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AI로 대치되는 예술과 문학의 그늘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3.07.11. 09:27

이미 미술과 음악은 물론 문학에 까지

AI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AI 시 생성 기술로 만든 시집이 출간된다

AI 연구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초거대

언어모델 'KoGPT'를 기반으로 시를 쓰는

AI '시아(SIA)'를 지난해 8월 1일 개발,

곧바로 AI가 쓴 국내 최초의 시집인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한 것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이 긴 글을 쓰고,

그걸 극소수가 열광적으로 좋아했지만,

AI 등장으로 지금 시대는 대부분이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충 좋아하는

시대 라는 자소 섞인 푸념 소리가 들린다

기계에 대한 의존이 깊어갈수록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와 미묘한 공감력을

상실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우려이다


#기계충

10여 년 전에 만든 시 '편지의 꿈'이 새삼 돌아 보인다. 시에 한 벌레가 나온다. 줄글 형태지만, 그리 길지 않아서 한 부분을 옮겨본다.

'송전탑 아래서 에코나비고의 유충을 줍는다. 예쁘다.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 옆에 두니 몇 번인가 허물을 벗은 다음 날개까지 난다. 어두운 구석에 알들을 슬어놓는다. 자주 날려 보내고 쓸어낸다. 그러나 이미 바퀴벌레보다 더 교묘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그 기계충들이 점령했음을 안다.'('편지의 꿈', 부분)

'에코나비고'라는 벌레에 대해 "주로 안테나 주위에 서식하며, 송수신 전파를 먹고 사는 기계충"이라는 설명을 붙여놓았다. 기실 이 벌레는 오래 전에 본 '기계 생명체 제작'으로 알려진 화가 최우람의 전시에 나오는 벌레다. 최우람이 작품 삼아 만든 가상의 벌레인 것. 쇠를 먹는 괴물로 고려 때의 '불가사리'가 전설로 존재했지만, 송수신 전파를 먹고 사는 기계충은 정보화 시대인 오늘 날 그가 처음 만든 게 아닌가 한다. 이 벌레가 하는 일이 재미있다. 사람들이 보내는 이메일들을 먼저 점검하고, '소리의 색깔'까지 씹어 먹는, 기이하고도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 송수신 전파가 만연한 세상이라 그 전파를 먹고 사는 생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이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런 얼토당토 않는 상상의 산물에 저항하지만, 결국은 그것들에 사로잡혀 애완용으로 기를 정도로 중독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시를 만들던 10여 년 전에 비해 전파 기계들은 발전을 거듭, 지금은 스마트폰이 만능에 가까운 기능을 자랑한다. 자연히 기계충들이 들끓는 세상이 된 것이란 공상을 해볼 만하다. 기계충은 기계 시대의 상황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모습인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눈부셔 별 일이 다 생기는 판이니 새로운 쇠벌레(기계충)들도 나타날 만하다고 여겨지는 게다. 물론 이 벌레는 한 작가의 몽상이 만들어낸 창작품에 불과하지만, 그런 생각의 현실감이 의외로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의 시선은 그런 존재들에 대한 공포와 호기심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미 그 이상의 현상들이 나타날 것 같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문학 역시 그러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의 전망을 내놓기도 하는 것인가? 지난달 열린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인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도 그렇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인간과 인간 외의 존재'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다. AI를 넘어 쳇GPT의 출현은 물론 로봇 같은 대상들의 존재성과 인간 삶과의 관계 등을 다루는 '비인간으로서의 문학'이 이제 우리 문학의 중심에 들어선 것이다.


#AI의 시

인공지능(AI)과 이세돌의 바둑 경기가 화제가 됐던 게 엊그제 같다. 이제는 대개 AI의 그 '굉장한' 실력을 인정한다. 이후 인공지능은 디지털 문명의 첨단으로 전 세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넌지시 다른 쪽, 즉 예술이나 문학 쪽을 바라본다. 설마 미묘하기 짝이 없는 그 분야에 까지 AI의 역할이 세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이미 미술과 음악은 물론 문학에 까지 AI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AI 시 생성(poem Generrator) 기술로 만든 시집이 출간된다. AI 연구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초거대 언어모델 'KoGPT'를 기반으로 시를 쓰는 AI '시아(SIA)'를 지난해 8월 1일 개발, 곧바로 AI가 쓴 국내 최초의 시집인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한 것도 그러하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특히 기계치인 필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당황스럽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마침 대구에 인공지능과 시의 조우를 경험 삼아 털어놓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토요일(8일) 청라 갤러리에서 열린 김수상 시인의 'AI 시인과 인간 시인의 행복한 동거는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강연 자리였다. 호기심에 참석했다. 김 시인은 마이크로소프트 AI시인 '빙(Bing)'과 인간 시인 '김수상'이 대화하면서 쓴 공동 시들을 소개했다. 빙 AI는 오픈 AI의 GPT-4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채팅뿐만 아니라 시, 노래, 이야기, 보고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작성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다.

빙이 쓴 시들은 대체로 쉽고 명쾌하다. 어떤 패턴에 의해 언어가 구사되는 듯 보였다. 가령 김수상의 "종려나무를 봤는데 시를 쓰고 싶었어. 종려나무를 보고 위안을 받는 시를 써줄 수 있겠니?"라는 요청으로 AI가 쓴 시가 그러하다.

"종려나무야, 너는 어떻게 그리도 아름다운가/네 잎들은 빛나고 네 줄기는 힘이 넘치네//종려나무야, 너는 어떻게 그리도 견고한가/네 뿌리는 깊이 박혀 네 가지는 하늘을 향하네//종려나무야, 너는 어떻게 그리도 위로하는가/네 품은 따뜻하고 네 숨은 고요하고 부드럽네"('종려나무' 부분)

시가 음악성과 언어 구사력과 구성력이 있으나 아직은 단순하다. 미흡하다는 느낌을 준다. 첫 시도여서 그러할까?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질문과 시어들에 대한 세밀한 지적과 주문을 더하면, 시는 점점 더 미묘한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음을 가능성으로 꼽기도 한다. 때로는 작가의 작업 가운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창작을 입체화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AI를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울과 불안의 전망은 존재한다. 인간의 진정성이 기계에 의해 무화되는 듯한 허망감 때문일까?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이 긴 글을 쓰고, 그걸 극소수가 열광적으로 좋아했지만, AI 등장으로 지금 시대는 대부분이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충 좋아하는 시대"(김태용 영화감독)라는 자소 섞인 푸념 소리가 들린다. 기계에 대한 의존이 깊어갈수록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와 미묘한 공감력을 상실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우려이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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