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유니버시아드
국제 스포츠 대회, ‘도시정체성’ 브랜딩 효과 커
광주 U대회, ‘빛’ 통해 고유성 대내외 각인 성과
‘무형적 유산’ 지속적 계승·확장 노력 중요하지만
인식의지 부족에 ‘고스란히 상실’...경쟁력 약화
전문가 “유무형 유산 계승할 전담 조직 필요해”
‘보여주기’ 아닌 마케팅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국제 스포츠 대회는 단기적인 경제 효과보다 장기적으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유산으로 더 가치가 있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해 도시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도화하는 동시에 대내외적으로 도시경쟁력을 높여 도시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제 스포츠 대회는 단 한 번에 끝내는 게 아닌, 무형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는 게 중요하다. 대회는 짧아도 유산은 오래도록 남아 도시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이하 광주 U대회)는 광주에 스포츠 관련 인프라와 국제적인 스포츠 도시로서의 브랜드를 남긴 중요한 유산이다.
광주는 U대회를 통해 경기장과 선수촌, 교통, 편의시설 등 도시 전반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나 2025 광주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유치도 U대회의 유산이다. 또 KIA 타이거즈가 2017년과 7년 만인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광주 U대회는 도시 브랜딩에 있어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행사로, 광주의 고유한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점이 됐다.
그러나 스포츠 시설 외에도 무형의 유산은 계승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공존한다. 이는 무형 유산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던 상황과 더불어 대회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이벤트를 스토리텔링하고 홍보·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특히 광주 U대회를 통해 '빛'을 도시 정체성으로 강화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 어느 정도 성공했음에도 광주시가 이후 스스로 정체성을 폐기한 것은 광주 도시 브랜드 경쟁력을 상실한 패착으로 꼽힌다. 스포츠 대회 유산을 지속가능한 도시 자산으로 발전시킬 지자체의 의지와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빛으로 도시정체성 확립한 U대회
유니버시아드는 올림픽에 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스포츠 대회 중 하나로, 전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젊은 선수들이 참가한다. 광주는 U대회를 통해 '빛고을'이라는 도시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문화, 예술, 평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로 삼았다.
광주에서 빛은 단순한 지명에서 유래된 도시 정체성을 넘어선다. 광주의 역사적,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일제에 저항했던 광주학생운동, 군부에 저항했던 5·18민주화운동 등 어두운 시대의 횃불 역할을 했던 광주의 정신을 나타낸다. 그와 동시에 정치와 예술, 문화, 정책 등에서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제시해 온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광주는 U대회 전반에서 '빛의 도시' 광주를 고유한 정체성으로 알리고자 했다. 광주 U대회를 A부터 Z까지 일관되게 '빛'이란 주제로 브랜딩한 이유다.
대회 상징인 슬로건, 마스코트, 개막식·폐회식 모두 빛의 이미지로 일관된 정체성을 구축했다. 영문슬로건인 'Light Up Tomorrow', 국문슬로건인 '창조의 빛 미래의 빛' 모두 광주 이미지를 상징하는 빛과 유니버시아드를 상징하는 미래의 의미를 조합했다. 광주 U대회 엠블럼 '빛의 날개'는 빛의 도시 광주가 유니버시아드를 통해 세계적 도시로 도약한다는 비상을 상징한다.
마스코트인 '누리비'는 우리말 '누리'와 날다의 '비'를 결합한 조어다. 세계 젊은이들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빛의 전령사로, 광주의 빛을 전 세계에 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대회 개막식은 '젊은이 미래의 빛이다'를 주제로 빛을 다양한 상징적 연출과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했다. 폐회식 마찬가지로 '창조와 미래의 빛, 세상과 함께하다'라는 주제였다. 평화와 화합, 청년들의 이상을 담은 유니버시아드의 가치를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광주의 정체성과 연결했다는 평가다.
◆'스포츠 관광지'로서 유산 쌓았지만…
개최 도시로서 광주는 평화와 인권, 스포츠를 결합해 국제 사회에서의 광주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일명 '광주 U대회 레거시 프로젝트'다.
대표적으로 광주는 UN과 협약을 맺고 아시아 지역 유스리더십프로그램(YLP), EPICS포럼(국제청년멘토링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에픽스포럼은 세계적인 저명인사들과 대학생들이 멘토와 멘티가 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다. 2013년부터 3년 동안 600명의 대학생이 UN환경계획 사무총장이나 UN스포츠대사, 세계스포츠기자연맹 등 국제적인 인사와 만날 기회를 얻었다.
