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외교광장]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3.09.26. 09:12



김정은 위원장의 5박 6일 러시아 방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양국의 무기 거래에만 초점이 놓여있다. 뉴욕타임스가 가장 빨리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알렸었는데,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 김을 빼는 동시에 향후 협력 가능성을 방해하려 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도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었다. 미국 언론을 그대로 옮겨 적는데 익숙한 한국 언론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자란 포탄을 받고,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ICBM을 포함한 전략무기 기술을 받는 것을 정상회담의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북·러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은 물론이고, 어떤 합의 사항도 나오지 않았다. 합의는 있었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애초에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춘 언론은 아예 전자인 비밀 협약으로 단정하고 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갔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따졌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유엔 참석차 출국을 앞둔 17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러 군사협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와 각종 국제 제재에 반하는 불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협력이라고 비판했다. 그 기조를 유엔 기조연설에서도 반복했으며, 대한민국과 동맹국, 우방국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입증된 사실이 아닌 추측과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을 전제하고 상대국 대사를 초치한 것도 그렇지만,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세계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경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연히 러시아 측은 "도발적이고 대결적인 추측성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미국과 한국 언론의 과장 및 왜곡 보도에도 강한 유감을 표했고, 한반도 위기는 한미 양국의 대북 무력 압박에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정부는 루덴코 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한국 측에 설명하겠다면서 한국과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안정을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계속 접촉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편향된 시각은 러시아 차관의 방문을 북·러 무기 거래의 진실 호도를 위한 것이라고 이미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북·러 정상 간에 무슨 약속과 거래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북·러가 무기 거래했다는 증거도 없다. 향후 가능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북·러가 협력을 강화할 빌미를 줄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러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을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전제 역시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러시아는 작년말부터 무기 생산 속도가 빨라져서 포탄은 전쟁 전의 2배, 탄약도 서방보다 7배, 탱크도 2배나 많다는 정보도 있다. 특히 러시아는 현재 공세보다 동우크라이나에서 3중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기 공급을 갑자기 늘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가 세계의 주목과 의심 속에서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섣불리 무기 거래나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은 하기 힘들다. 더욱이 전쟁 중에 ICBM 기술이나 핵잠수함을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미국과의 전략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무리한 행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핵보유국으로서 핵 확산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왔으며, 그것이 유엔 대북 제재에 동의했던 이유다. 한·미·일의 동맹화로 러시아도 북한과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으나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작년 말부터 푸틴을 비롯해 러시아의 고위층에서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폴란드 우회) 지원 등의 행태를 경고해왔다. 애초에 한국 정부의 행위가 문제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당장 보복으로 무기 거래를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번 만남에서는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대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언급 했던 것을 보면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에너지와 식량 지원으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위험한 거래가 없었다면 과연 다행일까? 그렇지 않다. 준비하지 않으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고립에서 벗어나 강대국 외교에 나선 북한과 전쟁 중에서도 정상적인 외교활동을 하고, 향후 튼튼한 협력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높이려는 러시아의 만남이었다.

한·미·일 진영화에 대한 직접적 맞대응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의 시작이다. 향후 상황에 따라 양국은 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로 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외에 어떤 외국 정상에게도 공개하지 않던 러시아 첨단 우주기술이 집합된 곳이다. 극동 함대, 전투기 기지, 그리고 농업 시설도 봤다.

문제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우리가 상승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영편향 외교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남북관계는 단절하며, 중러와는 관계는 악화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진영편향으로 돌진할수록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구도를 만들고, 향후 미·중과의 관계에서도 공간 확보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무기 균형을 깰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유엔 제재를 명백하게 위반하는 행위는 주저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국과 관계 파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아직 기회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러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최소시간에 얼마나 많은 정상회담을 하느냐로 기네스북에 등재하겠다는 국격과 국위를 떨어뜨리는 이상한 외교를 할 때가 아니다. 윤정부의 진영편중 외교가 북·러 및 북·중 결속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신중한 접근법 모색이 절실하지만, 그간 윤정부의 행보를 미뤄보면 변화 가능성이 난망하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너무도 염려스럽다. 김준형(한동대,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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