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출신 인연 75명 문인 담아
'광양학' 정립 필요성 차원 저술
문헌 조사 현장 취재 병행 눈길
광양(光陽)은 예로부터 빛과 볕의 고장으로 불렸다. 그만큼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이 풍부했다.
사람들은 기후가 따뜻해서 겨울에도 외투를 입지 않았고 인심은 풍성하고 넉넉했다.
자연적 조건은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광양도 오래 전부터 문향으로 불릴만큼 숱한 문인들을 배출했다. 최근 광양문화원이 발간한 '광양문학사1'(햇빛광고刊)은 소설가 박혜강씨가 광양시 의뢰로 지역문학사 복원을 위해 펴낸 첫번째 결과물이다.
이 책은 1800년대 이전 광양 출신 문인이거나 광양과 인연(관직·유배·여행 등으로 글을 남김)이 있었던 문인들의 기록을 토대로 엮었다.
박혜강 작가는 해당 문인들의 간략한 이력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문헌의 기록을 참고해 이들이 남긴 문학작품을 분석·소개함과 동시에 설명을 덧붙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여기에는 '해동제일'이라고 했던 문정공 김황원을 필두로 75명의 문인들을 기록했다.
김황원은 고려 전기 문신으로 한림원에 재직하며 글로 유명했다.
당시 요나라에서 사신이 왔는데 김황원이 궁중 잔치 자리에서 구호(즉흥시)를 지었는데 사신이 감탄해 시 전체를 필사해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광양 김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조선 시가문학의 거봉인 고산 윤선도도 광양과 인연을 맺은 대표적 문인으로 꼽힌다.
윤선도의 마지막 유배지는 완도 보길도가 아닌 광양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이었다. 보길도는 마지막 은거지이고 광양 추동마을은 엄밀히 말하면 '마지막 이배지'였다.
그는 당시 재정이 어려운 광양향교 운영을 위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절의의 상징' 매천 황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10년 8월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절멸시' 4수를 남기고 순절했다. 황현은 조선 철종 때 광양현 미내면(현 봉강) 석사리 서석마을에서 태어났고 세종 때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의 후손이다.
필자는 이와함께 광양을 읊은 문인들로 퇴암 정지, 우정 조박, 노봉 김극기, 추강 남효온, 월파 서신구, 우사 전우치, 강재 손치규 등의 삶과 문학을 기록과 취재를 통해 정리했다.
또 전문가 인터뷰와 사진 확보 등을 위해 광양 등 전국 각지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이번 저술은 지역문학사 복원 차원에서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문헌 조사와 현장 취재 등을 병행해 저술, 출간 의미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혜강 작가는 이번 1권 출간에 이어 내년까지 '광양문학사2' 등을 잇따라 펴낼 계획이다.
박혜강 작가는 "문화의 토대와 모체는 문학이며 광양 지역 문화가 발전하려면 '광양학'이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며 "모든 작업을 묵묵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동기에서 출발한 힘과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박혜강 작가는 광양 진상면 출생으로 조선대를 나와 지난 89년 무크지 '문학예술운동' 제2집에 중편 '검은 화산'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젊은 혁명가의 초상' '검은 노을'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운주 1-5권' '조선의 선비들' '매천 황현' '곷잎처럼' 등을 냈다.
(사)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과 (사)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무등일보 편집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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