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앞 하이다이빙
영웅광장 옆 아티스틱스위밍
관광지·랜드마크에 경기장
세계수영대회 패러다임 전환
도시마케팅 브랜드 가치 상승
유럽 중심지 도약…관광 특수
국제스포츠이벤트는 양날의 칼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성공과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사전 준비와 치밀하고 디테일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부다페스트(헝가리)는 광주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세계적 관광도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서다. 그들의 대회 개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스토리의 보고(寶庫). 부다페스트에 대한 인상이었다. 부다(Buda)·페스트(Pest) 지구가 합쳐져 만들어진 '동유럽의 장미'. '물의 도시'란 애칭처럼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서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건 1987년. 아름다운 아르누보 스타일의 온천과 뉴욕카페, 오페라하우스·세체니온천·국립박물관 등 바로크·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 등이 시내 곳곳에서 그 자태를 드러냈다.
다뉴브의 진주는 세계수영대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단순히 수영만 하는 대회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파리(프랑스), 프라하(체코)와 함께 야경이 아름다운 세계 3대 도시. 하지만 동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탓에 서유럽 도시들에 비해 덜 알려졌다. 파리·로마·비엔나 등 세계적 관광도시로 올라설 모멘텀이 필요했던 거다. 도시가 수영대회를 선택한 이유다.
부다페스트는 계획이 다 있었다. 첫 인상부터 강렬했다. 도시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가치 상승. 컨셉은 물이었다. 장소 마케팅의 극대화. 다뉴브강 개막공연 덕분에 도시의 아름다움은 TV 중계 화면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레 노출됐다. 부다 왕궁·어부의 요새·세체니 다리 등 세계적 관광명소는 미디어아트로 물들었다. 다뉴브 강물을 끌어올려 '워터 스크린'으로 사용할 때는 기가 막혔다. 드론은 별 처럼 떠다닌다.
물의 상징은 각인됐다. 도시 정체성과 대회 성격, 비전 등을 공유하는 상징물에 잘 녹여져서다. 슬로건은 'Water Wonder Welcome'. 핵심 키워드는 '수송(水送)'과 '성수(聖水)' 등 수송(輸送)·운영 시스템으로 구체화 됐다. 올림픽 때면 등장했던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聖火)는 다뉴브의 물이 대신했다. 2017년 7월 14일 오후 9시(현지 시각) 다뉴브 강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다. 물의 순환. 성수는 주경기장인 두나 아레나(Duna Arena)로 옮겨져 대회 기간 내내 '빛'을 발했다.
경기장 이름 하나에도 전략이 묻어났다. 다뉴브강은 이름이 많다. 독일 남서부에서 발원해 9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든다.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처럼 독일어로는 도나우(Donau), 체코어로는 두나이(Dunaj), 헝가리어가 바로 두나(Duna).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름으로 브랜드화 했다.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경기장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미국의 유명 여행 웹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방문객이 선호하는 관광명소 560곳 중 다뉴브강과 국회의사당·어부의 요새·마그리트 섬은 1∼7위권을 차지한다. 이 같은 대표 관광지·랜드마크 인근에 경기장을 만든 것이다. 상대적으로 값 싼 가격 등이 더해져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하이다이빙 경기장'이 대표적이었다.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을 마주본 채 27m의 아찔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하이다이빙. 카메라 앵글이 예술이었다. 선수들이 다이빙할 때마다 가장 뾰쪽한 검정색 첨탑과 돔양식의 자줏빛 반원, 하얀색 본관 건물의 정중앙을 차례로 통과한다. '도시 홍보는 저렇게 해야지'. 감탄이 절로났다.
도시는 아픈 역사를 지녔다. 1956년 헝가리혁명 당시, 구 소련군 철수와 헝가리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생·시민 등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소련은 탱크 1천대와 군사 15만 명을 투입해 무력 진압했다. 그 해 10월 23일 ∼ 11월 10일까지 2천500여 명이 숨지고, 1만3천여 명이 다쳤다. 옛 시인은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혁명 당시 국회의사당 앞 코슈트 광장.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됐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재난·재해 등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 탐방). 세계문화유산인 영웅광장은 부다페스트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다. 혁명 당시의 상흔이 남았다. 헝가리 국민에게 외세 침략과 식민 지배에도 굴복하지 않고 민족의 정기를 이어온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광주 5·18 민주광장과 금남로 등과 닮았다. 아티스틱 스위밍(옛 싱크로나이즈드) 경기장은 광장 옆 바로시리게트 호수에 5천 석 규모의 임시풀로 만들어졌다.
수구는 국민 스포츠다. 경기 때마다 자부심이 묻어난다. 다뉴브의 진주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진주, 마그리트 섬에 지어졌다. 경기장이 특별한 장소성을 지닌 이유다. 허요시는 헝가리의 국민영웅. 1896년 첫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유명 건축가였던 그는 1930년 이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경기장을 지었다. 이후 유러피언 수구 챔피언십이 수 차례 열렸다. 마그리트 섬에 국기와도 같은 수구 경기장이 들어선 게 우연일까.
