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과거는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가?
삶속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질문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분단은 엄연한 현실임에도 북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거나 부정하는 것 외에는 알도리도 이해할 여지도 없다. 국보법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남북의 평화를 불편해하는 세력 또한 여전하다. 북한에 대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북녘에서 온 노래’는 북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국내보다 국외 언론인들이 국외대중들이 더 뜨겁게 반응한다. 미국 메사추세스 예술대학 유순미 교수의 에세이 다큐멘터리 ‘북녘에서 온 노래’가 2014년 선을 보이자 이듬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제영화제와 언론들의 취재가 잇따랐다.
정작 한국에서는 지금껏 대표적 영화제라는 부산 국제영화제도 초청하지 않았다. 2016년 DMZ영화제에 선 보인 것이 전부다, 그녀의 작품이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였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예술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에세이 다큐멘터리라는 실험적인 영화 ‘북녘에서 온 노래’는 한편의 에세이르 보는 듯하다.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게되는 나레이션(설명)도 없다. 감독의 주관이 그만큼 배재된 것이다. 담담히 북쪽 사람들의 일상과 연관된 자료와 기록영화들이 설명을 보충한다. 장이 바뀔 때 등장하는 유 교수의 질문(자막)은 관객에게 관객이 던지는 질문이다. 자료는 가감없이 날것으로 보여진다. 남쪽에서 일반 대중이 북의 체체에 관한 날것의 기록자료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하고 반공교육에 체화된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멈칫거리기도 한다.
독특한 다큐멘터리 ‘북녘에서 온 노래’는 2015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에 공식초청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객관’은 없다, 질문이 있을 뿐
에세이 형식이라는 실험성과 ‘터무니없는 선전이나 비웃음, 풍자 등의 왜곡된 렌즈로 비쳐져온 수수께끼의 나라 북한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평으로 주목을 받으며 미국과 유럽 평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배급방식으로 서비스가 되면서 한국에서보다 서구에서 더 유명하단다.
통제사회 북에 대한 서구 언론의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편견이 북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를 감성적 접근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만난다고 하면 적절할까.
그렇지만 ‘객관적 접근’에 대해서도 매우 조심스럽다. 아카데믹한 접근이다.
유순미 교수(미국 메사추세스예술대 영화비디오과)는 “객관적인 다큐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말하지만 다큐에는 감독의 시선(의견)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 같은 통제사회의 경우 객관성에 대한 고민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처음 취재를 갔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비가 삼엄하고 그들이 제공해준 공간에 한해 촬영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객관보다는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한다”며 “다만 객관적 현실에대해 확정적 이야기를 할 수는없지만 다각도의 시선을 담아냄으로써 보는 사람이 판단해보라고 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북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한 축으로, 다른 한 갈래는 그들의 일상을 거울처럼 담아내는 방식이다. 영화는 북한의 이데올로기, 역사, 일상 등이 여러 갈래로 들어있다.
체제를 지탱하는 힘, 노래
영화를 제작하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예술은 자유스러워야하는데 촬영하는 내내 마음이 짓눌렸다. 방북을 지원해준 미국 인권단체에게 피해가지 않을까, 영상에 나오는 인물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영화를 만들 수 없을 듯 싶었다.
또 하나는 특정한 방향이나 의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북을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난 2010년부터 3차례 촬영이 끝날때까지 영화의 흐름을 잡을 수 없었다. 4년여를 필름과 씨름하며 마침내 영상의 발언을 읽어냈다.
‘노래’. 그랬다. 북에서는 일상의 모든 곳에 노래가 있었다. 2012년 두 번째 방북 이후 일상에 자리한 ‘노래’를 느끼게 됐다. 가사와 별개로 멜로디가 드라마틱했다. 그들은 배가 고파도 힘들어도 추워도 노래를 했다. 그 힘으로, 예술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해내는 것이었다. 체제선전과 일체화. 고통의 극복에 ‘노래’라는 예술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내면화된 이데올로기의 위험성
“우리가 막연히 국가나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외부에서 작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죠. 북한을 오가며, 이 작품을 완성하면서 확인하게 된 일이라고 할까요”
유 교수가지적한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중에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섬뜩한 경고로 읽힌다.
“예술에서 가장중요한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북에서는 자유가 없어도 예술이 가능하더라”는 유 교수는 “인간이란 종,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북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노래이고 북한 사람들의 생존이 가능한 이유는 예술”이라며 “체제가 지탱이 되는 것도 예술의 힘이고 북은 아마도 그것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인다.
북에 대한 관심, 한국인의 현실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어렵게 북을 방문해야 했는가, 왜 굳이 북한에 대한 작품을 구상했는냐’는 질문에 ‘북은 한국인에게 화두 아니냐’고 간단히 답한다. ‘분단은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의 일상이지만 북에 갈수도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 이어진다.
유 교수는 “다큐는 현실에 가깝게 가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다큐조차 허구적이거나 반, 한쪽면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을 편견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그들의 시선이 영화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영화에는 그녀의 아버지 유영춘 옹의 인터뷰는 북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이 영화로 미국에서 인기스타가 됐다는 유영춘 옹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유학한, 서울대 출신의 지식인이다.
‘당시 정말 똑똑하고 재능있는 애들은 사회주의를 좇아 북으로 넘어갔다. 남았으면 이사회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했을 사람들이다. 당신도 북으로 가자는 권유가 있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는 늙은 지식인의 발언은 회한도 과장도 그무엇도 아닌 마음 그대로였다.
유 교수는 말미에 아버지는 광주가 어머니는 목포가 고향이라는 말을 흘린다. 더 이상 가족사를 나눌 수 없었다.
세상을 꿈꾸는 예술가 유순미
유 교수의 유년의 꿈은 작가였다. 대학에서도 독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70-80년대 한국사회의 격렬한 모순을 접하며 방향을 틀었다.
‘문학으로는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서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녀는 본격적으로 극영화 작업등을 하며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가 지금껏 다룬 소재들은 위안부, 입양아, 베트남 전쟁, 북한 등 상업영화가 들여다보기 어려운 사회적 역사적 영역이다. 이에대해 유 교수는 “특별히 사회적 역사적 이슈를 작품화하고자 한건 아니’지만 ‘우연히’ 그분들과 인연이 닿았다”며 “하다보니 모두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 교수의 다음 이야기는 그녀의 작품들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사람들은 마치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살거나 살려고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
유 교수는 덧붙인다. “꼭 그러고자 한건 아닌데 역사, 시간의 문제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미치나 하는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유 교수의 다음 작품 구상은 한국사회 민주화에 대한 여정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본격적인 작품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이와함께 한국의 민주화 인물들에 관한 작품도 계획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본격적인 작품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이와함께 한국의 민주화 인물들에 관한 작품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처럼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가 드물고 괭장히 중요한데 오늘날 ‘이상’이 비웃음을 당하는 현실이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상주의자들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얼 놓쳤는지 들여다봐야한다”며 “예를들어 거대한 자본주의에 대항해 이긴 사람은 없지만 역사라는 긴 시간에서 보면 모든 주의를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실만 들여다보면 불가능하지만 역사적으로 영원한 시간을 갖고 들여다보면 모두 지나간다. 변화는 필연이다”
연세대 독문과 출신의 유 교수는 메사추세스 예술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메사추세스예술대는 미국의 유일한 공립 예술대학으로 자유롭고 열린 문화와 사고의 장을 자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2009년부터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유 교수는 알려진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글=조덕진, 사진=아시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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