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증오·혐오를 파는 상인들을 경계하라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2.11.29. 09:58

극단적, 일방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가리켜 '정치군수업자'라고 했는데, 이들 중에

증오·혐오를 파는 상인들이 있다

어떤 정치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아무리

밉고 싫더라도 그들을 가두거나 추방할 수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당파성만 빼곤 다른

모든 면에선 당신과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이웃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증오·혐오를 파는

사람들의 선전·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더불어 같이 살자

1994년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을 꺾고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되었다. 하원에서 공화당 다수 체제를 구축한 것은 40년만의 대사건이었기에,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쿠데타'로 불렸으며, 그 주역인 뉴트 깅리치를 부각시켜 '깅리치 혁명'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돌이켜보자면, 진정한 '깅리치 혁명'은 극단적인 '정치의 전쟁화'였다.

1979년 36세에 하원의원이 된 깅리치는 이후 20년간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적 스타일로 악명과 더불어 열혈 지지자들을 얻었다. 그는 1983년 자신과 뜻이 맞는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을 만들어 민주당을 공격하는 첨병 역할을 맡았다. 그는 언론매체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그걸 잘 이용하는 탁월한 미디어 선동가였다. 그는 민주당 원로들을 화나게 만들 독설과 욕설을 내뿜었다. 이에 큰 흥미를 느낀 언론매체들이 그걸 대서특필해대면서 깅리치는 유명해졌고 강성 공화당원들의 뜨거운 지지를 누리게 되었다.

1995년 하원의장이 되면서 깅리치는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구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화당과 민주당을 영원한 원수 관계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그걸 곧장 실천에 옮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화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엔 대화와 더불어 우정이 살아 있었다. 현 대통령 조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과 그런 관계를 유지했는데, 언제부턴가 그게 어려워졌다. 그는 지난 2017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존과 나 둘 다 논쟁에 참여하곤 했죠. 우린 민주당 쪽으로든 공화당 쪽으로든 건너가서, 글자 그대로, 옆에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걸 질책하더군요. 양당 지도부가요. 논쟁 중에 그런 식으로 말을 걸고 친한 티를 내면 어쩌냐는 거죠. 1990년대 깅리치 혁명 이후의 일입니다. 지도부는 우리가 같이 있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깅리치는 무슨 일을 했던가?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명저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서론에 소개된 일부 수법을 감상해보자. 깅리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의회 근무일을 주 5일에서 주 3일로 단축한 것이었다. 지역구에서 선거구민들과 더 어울리면서 모금활동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지만, 이 조치가 미친 영향은 컸다. 가족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이사하는 의원이 줄었고, 의원들이 소속을 초월해 우정을 쌓던 전통이 무너졌다.

또한 깅리치는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협력하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의원들의 언어 사용에까지 개입했다. 평소 민주당 의원들을 나치에 자주 비유하곤 했던 깅리치는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이나 민주당에 대해 말할 땐 "부패했다"거나 "역겹다" 같은 혐오감 유발 어휘들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깅리치가 이런 일련의 '원수 만들기' 프로젝트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초당파적 모임과 회의, 그리고 막후 협상 같은 것이 사라졌으며, 이런 규범은 하원을 넘어 상원마저 점령하고 말았다. 깅리치는 정계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미국 정치를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이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작은 사건이 최근 벌어졌다는 게 흥미롭다. 지난 11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여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다. 협치를 복원하자는 명목으로 22년 만에 개최된 이벤트였다. 경기 후 여야를 막론하고 호평이 쏟아진 좋은 기획이었지만 강성 지지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페이스북 등에 '인증샷'을 올린 야당 의원 일부는 그들로부터 이런 비판 세례를 받았다. "지금이 이런 인증샷 올릴 만큼 한가하냐", "지금 시국이 이럴때냐", "여야가 희희낙락할 시간인가", "지금은 치열한 전쟁 중이다", "정신들 차려라" 등등.

의원들은 즉각 '인증샷'을 삭제했다. "주시는 말씀을 겸허히 받겠습니다"라는 사과 취지의 글을 올린 의원도 있었다. 의원들은 이런 경우 대화나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지지자들을 설득해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을 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페이스북은 대화나 토론을 위한 마당이 아니잖은가.

때마침 나온 '시사저널'의 표지 기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최근 2년 간 팔로워와 게시물 수에서 상위권에 속한 정치인 16명의 페이스북 글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분석한 기사다. '적대와 분열, 가짜뉴스 부르는 페이스북의 저주'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1천회 이상 공유가 이뤄진 게시물 51건 중 42건이 '적대 집단'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온몸으로 알고 있다. '적대 집단'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강하게 표현하는 메시지가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그렇게 길들여진 지지자들에게 '협치 축구'라는 건 생뚱맞은 배신 행위로 여겨졌을 게다.

물론 그런 '적대와 분열'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적대와 분열'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그들은 누구인가? 강성 팬덤정치를 부추겨 이익을 본 정치인들과 더불어 그런 팬덤산업에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취한 인플루언서들을 들 수 있겠지만, 미국과는 달리 한국엔 깅리치의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지목할 만한 단수의 인물은 없다.

나는 증오·혐오를 파는 상인들을 경계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전 민주당 의원 표창원은 "극단적, 일방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가리켜 '정치군수업자'라고 했는데, 이들 중에 증오·혐오를 파는 상인들이 있다. 이들은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까지 누리고 있기에 비난하긴 쉽지 않지만, 강한 문제의식이라도 가져야 한다.

잘 생각해보자. 어떤 정치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아무리 밉고 싫더라도 그들을 가두거나 추방할 수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당파성만 빼곤 다른 모든 면에선 당신과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이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증오·혐오의 열정이나 광기를 쏟는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사적 이익을 위해 증오·혐오를 파는 사람들의 선전·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더불어 같이 살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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