'디테일'도 살렸다. 동선의 핵심은 다뉴브강. 강가의 랜드마크에 경기장을 만든 뒤 보트로 엮었다. 처음부터 호텔에서 각 경기장을 연결하는 셔틀보트가 계획됐던 것이다. 셔틀보트는 개막식장(부다왕궁·세체니 다리 등)∼하이다이빙(의사당)∼수구(마그리트 섬)∼경영·다이빙·마켓 스트리트(두나 아레나) 경기장 간 왕복 14㎞ 구간을 20분 마다 부지런히 오갔다. 셔틀보트는 신의 한 수. 교통체증 없는 출·퇴근에 도시의 아름다움은 덤이었다. '전 세계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지' 촘촘하게 고민한 결과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스잔토 에바 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부다페스트의 장기 계획이었다. 세계·스포츠이벤트 지도에 도시를 그리고 관광 산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다. 투자 촉진과 경험을 쌓은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 레거시·가치 공유 등도 포함됐다." 그는 2018년 열린 '제5회 국제수영연맹(FINA) 월드 아쿠아틱스 컨벤션'에서 이 같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회 유산과 사회·경제적 효과 등에 대해 소개했다. 2017년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보고서에 따르면 헝가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광산업 비중은 8%다. 한국 4.7%의 두 배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 가운데 상위 10위 권이다. 965만 명의 인구 중 4.5%에 달하는 43만4천여 명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국민 20명 중 한 명꼴. 관광산업 의존도가 그 만큼 높다.
개최 효과는 컸다. 수영대회 개최 이후 유럽 중심지로 거듭나는 등 관광 특수로 이어진 것이다. 대회기간 관중은 총 48만 명. 미디어·방송 관계자 1천120여 명, 선수·임원 등 5천500여 명이 참여했다. 마켓 스트리트와 팬 존에는 40만 명이 찾았다.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마스터즈대회엔 9천여 명이 왔다. 항공·숙박·참가비 등은 스스로 부담한다. 현지 매체 데일리뉴스헝가리에 따르면 수영대회 직후인 2018년 한 해만 2천8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부다페스트를 찾았다. 에바 전 총장은 "대회 준비과정에서 두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전념했다"면서 "첫째는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보여 주기 위해, 둘째는 경기장만 보고도 부다페스트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다페스트의 도시 마케팅에 광주의 전략도 수정됐다. 강신겸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문화경영관광) 교수는 "국제 스포츠이벤트는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이미지 제고·인프라 확충 등 지역사회 전반에 걸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며 "이벤트 경험과 유산 등을 통해 광주가 값싸고 맛있는 남도 음식과 수준 높은 문화예술 공연·축제 등을 즐긴 국내·외 관광객들을 통해 활발한 바이럴 마케팅이 이뤄진다면 도시관광 경쟁력도 그 만큼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 광주 '스포테인먼트(Sports+Entertainment) 도시' 구체적 밑그림 나왔다 광주는 거리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 금남로 1가가 대표적이다. 80년 5월 '그날'로 데려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이 공존해서다. 국가 폭력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다뤄 온 한강 작가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무대도 이 곳이다. 사진은 전일빌딩245에서 바라본 금남로 모습이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2024.10.11 광주 '스포테인먼트(Sports+Entertainment) 도시' 구체적 밑그림 나왔다한국시리즈 제패로 올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KIA타이거즈의 V12(12번째 우승) 달성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을 계기로 광주광역시의 도시브랜드·관광 마케팅의 새로운 포지셔닝(자리매김)과 구체적 전략 등이 필요하다는 본보 기획시리즈와 관련, 광주시의 '스포테인먼트(Sports+Entertainment) 도시' 만들기의 구체적 밑그림이 나왔다.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최근 광주시청에서 무등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광주에서 야구라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 분노·울분을 표출하고, 희망·환희를 공유하는 장이 되는 등 스포츠 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광주의 대표적 자산인 예향(藝鄕)의 전통과 남도의 맛, 스포츠 등을 잘 융합해서 엮어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복합쇼핑몰~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잇는 스포테인먼트 구상"이라고 설명했다.광주는 거리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 금남로 1가가 대표적이다. 80년 5월 '그날'로 데려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이 공존해서다. 국가 폭력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다뤄 온 한강 작가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무대도 이 곳이다. 사진은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앞 분수대 모습이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도시관광의 대표적 거점 공간과의 연계도 모색된다. 그는 "광주의 관광 명소들을 연결하는 선이 모여 면(공간)이 만들어진다면, 그거야 말로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문화와 스포츠, 광주의 먹을거리가 버무려지는 것"이라며 "우선, 챔피언스필드와 양동시장을 잇는 선, 또 양림동과 ACC·동명동을 잇는 선, 망월동과 야구장 등 각각의 공간들을 잇는 선들부터 먼저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장소성도 강화된다. 광주 출신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속 무대가 된 금남로가 대표적이다. 국가나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일관되게 다뤄 온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다. 강 시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은 광주와 5·18을 세계 속에 드러 내놓는 계기가 됐다"면서 "광주 만이 가질 수 있는 '노벨상의 도시'와 지역민이 울분을 터뜨리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역할을 한 타이거즈를 활용해 국민이, 세계인이 모이는 광주를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내년 9월 세계양궁선수권대회도 주목된다. 결승전이 ACC 앞 분수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옛 전남도청 별관, 즉 서쪽에서 과녁이 위치한 동쪽(하늘마당)으로 쏘는 구조다. 관람석은 분수대 뒤쪽에 마련된다. 경기를 보는 동안 5·18 역사 현장이 시청자들에게 실시간 노출된다. 경기장을 ACC와 금남로 등 도심으로 확장한 덕분이다.챔피언스필드∼쇼핑몰∼ACC간 연결 방안도 마련된다. 김진강 광주관광공사 사장은 KBS1TV '생방송 토론 740'에서 "챔피언스필드와 더현대, 신세계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해서 연결시키는 구조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보행 전용 '에코 브릿지'와 그린로드 조성 등 이동권을 보장한 뒤 매력물 등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들어 낸다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체류할 수 있는 시간적 요소들은 갖춰진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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