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스크를 챙기고, 쓴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걸까? 이런 일상의 모습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기이한 풍경인데, 인간들은
그래도 적응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가장 따스한 감각은 바로
사랑의 감각이며, 이 감각은 어떤 바이러스라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쓰여진
지구 멸망과 관련된 중요한 재난 소설들,
예컨대 정세랑의 '리셋'과 천선란의 '레시' 등도
그런 낙관적 전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기운을 북돋운다
-마스크
드디어, 마스크를 벗을 시간이 되어가는 듯하다. 방역당국은 실내 마스크화를 해제하는 방안을 곧(23일) 발표할 예정이란다. 물론 단계적 해제가 추진될 것이다. 3년만이다. 이를 두고 연말의 낭보라 할 수 있을까?
'마스크 인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갑갑하고도 기이했던 경험이었다. 기실 그게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여전히 그런 일이 지속될 지는 그 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으리라. 코로나는 확실하게 숙지기는커녕 여전히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어쨌든 실내서 마스크를 벗는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한 '해방'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전 세계 인류와 더불어, 그런 기막힌 '경험'을 가졌다.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로 서로 경계하고 갇혀 있다가 그것이 조금씩 풀리면서 마스크를 한 채 외출을 하고, 전철을 탄다. 놀이공원은 마스크 쓴 사람들로 넘친다. 등산할 때도 마스크를 한다. 강연을 하며, 청중들을 보니 전부 마스크를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했으나, 여전히 하고 다닌다. 월드컵 경기의 관중석은 마스크를 벗어버린 인간들의 열정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직 마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진 않는 것이다. 그래, 그런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스크를 챙기고, 쓴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걸까? 식당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음식을 주문하고, 마스크를 잠시 벗고 음식을 먹고는 이내 마스크를 쓴다. 마스크를 쓴 채 축구를 응원하고, 영화를 보며, 카페를 들락거린다. 이런 일상의 모습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기이한 풍경인데, 인간들은 그래도 적응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생각이 든다.
-버팀
인간의 적응력이라 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의 영화 '퍼펙트 센스'다. 이 영화는 2011년 개봉됐다. 코로나 상황을 10년 전에 예언한 것으로 얘기가 되곤 한다. 식당에서 주인공 남녀가 마스크를 한 모습, 전염병 부작용으로 미각과 후각이 차단되는 것들이 정확하게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후각, 미각, 청각 등 감각을 하나씩 상실하게 되는 사람들. 패닉 상태에 빠진 세상 속에서 운명적 사랑을 나누게 되는 남녀 주인공(이완 맥그리거와 에바 그린이 연기)의 전망 없는 관계.
첫 데이트에서 식사 광경을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다. 음식 맛은 청각과 시각보다 더 직접적인 감정과 정서를 감지한다. 후각을 잃으면 기억도 잃고, 그래서 추억마저 잃어버린다. 하지만 극중 요리사인 주인공은 "인생은 계속된다"고 낙관적으로 말한다. 후각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미각적으로 더 자극적인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악화하여, 인간들은 후각에 이어 미각도 잃는다. 하지만 인간은 또 후각과 미각이 없는 세상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인간들은 나머지 감각들, 예컨대 청각과 시각마저 잃게 되더라도 '범 공용어의 수화를 보급하는 등 다시금 적응'해갈 것이다.
인간들이 갖는 이런 낙관과 적응력을 보며, 인간들이 과연 제대로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의 창궐 앞에 무력해진 채 안간힘으로 버티는 인류의 미래가 새삼 어둡게 되돌아 보이는, 코로나 4년차를 앞둔 세모이다.
-사랑
바람이 차다. 눈발이 성성하게 날리더니, 한 순간 폭설이 되기도 한다. 동지를 앞두고 사람들은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끓는 상태다. 코로나 관련 족쇄들이 점점 풀려서 사람들은 어디든 예전처럼 모여서 들끓는다. 주말의 대도시를 빠져나가는 승용차들의 끊임없는 행렬. 외국 여행을 위해 여권 사진을 찍는 이들도 늘어난다. 이런 모습들을 두고 인간의 적응력의 대단함을 찬탄할 수 있을까?
어쨌든 어둔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부르고 만지며, 바라는 것이야말로 인간들의 절실한 사랑의 형태이다. 사랑의 감정은 여전히 뜨거운 불씨로 지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 라캉의 말처럼 사랑은 세계를 만드는 것. '퍼펙트 센스'가 재난영화이면서 로맨스가 그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이러스로 인해 후각과 미각 청각 등 주요한 감각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가운데서도 인간들은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는다. 절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를 잃는 일이기 때문에 이 대재앙 속에서 "삶은 지속된다"는 대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혼자 잠자던 남자는 타인과 잠드는 법을 배우게 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렇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고 쓰다듬고 껴안고 키스하고 섹스하고 잠드는' 이 당연한 감각이 사라진 세계에서 더욱더 가열차게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모든 감각이 사라진 침묵과 암흑의 세계에서 비로소 사랑의 감각을 재발견하는 주인공들. 영화는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만들어낸 낙관적인 세계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가장 따스한 감각은 바로 사랑의 감각이며, 이 감각은 어떤 바이러스라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쓰여진 지구 멸망과 관련된 중요한 재난 소설들, 예컨대 정세랑의 '리셋'과 천선란의 '레시' 등도 그런 낙관적 전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기운을 북돋운다.
그래, 모진 한겨울의 추위 속을 흐르는 한 줄기 햇살처럼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여전히 우리에겐 그지없이 따스한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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