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시대정신] 플랫폼 자본주의의 함정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입력 2024.06.04. 06:59


손가락을 지배해야 시장을 장악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상품을 구매하려 시장에 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전통 시장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좀 더 유리한 가격으로 사기 위해 흥정하는 재미는 이미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어떤 집이 값은 비싸도 물건은 확실하고, 어떤 집은 가성비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입소문도 이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시장은 이제 독특한 냄새와 분위기를 풍기던 구체적 장터에서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갔다. 이곳에는 소비자의 주의를 끌려고 시끄럽게 마구 떠드는 호객의 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품을 고르고 비교하고 선택하기 위해 마우스의 단추를 누르는 소리만 짧고 은밀하게 들린다. 오늘날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물건을 산다.

세계화로 인해 생산과 소비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구글, 틱톡,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금 뉴욕과 파리에서 무엇이 유행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험한다. 꼭 현재 유행하는 것일 필요도 없다. 자신을 드러내는 수많은 메시지와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취향과 패션을 어디에서든 찾아낸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창출하려는 우리의 욕망과 경향은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 역할을 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된다. 소비자의 욕구가 생산자에게 전달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상품은 더욱 더 빠르게 소비자를 찾아간다.

최근 우리는 이렇게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경제의 문제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부가 어린이 제품, 화장품, 위생용품 등 유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경우 안전 인증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한다는 정책을 내놨다가 소비자의 반발이 심해지자 철회한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가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구를 건드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어떤 사람은 소비자 선택권만큼 안전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해외에서 직구한 불량 완구를 가지고 놀다가 어떤 어린이가 심각하게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라. 왜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해외 직구의 문제점은 결코 소비자 선택권과 안전의 문제로만 압축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직접구매의 줄임말인 '해외 직구'는 전 세계적인 인터넷 네트워크와 운송 수단의 발달로 2010년대 이후에 활성화된 개인 구매 방식이다. 국내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고가 제품도 해외 직구로 구매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을 기울인다. 수입상과 중개업자 수수료가 빠진 직접 거래인 탓에 거의 반값으로 살 수 있는 상품들이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것이 해외 직구의 가장 커다란 매력인 셈이다. 싼값으로 소비자의 손가락을 유혹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나면 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물음을 던질 때만 우리는 해외 직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아이디어, 지식, 노동, 유휴 자산에 대한 사용권이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연결된 온라인 커뮤니티 간에 이동하는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출현을 의미한다.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동안 아마존, 이베이와 같은 전자 상거래 플랫폼이 지배적이었는데, 지금 중국의 저가 플랫폼 테무(Temu)가 아마존 킬러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테무의 상승기류는 시장을 뒤엎을 폭풍을 만들 기세다. 미국에서는 매달 약 1억 5,200만 명이 테무를 사용하고, 독일에서조차 이 플랫폼의 월 방문자 수가 1,500만 명에 달한다. 전 세계 약 50개국으로 제품을 발송하는 테무는 꾸준히 글로벌 앱 다운로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테무 사용자는 앱에서 하루 30~40분을 보내며 이를 소셜 네트워크처럼 사용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테무는 동시에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어떻게 테무는 매우 짧은 시간에 시장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플랫폼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바로 그 성공적인 전략에서 나온다. 그것은 바로 '조작과 착취'이다. 소비자의 욕구를 조작하는 마케팅 전략은 매우 공격적이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사용자의 쇼핑 습관, 선호도, 심지어 개인정보까지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여 타겟 광고와 개인화된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사용자는 편의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개인정보를 거래한다. 플랫폼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수록 서비스를 더 잘 맞춤화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개인의 정보 보호는 희생된다. 그뿐만 아니라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편향을 지속시켜 콘텐츠 추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플랫폼 알고리즘의 조작도 쉽게 인지할 수 없지만, 플랫폼 자본주의의 착취는 더욱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중개인을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여 값싼 상품을 제공한다. 이는 생산자에게 직접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전자 상거래가 의존하는 배송, 물류 등의 작업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한다. 비현실적인 생산성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력은 직원이 사람보다 기계처럼 대우받는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으로 이어진다. 값싼 제품을 얻기 위해 우리가 치루는 대가는 '조작과 착취'이다. 플랫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테무, 틱톡, 아마존과 같은 전자 상거래 기업은 지배적인 플레이어가 되어 경쟁업체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원하는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우 커다란 유혹이다. 테무와 함께 값싼 중국 제품이 홍수처럼 밀려든다. 자체 쇼핑 플랫폼을 운영하는 틱톡도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한다고 한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다양한 마케팅 기술을 사용하는 중국의 플랫폼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 소매 환경만 크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단지 싸고 빠른 서비스에 만족하는 동안 소수의 지배적인 플랫폼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새로운 제국주의가 생겨난다. 지금도 이 플랫폼 제국주의는 우리의 손가락을 노린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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