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카르텔 타파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3.07.25. 08:19

최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은 '카르텔'을

자주 공격한다. 21세기 한국에 무슨

카르텔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건설 카르텔, 복지 카르텔, 교육 카르텔을

대통령이 연달아 공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가 드디어

'카르텔 타파'로 정해진 것인가

국정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만 과연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 목표는

잘 잡은 것인가.윤석열 정부가 진정

카르텔을 문제 삼으려면 건설, 복지 카르텔보다

법조 카르텔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법조계의

탈법, 제 식구 감싸기는 도를 넘은 지

오래다. 검찰 출신 김학의, 박영수는

교묘히 법망을 벗어나고, 서민들이

기절초풍할 '50억 클럽'은 세상을 활보한다

이러고도 검찰이 무슨 낯으로 좀도둑들을

단죄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넘었는데도 국정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이 가는 데마다 자유를 부르짖었는데 그게 국정 목표인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과 시비 걸기다. 마치 전 정부가 큰 적폐 세력인 것처럼 몰아세웠다. 부동산 값을 폭등시키고 사람 기용을 잘못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적폐 세력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불려 다니고 조사받느라 곤욕을 치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1년 넘게 조사해도 나오는 게 없다면 그건 아마 헛수고일 공산이 크다. 윗사람 눈치 보느라 계속 조사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과거에 그런 정부를 본 적이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집권한 부시 정부는 온통 전임 클린턴 정부를 깎아내리는 데만 열심이었다.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반발, 배척으로 가서 ABC(Anything but Clinton) 정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임 클린턴 정부 때는 소위 신경제 호황이 와서 성장과 고용 사정이 좋았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은 꽤 인기가 있었다. 그에 비해 부시 정부는 8년 간 내세울만한 업적이 거의 없었고, 종국에는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말았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세계적 불황을 가져왔으니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한국에도 그런 정부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뚜렷한 국정 철학은 보이지 않고 오직 전임 노무현 정부 헐뜯기에만 매진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잘 한 일 중의 하나인 균형발전을 혐오해서 균형발전이란 말을 아예 못 쓰게 했다. 균형발전위원회도 지역발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뭐 이럴 거까지 있을까.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위원회는 수도권에 있던 180여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대역사를 해냈지만 이명박 정부의 지역발전위원회는 무슨 일을 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 철학을 갖고 일을 해야지 남을 공격하고 허무는 걸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ABR(Anything but Roh) 정부라고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답게 '월화수목금금금'을 모토로 해서 매우 부지런히 일했지만 신기하게도 자랑할만한 업적이 거의 없다. 국정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틀린 방향을 부지런히 달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사법적 단죄까지 받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모습이 부시, 이명박 정부의 행태와 흡사하다. 얼마 전 장차관 평가를 전임 정부의 적폐 청산을 얼마나 잘 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는 보도를 보고 그 협량에 깜짝 놀랐다. 그 뒤 흐지부지 됐는지 아니면 속으로 내밀하게 진행중인지는 알 수 없다. 부시, 이명박 정부의 전례에서 보듯 전임 정부 지우기는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앞서 간 수레가 진창에 빠지면 그 바퀴자국(前轍)을 밟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들리는 소문에 윤석열 정부 요직에 이명박의 사람들이 대거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행태도 비슷한가.

최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은 '카르텔'을 자주 공격한다. 카르텔이란 말은 원래 대기업끼리 짜고 가격을 담합한다든가 해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에서 카르텔이 성행해 폐단이 극심해지자 독점금지법을 도입해 카르텔을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 무슨 카르텔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건설 카르텔, 복지 카르텔, 교육 카르텔을 대통령이 연달아 공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가 드디어 '카르텔 타파'로 정해진 것인가. 국정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만 과연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 목표는 잘 잡은 것인가.

그런데 건설, 교육, 복지 분야의 카르텔의 내용이 각양각색이다. 교육은 1타 강사의 높은 보수를 문제 삼는데 이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독점지대이지 카르텔이 아니다. 1타 강사가 갖는 희소한 능력(수험생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강의하는 능력)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니고 극소수에 한정되므로 발생하는 독점지대일 뿐이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이며 규제할 이유도 없고 규제할 방법도 없다. 정 규제하고 싶으면 이런 고액과외를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가도록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 그것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현 정부가 교육개혁 의지는 보이지 않고 1타강사의 높은 보수를 문제 삼는 건 방향이 틀렸다.

복지 카르텔 운운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한국의 복지는 아직 태부족하고 더 성장, 발전해야 한다. 복지의 누수 현상은 부분적으로 있을 수 있으나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걸핏하면 '복지가 줄줄 샌다' 이런 특집을 마련해 복지제도 자체를 공격하는데 대개는 번지수가 틀렸거나 심한 과장이다. 과거 복지 수혜자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걸 시비 걸기도 했다. 대개는 본격 비리가 아니고 사소한 꼬투리잡기에 불과하다.

높은 불로소득을 문제 삼으려면 1타강사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나 철학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부동산 경기 살리기라는 과도한 규제 풀기에 매진하고 있으니 윤석열 정부의 좋은 성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원희룡 장관은 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백지화할 게 아니라, 부동산 불로소득을 척결할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카르텔을 문제 삼으려면 건설, 복지 카르텔보다 법조 카르텔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법조계의 탈법, 제 식구 감싸기는 도를 넘은 지 오래다. 검찰 출신 김학의, 박영수는 교묘히 법망을 벗어나고, 서민들이 기절초풍할 '50억 클럽'은 세상을 활보한다. 이러고도 검찰이 무슨 낯으로 좀도둑들을 단죄할 것인가. 예전에 서울대 법대에 걸린 '정의의 종'을 보니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이런 말이 쓰여 있어 존경심이 들었다. 지금 법조계 행태는 '세상이 무너져도 법조계는 살려라' 이런 거대 카르텔을 타파하지 않고 소소한 카르텔을 논해봤자 국민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경북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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