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외교광장] 한미동맹 70년, 정전체제 70년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3.06.07. 11:44

한국전쟁의 결말은 종전이 아니라

정전이었다. 70년 동안 전쟁상태를

살고 있고, 한미 군사동맹의 견고성은

역설적으로 평화가 확보되지 못했다

게다가 분단의 기원과 구조화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

제국주의 전범국가 일본을 분단하지 않고,

한반도를 분단했던 미국이 이제는 한국을

대러 및 대중 압박의 전위대를 만들려 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모든 희생을 불사하는 승리가 아니라,

자제와 타협을 통한 평화이다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았다. 미국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명분이기도 하다. 한미동맹은 긴 시간이라는 점 외에 전쟁의 결과물이다. 일반 동맹은 전쟁을 막기 위해 맺어지지만, 한미동맹은 동맹관계가 아님에도 미국은 전쟁에 개입했고, 전쟁 직후인 1953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제도화된다.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면이 보인다.

한국전쟁의 결말은 종전이 아니라 정전이었다. 70년 동안 전쟁상태를 살고 있고, 한미 군사동맹의 견고성은 역설적으로 평화가 확보되지 못했다. 게다가 분단의 기원과 구조화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미국이 주도한 얄타협정으로 38도 분단선이, 그리고 한국전쟁의 결과로 휴전선이 그어졌다. 전자는 전후 체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던 미국이 애초에 한반도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던 소련을 불러들였다. 후자는 미국의 도움으로 절반이라도 지켰으나 분단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말할 때 두 번째 분단만 강조하는 이유다.

미국의 전후 아시아전략은 아시아의 국가들과 비대칭 양자 동맹을 구축하는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다. 미일 동맹을 핵심으로 아시아를 재건하고, 미군 주둔을 통한 안보 우산을 제공함으로써 반공 전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냉전이 심화하면서 다수의 양자 동맹만으로는 북방의 적대 진영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고 동맹국 간의 연결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연결이 미국의 전략적 고민이자 숙원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초 레이건은 아시아에서 일본을 '운명 공동체'로까지 부르면서 신냉전하에서의 대소련 방위구상을 시도했고, 한미일을 본격적으로 연결하려 했다. 나카소네는 미국의 요구로 취임 초 방미 직전에 한국을 방문해 전두환과 만나 전략적 공조에 합의한다. 이들 3각 공조는 1987년 12월 중거리 핵무기 폐기조약(INF)까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가, 탈냉전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약화했다. 이후 한·미·일의 3각 공조 구축이 재시도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서다.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한미일을 묶으려 했다. 그러나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이 원하지 않는 동북아지역 분쟁에 연루될 수 있는 위험을 감지하고 3각 군사협력으로 진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3국 군사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3번째 시도는 오바마에서 시작했고, 바이든이 지금 완성하려 한다. 이전 두 차례는 공화당 정부였으나, 민주당 정부가 시도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데,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가 곧 한미일 동맹의 실질화를 초래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전임 노무현 정부와는 판이하게 미국의 의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하지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를 밀실에서 추진하다가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대일 국민감정이 악화하면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일관계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농단에 휩싸이는 가운데서도 미국의 압박으로 지소미아와 위안부합의를 체결한다. 미국은 지소미아-상호군수지원협정-지역 미사일방어체제의 3단계가 한미일 군사동맹의 실질화 과정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아시아전략, 특히 대중전략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한일관계 악화라고 인식해왔다. 과거에는, 그리고 적어도 민주당은 일본의 반역사적 행동을 비판하는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략적 필요가 더 중요시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공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군사협력을 방해하는 우경화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충분히 노력과 성의를 보였다는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서는 한일의 역사대립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한미일 동맹 구축과 관련해서 한미동맹에도 한국에 대한 역할 변화의 압력이 가해졌다. 핵심이 바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전략동맹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동맹의 격상이라고 강조했지만, 오히려 대미의존적 관계를 답습하고, 미·중 및 미·러 갈등이 심화하는 지정학적 맥락에서 한국이 끌려 들어가는 연루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한미 전략동맹은 보수 정부 9년 동안 꾸준히 추진되다가, 문재인 정부로 인해 지연 또는 중단되었다가 현재 윤석열 정부에 와서 부활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바이든과의 첫 정상회담과 올해 방미에서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목표를 확고히 했다. 포괄적이라는 말은 안보 중심의 동맹을 넘어 외교와 경제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동맹이라는 말까지 동원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한국 대기업들의 수십조 투자까지 약속했고, 대중 공급망 배제 등에서도 미국의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이 과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에 주둔한 미군의 활용범위를 확대하는 차원이라면, 최근의 움직임은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한국의 군대가 동원될 여지마저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제공이나, 대만 언급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올해는 동맹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동맹의 원인이었던 한국전쟁 정전도 70주년이다. 두 가지 기념일 모두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70년의 군사동맹만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상당한 함의를 내포한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 체제로 가려는 노력보다는 다시 전쟁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제기하며 군비경쟁과 진영대결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제국주의 전범국가 일본을 분단하지 않고, 한반도를 분단했던 미국이 이제는 한국을 대러 및 대중 압박의 전위대를 만들려 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모든 희생을 불사하는 승리가 아니라, 자제와 타협을 통한 평화이다. 휴전 70년에도 불구하고 아직 평화는 멀기만 하다.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슬퍼요
2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