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게 일일이 '굿 모닝' 하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은 교장, 교감이었다
매일 이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학교의 교장, 교감만 훌륭한 것이 아니고,
교사들도 모두 훌륭했다. 교사들 역시
권위주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아이들과
대등한 인격체로서 정성을 다해 교육에 임했다
교사들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힘껏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인간교육, 글쓰기 훈련,
생각하는 훈련을 해주었다. 한국 학교도
바뀌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딱 30년 전의 일이다. 나는 1993년 1년간 교환교수로 보스턴에 가서 살았다. 보스턴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중심도시로서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다. 1972년 대선에서 공화당 닉슨 후보에 맞섰던 미국 민주당의 매우 진보적인 후보 조지 맥거번은 전국적으로 몰패했다. 심지어 자기 고향인 사우스 다코타주에서도 패배해 전국 대의원 숫자가 520 : 17로 밀렸는데, 그 17명이 바로 매사추세츠주였다. 맥거번은 50개주 중에서 매사추세츠주 한 곳만 이겼다. 그 중심도시가 보스턴이다. 보스턴은 내가 젊은 시절 5년간 박사학위 공부를 한 곳이라 편하고 친숙한 곳이다. 과거 유학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 시절에는 부부 둘이서 생활한 데 비해 이번에는 딸 아이 둘을 데리고 간 것이다. 한국에서 큰딸은 중1, 작은 딸은 초등 3학년생이어서 미국 보스턴의 토빈 스쿨에 각각 7학년, 3학년에 등록했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아이들은 1년간 매일 아침 집 근처에 오는 스쿨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 학교에는 다른 한국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딸애들의 영어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는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됐다. 새로 온 외국 아이가 영어를 못한다고 미국 학생들이 왕따를 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개학 날짜가 9월초 월요일이었는데, 하루 전 일요일에 학교 구경도 할 겸 아이들 학교 적응을 조금이라도 도울 요량으로 학교를 한번 가보려고 미리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기에 내일 등교할 신입생 둘을 둔 아버지인데, 학교 구경을 가도 되느냐 물어보니 얼마든지 오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식구 4명이 걸어서 토빈 스쿨을 갔다.
학교에 당도하니 학교는 아담한 크기에 운동장도 꽤 넓고, 나무도 우거져 있고 그런대로 좋은 환경이라서 우선 마음에 들었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 전화를 받았던 그 할아버지와 옆에 웬 할머니가 둘이서 작업복 차림으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이 학교 수위인줄 알았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고 보니 아니 이럴 수가. 할아버지는 교장, 할머니는 교감이 아닌가. 두 사람은 내일 개학 준비를 위해 먼지를 털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다 어디로 가고 교장, 교감이 이런 귀찮은 일을 하다니. 한국 같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절대로 없다.
놀람은 개학 후에도 계속됐다. 아이들은 대부분 스쿨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데, 매일 아침 차례차례 학교에 도착하는 여러 대의 스쿨 버스를 맞이하는 역할도 교장, 교감 몫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굿 모닝' 하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은 교장, 교감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매일 이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러니 그냥 '굿 모닝'이 아니라 '굿 모닝 존',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등교하는 아이들과 일일이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 교장, 교감은 가장 먼저 출근한다. 교사들은 수업이 시작하는 9시까지 오면 되는데, 교장, 교감은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은 거꾸로 교장, 교감이 제일 늦게 했다. 교사들은 수업을 마치면 일찍 퇴근해도 되지만 교장, 교감은 6시까지 반드시 학교를 지켰다.
이런 걸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고 하는가. 우리나라의 많은 조직에서는 장이 퇴근을 해야 아래 사람들이 퇴근을 하는 권위주의적 관습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이런 관행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우리 마음속의 권위주의다. 오랜 식민지와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들 마음속에 오랜 습관처럼 고착된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 이것이 문제다. 미국 학교에서 본 풍경은 내 마음속의 권위주의를 여지없이 강타했고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학교의 교장, 교감만 훌륭한 것이 아니고, 교사들도 모두 훌륭했다. 교사들 역시 권위주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아이들과 대등한 인격체로서 정성을 다해 교육에 임했다. 교사들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힘껏 가르쳤다. 정말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어 수업에는 매일 같이 글쓰기 숙제를 내주고, 다음 날 아이들이 써온 글을 선생이 꼼꼼히 읽고 틀린 데를 일일이 붉은 글씨로 고쳐주고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이건 여간 수고가 아닌데 그게 우리 아이들의 영어 공부, 생각 훈련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초중고를 통 털어 글쓰기 공부라는 게 매우 적고, 함정 투성이 난해한 문제를 중심으로 애들을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10년 이상 다닌 학생들도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심지어 대학 졸업자, 아니 대학교수들조차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안 되어 엉터리 글, 졸렬한 글이 도처에 난무하지 않는가.
3학년에 다닌 둘째 딸은 특히 영어실력이 모자라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어 시간에는 학교에서 특별히 배려해서 외부에서 경험 많은 영어교사를 초빙해서 따로 1:1 영어수업을 해주었다. 이렇게 황송한 일이 있나. 그리고 체육대회 날 둘째 딸이 달리기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뛰었는데, 다른 아이들을 추월해서 1등으로 골인을 하자 반 아이들이 모두 몰려와 칭찬과 응원을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딸애는 집에 와서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학예회 날 참관하러 갔더니 3학년 아이들이 합창을 하는 노래가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 대표적 반전 노래였다. 한국에서는 가사가 급진적이라고 해서 초등학교에서는 금지할 만한 노래다. 과연 보스턴이구나 싶었다.
미국 학교에서의 1년은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교육, 글쓰기 훈련, 생각하는 훈련을 해주었다. 그게 1년밖에 안 되어 아쉬웠지만 우리 가족은 참교육을 조금은 경험하고 왔다. 그것은 경이로운 세상이었다. 한국 학교도 바뀌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경북대 명예교수, 참여정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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