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현대 시인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세상과
불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땅에서
너무나 많은 시인이 국가 권력과 불화하다가
감옥에 갇힌 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천상병 김지하
김남주 신경림 박노해 송경동 …
시인과 수인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본질적으로 공속하는 존재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류의 힘은 두려움을 이기고 현실과
불화했던 그 역사에서 나온다
이 세계에서 시인은 이방인이다. 세계와 불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존재 이유다. 모두가, 시킨다고 하기 싫은 공부 하다가, 모두가 남들처럼 취업하여, 시키는 대로 할 짓 못 할 짓 가리지 않고, 가축처럼 세상과 어울려 산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풍경이겠는가? 시인은 세상과 불화함으로써 인간이 아직은 모두 축생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음을 증거하는 알리바이이다. 하지만 세상과 불화하면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훌륭한 시인이 흔치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젊을 때 훌륭한 시인이라도 나이 들어 좋은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평생을 세상과 불화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지하 시인이 나이 들어서는 시를 쓰지는 못하고 낯선 방식으로 세상과 화해한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누구도 남에게 평생 세상과 불화하고 살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남이 요구하지 않아도 끝까지 세상과 불화하는 시인의 길을 걷는 사람도 없지는 않으니, 시인이 못 된 나는 다만 말을 아낄 뿐이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시인이 세상과 불화하더라도 그 방식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시인 프랑수아 비용처럼 범죄자나 부랑아로 살았던 시인도 있고, 횔덜린처럼 고상하게 미쳐버린 시인도 있다. 아니면 셸리처럼 지배적 종교와 관습을 거부하고 제 식으로 삶을 살다 요절한 시인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같은 이유로 세상과 불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들이 세상과 불화하는 이유 역시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한 시인이 세상과 불화하는 이유가 바로 그 시인의 가슴속 시혼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한국의 현대 시는 특별한 데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현대 시인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세상과 불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땅에서 너무나 많은 시인이 국가 권력과 불화하다가 감옥에 갇힌 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전통과도 같은 것인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그 전통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해는 1919년 3.1운동 이후 투옥되어 1922년 출옥했다. 그리고 4년 뒤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만해가 만약 3.1운동 이후 투옥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나, 설령 그가 시를 썼더라도 그 시의 성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든, 감옥이 '님의 침묵'이 잉태된 장소였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감옥에서 태어난 시인이기는 이육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으로 처음 투옥되었다가, 1931년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투옥되었고, 1934년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결국 1944년 1월 베이징 주재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육사처럼 여러 번 투옥되지는 않았으나, 감옥에서 삶을 완성한 것은 윤동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더 애잔하고 비통하다. 육사는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의열단의 단원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가 체포되고 투옥되었던 사정이 이해라도 되지만, 유학생 윤동주는 무슨 일로 투옥되어 끝내 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것일까?
이 땅에서 시인이 수인이 되어야 했던 운명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늙어서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았던 천상병 시인도, 이제 역사가 된 김지하도, 가수 안치환의 노래로, 죽어서도 살아 있는 김남주 시인도, '가난한 사랑 노래'의 신경림 시인도, 시인이면서 수인이었다.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시인도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희망 버스의 송경동 시인도 수인이었다. 그들에게 시인과 수인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본질적으로 공속하는 존재 방식이었던 것이다.
굳이 시인에 국한해서 말하기는 하였으나, 범위를 문학 전체로 넓히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땅에서는 작가들이 단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수인이 되기도 한다. '순이삼촌'이 무슨 대단한 도발이라고, 그 소설의 작가 현기영 선생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야 했을까? 그러니 한국의 작가들은 개인적으로 감옥 생활을 했든 하지 않았든, 너나없이 교도소 담장 위에 걸터앉아 작품을 쓴 것과 같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교도소 안쪽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한국 현대 현대 문학이 보여주는 이런 전통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개성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시인이 수인이 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한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시인들이 한국의 현대 시인들처럼 세상과 불화하는 것이 문학사의 뚜렷한 전통이 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의한 세계 속에서 정직하게 불화하는 것이 시인의 존재 이유라면, 한국의 시인들처럼 시인의 존재 이유를 뜨겁게 보여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 예술이 세상과 불화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된 나라에서는 대중 예술 역시 그런 전통을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게 마련이다. 한국 영화 예술의 선구자라 부를 만한 춘사 나운규는 영화에 투신하기 전에, 만주에서 두만강 건너 회령 경찰서 수비대 습격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2년간 옥살이를 했던 수인이었다. 해방 후에는, '만추'의 이만희 감독 역시 박정희 치하에서, 그가 만든 영화 '7인의 여포로'가 북한군을 용감하게 그려 '북괴'를 고무, 찬양하였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던 수인이었다. 한국의 영화예술은 그런 척박한 땅에서 자란 나무이다. 한류의 힘은 두려움을 이기고 현실과 불화했던 그 역사에서 나온다.
그러나 저항과 수난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독립운동은 조롱받고, 민주화운동 또한 멸시되고 모욕받는 오늘날, 친일 부역자들과 민주주의의 적들이 득세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시절 권력과 불화하던 시인들을 잡아넣던 경찰이 거꾸로 권력에 저항하는 투사로 나섰다는 초현실적 보도를 보았다. 이러다 후세에, 시인이 수인이고 수인이 시인이던 한국 문학사에, 급기야 시인이 되기 위해 수인이 된 경찰서장도 있었다고 기록되는 건 아닐까? 대가 끊어져 버린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이어가는 경찰의 용기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이번 일이 경찰 조직에는 명예가 되고,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는 새로운 전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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