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비가 여는 9월. 가을 우기라는 말이 나오고, 잇단 태풍 소식들이 눅눅한 대기권을 형성한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첫 머리를 적시는 빗소리. 그 소리는 매미 소리를 쇠잔하게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을 적셔서 그 무게로 대추나무 가지들을 축 쳐지게 한다.
망초들이 지고 난 비탈에 달맞이꽃이 노랗게 저녁을 밝힌다. 메꽃은 보랏빛 나팔로 제 세계를 더욱 불어대려는 듯 덩굴이 나무 울타리를 타고 오른다. 새삼 그 '꽃이 (나팔을) 부는' 소리를 나는 '본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더불어 차분해진다. 말하자면, 그런 각성으로 가을이 열린다. 오감의 충만으로 웅성대던 여름의 기억이 한결 흐려지면서 시청각이 고요해지는 것이다.
한여름 산간의 절간 구석을 밝히던 상사화가 지고, 곧 꽃무릇이 붉게 그늘을 물들일 때가 되었다. 상사화와 무릇은 잎이 지고난 뒤 꽃대가 올라와 핀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하기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졌는가보다. 대도시의 정원들에는 최근 들어 이 꽃을 군락으로 꽤 조성해놓아서 가을을 더욱 애잔하게 만들 것이다. 선운사 등 이름 난 절들의 꽃무릇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을에 이르기까지 붉게 피는 백일홍과 달리 이들은 개화 기간이 짧아 더욱 아쉽게 바라다 보이리라. 마치 짧게 지나가버릴 가을의 감성처럼, 인연처럼.
9월은 지난여름의 기억을 바래게 하면서 차츰 단풍의 색깔로 가을 세계를 펼칠 기색이다. 대기는 뜸들이듯 발효한 냄새를 피우지만, 찬 공기에 가셔져서 차츰 맑고 청량해진다. 비로소 침잠의 순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그동안 줄곧 우리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코로나가 가을 들자 한결 잦아드는 듯한 것도 새삼스럽다. 이제는 독감 수준으로 관리된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지난 수년 간 인류의 삶을 옥죄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게 하며, 서로 가까이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전 세계적 역병이 그렇게 끝나는가 싶다. 새삼 시간의 힘을 느낀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과거와 현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로, 그야말로 '염주처럼' 꿰어져 있는 것이다. 계절감과 더불어 우리 삶이 경험했던 고통과 환희 역시 그러할 것이다. 가을꽃 앞에서 옷깃 여미며 가져보는 생각이다.
#구절초
가을꽃들은 바람 속에서 유독 애절하게 느껴진다. 여름의 기억과 고통 때문일까?
송창식이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을 작곡해 불렀던 노래 중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니. 초록색이 바래는 걸 '지쳤기 때문'으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다. 그 표현으로 초록이라는 빛깔에 육체성이 부여되어, 여름의 고통을 더욱 절실하게 떠올리게 된다.
가을꽃 중에서, 때로, 특히 구절초를 아프게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가령 이런 시처럼.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 어머니가 서 있던 자리,/ 삼촌 고모가 사라진 자리,/ 누이와 오빠가 서 있던 자리에도/ 어김없이 10월 구절초는 피었습니다.'
대구 10월유족회를 이끄는 채영희 여사가 쓴 글의 한 구절이다. 아버지가 끌려가 처형당한 그 자리에 피는 꽃.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연좌제에 얽매여 살아온 고통스런 기억의 빛깔처럼 희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런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이 땅엔 많다.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가 처형되어 파묻힌 자리에 피어나는 구절초는 유족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꽃이 되어버렸다.
구절초는 전국의 산야에 흔하게 핀다. 곧 온 산야를 덮을 것이다. 그래서 구절초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꼽힌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전북 정읍의 구절초 축제를 비롯, 공주와 밀양 등 각 지역에서 구절초 축제가 열린다.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축제다.
그런 한 쪽에선 구절초를 보는 아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 가까운 경산을 비롯, 창원, 공주, 울진, 군산, 거제, 충남, 영광, 대전 등 유독 아픔을 많이 겪은 곳마다 가리지 않고 그 꽃들이 피어서 유족들의 눈시울을 건드린다. 이들 지역에서는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 등을 추진하기 위에 안간힘을 하고 있다. 추모공원과 위령탑 건립은 희생자들을 온전히 대접하고 기리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원혼을 푸는 일로, 살아 있는 후예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대구 역시 희생된 죽음들을 위무하는 위령탑이 처형이 이루어진 골짜기 입구에 세워졌다. 매해 가을이면 유족회가 그 탑 아래서 위령제를 올린다. 그러나 늘 그렇듯 과거는 현재와 제대로 해후하지 못하고, 화해가 안 되어 미래로 그 아픔이 증폭되어 간다. 대구시의 지원으로 천신만고 끝에 '시월항쟁 등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지만, 아직도 제막식도 못한 채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10월 항쟁 관련자들을 향한 학살을 '국가 폭력'으로 인정했으며, 대구시가 유족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관련 조례까지 만든 상태에서 위령탑이 건립됐지만, 시월항쟁에 대한 인식은 무관심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다. 제막식을 갖기를 유족회가 여러 차례 간곡하게 요청했지만, 당국은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세워진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막식을 않고 있다. 가창 골 골골마다 그래서 온전히 위무 받지 못한 혼들이 떠도는 듯 냉기가 차다. 가창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야가 그런 기운을 떨치지 못한다.
그 냉기를 뚫고 구절초 흰 꽃들이 곧 피어날 것이다.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살다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무르어 터진 앞섶'(박기섭의 시조 '구절초 시편' 부분)이라는 시는 '찻물'을 올리는 의식(儀式)과 구절초가 피는 '가을 소식'에의 기대, 그리고 '그대 생각'으로 짓물러 터진 마음의 일단을 드러낸다. 구절초를 아픔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올 가을이 또 그렇게 깊어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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