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외교광장]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역사성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3.08.29. 10:07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3국의 정상들이 다자회의에 참여해서 별도로 회담을 가진 것은 1994년 11월 APEC에서의 만남 이후 12차례 정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3자가 단독으로 회담을 한 것은 최초다. 게다가 일회적인 회담이 아니라 최소 연 1회 정례화하기로 한 회의체 출범이라고 공표했다. 예상대로 공동성명과 지침을 발표했다. 합의 문건들과 공동기자회견 등에서 정상들은 '역사적'이라는 형용사를 유난히 많이 부쳤는데, 이후 당사국들의 평가에도 빠지지 않은 키워드였다. 용산 대통령실은 캠프 데이비드 전과 후는 다른 세상이라고까지 자평했다.

우리가 '역사적(historical)'이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특별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물론 역사적인 우승이나 역사적인 예술품 등 긍정적으로 사용할 때가 많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부정적인 일에도 가능한 표현이다. 이번 '역사적 합의'가 만들어낼 미래가 과연 긍정적일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오히려 국제질서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부정적 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 세계화와 글로벌거버넌스로 대표되는 국제협력의 질서가 종언을 고하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패권 경쟁과 이념의 진영싸움을 본격적으로 조장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아든 손익계산서는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다. 최대 승자는 미국이고, 일본도 상당한 이익을 챙겼으나, 한국은 얻은 것은 없고, 큰 손해를 입은 일방적 퍼주기 외교를 했다는 평가다. 먼저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의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를 협력적인 관계로 제도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최고의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바이든은 취임 초부터 3국을 모으겠다는 자신의 의지는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나 내년만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2차대전 이후 그토록 바라면서도 이룰 수 없었던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한미일의 3각 체제를 제도화겠다는 미국

의 외교적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안보, 경제, 기술의 모든 분야에서 3국이 단결해 중국을 견제할 토대를 구축했다.

일본 역시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였던 아베 정부 시절에는 한국을 제외한 미·일 동맹 또는 쿼드로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일본은 대륙 세력을 방어하는 최전선에 노출되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이 최전선에 놓여 일본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일본은 선택이 가능해졌다. 개입하고 싶으면, 3국 안보협력을 빌미로 개입할 수 있고, 피하고 싶으면 평화헌법을 내세워 한국에 떠맡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사일 전력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정보 실시간 공유를 넘어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그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고 얻었다. 그러나 한국은 밑지는 장사를 톡톡히 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대성공이라고 말하고, 확실한 동맹 네트워크를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반도와 주변은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 문제는 더 풀기 어렵게 되었으며, 중국과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로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그것도 한반도가 중심 무대가 되었다.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의 본질은 역사 퇴행으로 냉전 시대로 돌아가는 수구적 단합이다. 3국의 군사적 연합이 역내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의 부상과 도전에 따른 미국의 전략적 강박증(strategic obsession)이 낳은 괴물이다. 캠프데이비드는 평화를 끌어내는 역사적인 회담 장소로서의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1978년 9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중동의 평화를 위한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던 곳이다. 캠프 데이비드가 평화회담의 성지라면,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 아니라 북한 지도자를 초청해 회담해야 했다. 싱가포르나 하노이보다 허심탄회하게 만나기 좋은 장

소다. 1959년 당시로서는 만나기 껄끄러운 냉전 중 적대 국가의 수장인 흐루시초프를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역사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미국이 이번 회의를 전후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바로 '비가역성(irreversible)'의 확보였다.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은 이번 합의를 통해 아예 한미일 협력을 한미일 어느 나라 지도자도 쉽게 이탈하지 못하도록 '잠금(lock-in)'상태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했다. 비가역이라는 단어는 북한 비핵화를 말하면서 했던 CVID에서 세 번째 글자와 같다. 북한의 비핵화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2018년~2019년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실패로 돌아간 후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되었다는 평가와 CVID는 불가능한 신화라는 평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미일이 동맹으로 제도화되는 것이 과연 비가역일까? 물론 일본이나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이번 합의를 뒤집고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래서 각국 의회 비준을 회피했지만, 그것이 바로 약점이다. 정상들이 3국 동맹이 아니고, 3국 협의체이므로 역내 위협에 대한 공동행동과 관련해 국내법·국제법적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아킬레스건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 특히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이 3자 체제는 무산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다. 현재의 적도 아군도 비가역성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맹목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종교에 가까운 이념적 확신일까? 아니면 사적 권력의 지속을 위한 정략일까? 어느 쪽이든 국익은 멀어지고,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되었다. 김준형(한동대,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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