와 3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특히 문흥식씨가 귀국하면 모든 수사가 제자리를 찾고,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했지만 수사는 꼬리자르기 식으로 진행됐다. 원청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문씨 수사도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 10월 1일 서울 현산 본사 앞 기자회견도 원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유족들의 절박함이었다.
-현재 구속된 7명 피의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현재 피의자 모두 공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됐는데 최고형이 5년 이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업무를 하던 중 실수를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장 상황 등을 볼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과정서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바로 풀려 자유인이 되기 때문에 확실히 구속시킬 수 있는 혐의를 적용하자"고 유족들을 설득했다.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발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현재 국회 상임위에 10여개 법안이 상정돼 있다. 사망사고 발생시 최고 50배에 해당하는 행정처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소급적용이 안 돼 현산은 해당 법률 적용을 받지 못한다. 유족들을 기억할 수 있는 '학동법'이 나와서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정치인들을 만났다고 하는데,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비공개로 한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이형석 의원이 학동유가족지원협의체 TF팀장을 맡아 '강력한 처벌과 재하도급 관련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이 후보는 "법을 제정할 국회의원들과의 연락이 안되면 언제든 나에게 연락하라"며 우리를 껴안았다. 고마웠다. 대통령 후보자가 학동 참사를 잊지 않고 직접 챙기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광주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 매일 눈을 뜨면 어머님이 살아계신 것 같아 서글프다. 하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돈을 앞세운 대기업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밀당식으로 대해 마음이 아프다. 헛소문들도 무성했다. '유족들이 27억을 받았다', '아파트 분양이 되면 아파트 1채를 받기로 했다' 등이었다. 지금까지 합의된 것도 없고, 합의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유족들은 현산과 피의자들에 대한 재수사를 지속적으로 촉구할 계획이다.
인터뷰=강동준 디지털편집국장·정리=김종찬기자·사진=임정옥기자
질문이 머리 속에서 계속 일었다. "만약에 내가, 아니 우리 가족 누군가가 그때 운림 54번 버스를 타고 있었다면?", "끔찍한 상황과 공포가 거듭돼 매일매일 고통 속에 악몽이 되살아난다면?"…. 큰아들 생일에 장을 보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60대 곰탕집 아줌마, 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 말벗을 해준 뒤 버스에 탑승했던 70대 할머니, 한 버스에 탔다가 앞좌석 아버지는 생존하고 뒷좌석 30대 막내딸은 변을 당하고…. 이웃들의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는 "이들 희생의 대가로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올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아이들의 미래 안전을 위해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 "다시는 반복않길" 학동참사 2주기 추모식 거행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참사 2주기 추모식이 9일 오후 참사현장에서 유가족과 강기정 광주시장, 임택 동구청장 등 학동참사시민대책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모식에서 유가족이 오후 4시 22분에 맞춰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한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2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추모식이 열렸다.광주시와 동구는 9일 오후 학동 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현장에서 참사 2주기 추모식을 가졌다.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들을 비롯해 강기정 광주시장, 임택 동구청장, 국회의원, 시·동구의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추모식은 참사 발생시간인 오후 4시22분에 추모 묵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헌화, 추모사, 애도의 시간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식장 뒤편에는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안전문화 시민 공모전 수상작품이 전시됐다.광주 학동 붕괴참사 2주기인 9일 오후 추모식에서 유족들과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추모식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강기정 광주시장은 "고인과 유가족을 위한 가장 큰 애도는 광주를 더 안전한 도시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며 "시민의 눈높이에서 안전 사각지대가 없는지 늘 살피며 시민의 온전한 일상을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임택 동구청장은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앞으로도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대응하며 안심할 수 있는 동구를 만들어가겠다"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간은 반드시 조성되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학동참사 희생자 故김해찬씨의 친구 정소망씨는 "남겨진 이들은 사고 이후 2년 내내 후회와 슬픔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어떠한 보상도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처절히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귀중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했다.한편 지난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에서는 5층 규모 건물이 철거 도중 무너져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 · '학동참사' 2주기 앞두고 '추모공간' 의견차 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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