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17 비상계엄과 2024년 12.3 비상계엄은 유사한 듯 다르다. 2024년 계엄의 수사 결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포고령'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사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명할 수 있다. 유사점은 정치활동 제한, 언론과 출판의 통제, 집회와 시위의 금지,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그리고 '처단'이라는 용어 사용이다.
극명한 차이점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다. 1980년대의 미디어는 신문, 라디오, TV 방송이 중심이었다. 당시 계엄군은 시민의 눈과 귀를 막고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문사와 방송국을 점령하였다. 미디어는 철저한 검열 아래 놓였으며, 국민은 정부의 일방적인 메시지만 전달받을 수 있었고, 개인의 의견 표출이나 공론화는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44년이 흐른 2024년의 주요 미디어 매체는 유튜브와 TV 중심으로 변모했다. 유명 유튜버와 정치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5G 무선 네트워크를 타고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특히, 유튜브는 계엄 상황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의견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쌍방향 소통의 장으로 기능했다. 이는 '1인 1폰'과 '1인 미디어 시대'임을 재입증한 사건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미디어의 용도적 관점에서 보면, 1980년에는 군사정권 홍보를 위한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미디어가 2024년에는 계엄군의 행위를 감시하는 '시민의 도구'로 바뀌었다. 미디어의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1980년의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미디어'가 2024년에는 '다중적이고 수평적인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이는 1인 미디어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미디어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기 어렵게 만들고, 누구나 기자가 되고 카메라 감독이 될 수 있는 환경으로 진화하였음을 시사한다.
1980년 군사정권의 종식까지 국민들은 쿠테타 주인공 중심의 뉴스를 시청해야만 했다. 무려 7년 반, 이후 5년, 도합 12년 반이다. 반면, 2024년에는 시민들의 빠른 저항과 계엄군의 소극적 행동이 결합하여 330분 만에 계엄이 해제되었다. 물론 내란이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피로도이다.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뉴스 시청을 줄이고 관련 자료의 독서나 영화 시청을 제안한다. 넓게 보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인간사(人間事)이다. 1인 미디어는 가짜 뉴스, 여론 조작, 필터버블에 의한 확증편향의 온상이기도 하다. 계엄을 일으킨 권력자들은 권력 연장과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법적, 제도적, 절차적 허점을 파고든다. 그들은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 즉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며 갈등을 조장한다. 그러나 그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 군 침입 동영상과 포고령이 증거이고, '처단'이라는 용어에 우두머리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AI의 대부, 제프리 힌튼 교수는 "인간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이 가장 두렵다"라고 경고했다.
미디어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관련 역사를 찾고 비교하는 미디어리터러시이다.
김경수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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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길들여지는 자발적 복종자들 ■김용근의 잡학카페어린이는 자연이라는 오래된 교과서의 페이지를 손끝으로 넘기며, 돌과 모래, 나뭇가지를 이용해 생각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키우며 성장해 왔다. 그들이 놀이를 통해 펼친 손짓 하나하나는 마음속 도서관을 채우는 기억의 설계도가 됐고, 인류의 뇌는 그러한 오래된 놀이의 프로그램을 여전히 기억하며 진화해 오고 있다. 인간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상상력의 불꽃을 지피며 오늘에 이르렀다.이처럼 어린 시절의 원시적인 놀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활동이자 곧 진화의 과정이다. 문명은 자연과의 감각적인 교류의 기억에서 시작됐으며, 손과 도구를 통한 창조의 형성 과정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이라는 연산적 타자에 먼저 접촉하게 되면서 타율적인 인지능력을 갖게 됐다.현대의 아이들이 타자의 시선으로 짜인 코드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손끝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세계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자라나야 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창의성의 나무는 뿌리를 잃은 채 길들여짐에 기대어 점차 휘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어린이들은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접촉 놀이가 사라진 채, 화면 속 가상의 세계를 터치 한 번으로 접속하며 놀이한다. 사물이 사라지고 기억도 사라진 오늘날, 사물 접촉 놀이는 더 이상 일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과거의 원시 놀이가 돼버렸다.창의적 사고의 핵심은 단지 지능이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비롯된다. 기억은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감각은 알아차림이라는 예민성을 일으킨다. 창의적 사고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은 이러한 감각에서 오며, 이는 모두 축적된 기억 속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물과의 놀이를 통해 풍부하게 기억을 축적해 온 사람일수록 창의성이 더욱 쉽게 발현된다.예를 들어, 노벨상을 수상하고 대중 강연자로도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 Feynman),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소설을 쓰던 중 20년 만에 수학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등 다양한 과학자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놀이 기억에서 창의력의 뿌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세상을 '재미있는 퍼즐'처럼 바라보며 과학을 탐구했고, 이는 바로 어린 시절 놀이의 기억 덕분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강과 샛별처럼 등장한 한국계 소설가 김주혜,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 역시 어린 시절의 감각적 놀이에서 창작의 뿌리를 찾았다. 그러나 오늘날, 원시적 놀이가 사라진 자리에 AI와 스마트폰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콘텐츠가 아닌 남이 제작한 콘텐츠에 '자발적 복종'으로 길들여지는 시대가 됐다.21세기 초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깊은 연결망에 접속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AI와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고,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삶이 됐다. 이러한 접속은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점점 더 '길들여진 존재'로 퇴화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길들여짐이 외부로부터 강제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복종'이라는 점이다.인간과 공진화하는 기계는 과거에는 손과 발의 기능을 대신해 왔으나, 이제는 뇌의 고유한 기능마저도 대체하려 한다. AI시대는 인간의 생각, 판단, 심지어 기억까지도 대신하게 됐다. 내비게이션이 사람들 머릿속의 지도를 지우고, 기계의 도움 없이 방향을 찾는 능력을 상실하게 한 것처럼, 이제는 인간이 기계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길들이는 시대가 됐다. 더 나아가 디지털 문명은 인간이 만든 접속 기술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행동, 사고, 감정까지 조절하고 규정하게 됐다. 결국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아닌, '기술에 의해 정의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길들여진 사회이다.이러한 '자발적 복종의 길들여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원이라는 제도화된 놀이가 아닌, 땅에서 사물과 또래들과 함께 어우러져 노는 원시적 놀이의 회복이 필요하다. 또한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빠른 보상과 반복적인 자극에 의존하기보다는, 기억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교육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접속 기술이 인간의 주의력을 빼앗고 깊은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방해하는 지금, 우리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길들여짐을 넘어 '주체적 접촉'의 삶을 회복해야 할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손끝으로 직접 만지는 돌멩이, 나무, 종이, 펜 하나가 삶의 중심을 이루는 반면, 스마트폰 속 반짝이는 응답은 유리창 너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길들여짐에 자발적 복종하는 존재는 결국 노예일 뿐이며, 우리는 길들여짐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주인'이 돼야 한다.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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