YLP는 분쟁지역과 개발도상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스포츠교육프로그램으로 아시아에서는 처음 시도해 큰 주목을 받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해마다 광주 호남대학교에서 진행했다.
또 FISU와 함께 '반도핑 교육교재'를 개발하는가 하면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전 세계 대학생들이 글로벌 전문가들로부터 전문지식과 경험을 공유 받을 YRP(Young Repoters Program)도 운영했다.
이 같은 프로젝트들은 대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광주를 국제적인 스포츠, 평화 도시로 홍보할 수 있는 무형 자산이었다. 더불어 광주지역 젊은 청년들이 세계를 경험하며 '글로벌 인재'로서 지역의 역량을 높일 수단이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광주는 국내외에 '빛의 도시'로서 평화와 화합의 상징 도시로서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게 스포츠 관광지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영국 스포츠 분석 전문매체 '스포트칼'이 2014년 전세계 600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 스포츠 도시 영향력 조사'에서 광주가 2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김민철 조선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2015년 유니버시아드는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2025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의 초석과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며 "국제대회를 어떻게 개최하고, 개최 도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의 프로세스를 당시 다 갖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개최 전부터 개최 이후까지 이뤄지는 수많은 레거시(유산)를 치밀하게 계획해서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남은 건 시설뿐…지워지고 잊힌 이야기
그러나 광주 U대회 10주년을 앞둔 현재 무형 유산은 거의 계승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합백서'와 같은 책자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광주 U대회는 무형 유산을 남기려는 시도는 했지만 중장기적으로 계승·발전하려는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시장이 4년마다 바뀜에 따라 도시의 정체성을 브랜딩하는 방식이 바뀐 게 뼈 아프다.
광주 U대회를 유치할 당시 광주시장이었던 박광태 시장은 광주의 정체성을 '빛'에 맞춰 도시를 브랜딩(마케팅)하기 위해 시도했다. 당시 에너지공기업인 한국전력 이전 등과 맞물러 산업적으로 광(光)산업을 조성했고, 도시경관도 빛을 활용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빛의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 정수가 광주 U대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나 광주시장 교체 이후 이 같은 도시브랜딩 전략은 폐기되면서 광주 U대회가 쌓아 올린 '빛의 도시'란 브랜드도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갔다.
또 마스코트와 대회에서 나온 극적인 스토리는 대회 후에 정체성 없이 방치됐고 활용 가능성이 논의되지 않았다. 마스코트나 각 기록을 장기적인 도시 마케팅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대전과 같은 도시가 마스코트 '꿈돌이'를 비롯한 엑스포 유산을 활용한 기념품, 관광 코스, 포토존 등으로 현재까지 관광객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무형 자산 계승·발전할 조직 無…"의지의 문제"
광주 U대회뿐만 아니라, 광주의 스포츠 이벤트의 무형 유산을 계승해 스포츠 대회를 넘어선 도시 브랜드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일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츠 브랜딩 전문가인 배미경 더킹핀 대표(전 광주 U대회 국제협력담당관)은 "대회 준비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확보했고, 국제 스포츠와 관련한 전후방 기관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는데 (대회가 끝난 후) 무형 유산으로서 지역에 보존하지 못하고 단절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예컨대, 개최 도시인 광주와 UN이 협약을 맺고 진행한 YLP과 에픽스포럼 등을 지속했다면 스포츠 도시로서 국제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배 대표는 광주가 대회의 유산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보존·계승할 재단이나 기관 내 부서 등이 없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러면서 광주 U대회를 포함해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등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유산을 계승할 전담 조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통상 국제대회를 개최한 도시는 유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단을 많이 만든다"며 "꼭 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할 게 아니라, 이걸 유지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주 내 국제협력관실에 국제대회 유산과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유지하거나, 국제 스포츠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배 대표는 "광주 U대회가 개발한 누리비(마스코트)나 빛의 날개와 같은 상징물들은 그냥 나온 게 아닌, 수년 동안 많은 이야기 개발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결과물"이라며 "이런 것을 (도시 마케팅 자산으로서) 지속가능하게 하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유산을 계승하는 방법은 굉장히 많다"면서도 "단순히 전시관 같은 걸 만들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마케팅적 포인트'(마케팅 관점)를 가지고 어떻게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인가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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