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김유정문학상
"산다는 건 그저 애잔할 뿐이다
누군가의 애잔함으로
내 애잔함을 위로받고
내 애잔함으로
누군가의 애잔함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삶이고 문학이다"
“가족 외에, 어쩌면 가족조차 잊어버렸을 그의 누추한 삶에 김유정문학상 수상이 작은 위로나마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로 제 14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정지아 작가의 소회는 간명하다.
“세상의 잣대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초라한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잊혀지는 게 아팠다”며 “초라하게 살다갔지만 너로 인해 많은 사람의 인생이 따듯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말한다. 수상을 소설 속 주인공에게 헌정한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하염없이 따듯하고, 맺히거나 꼬인 곳 하나 없는 사촌 동생이 덜컥 삶을 마감했다.배운 것도 부족하고 직업도 변변치 않지만 하염없는 그의 고운 마음결은 지나치기 어렵다. 너무 착해 다른 사람 일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눈치껏 해라, 그 사람들이 너를 이용하는 것이다”는 사촌 누나 정지아의 충고를 “형님들은 늙었응께 젊은 내가 허믄 되제”라는 마음결을 펴보이던 그였다.
그의 구김없는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여유를 안긴다.
작가는 “남들 눈에 초라한 듯 보이지만 최선을 다한 치열함과 아픔과 사랑이 있고, 삶에 닥치는 많은 고통들 중 어떤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그런 보통의 삶에 관한, 비범한 평범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어 “다만, 실재하는 인물이다 보니 자칫 소설과 실재를 혼동할까 우려된다”며 “일부의 사실을 매개로 문학적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웃는다.
“누구나 창작자로 소통하는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고민한다는 그녀는 “산다는 건 그저 애잔할 뿐이다. 누군가의 애잔함으로 내 애잔함을 위로받고, 내 애잔함으로 누군가의 애잔함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제게는 삶이고 문학이다”라고 더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 대산문화 올 봄 호에 실렸다.
이번 심사위원단으로 참여한 소설가 이승우, 문학평론가 김경수·정홍수·신수정씨는 극찬에 가까운 평을 내놨다.
“어떤 삶은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 밖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신수정), “인생의 ‘어쩔 수 없음’이라는 익숙한, 굳은 명제를 생생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낯설게 살려낸다”(이승우), “단편소설이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수작”(김경수),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하나 정작 안으로 들어가면 뭉뚱그려지고 막막해지기만 하는 사람살이의 경계를 생생하고 끈덕진 입말의 현장성으로 부조한다. 정지아의 소설은 역사나 이념의 기호가 실체화할 수 없는 흐릿한 실루엣 앞으로 끝내 우리를 데려간다”(정홍수)
실록소설 ‘빨치산의 딸’로 문단과 사회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정지아 작가는 실재로 빨치산 무대였던 지리산 자락 구례 태생이다.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이던 아버지 고 정운창씨와 남부군 이현상 부대 정치지도원이었던 어머니 이옥남 여사의 외동 딸, 빨치산의 딸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구례에서 어머니 이옥남 여사와 함께 자연과 소설을 일구고 있다.
단편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을 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문화예술위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유정문학상은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는 상으로 2007년에 제정됐다. 전년 7월부터 해당 연도 6월까지 잡지와 단행본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3천만원. 시상식은 오는 17일 오후 2시, 강원 춘천 베어스호텔 2층 소양홀에서 열린다.
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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