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시대정신] '스마트봇' 수행비서의 시대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입력 2024.07.02. 09:10

비서는 한때 매우 인기 있는 직종이었다. 베이비 붐 세대가 산업화 물결에서 가질 수 있었던 다양한 직업이 여성에게도 열려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비서는 한때 고학력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유일한 통로였다. 비서에도 물론 나름의 기술과 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일정을 잡고, 커피를 타고, 잔심부름하는 일이 대학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였다. 그 후 세상이 바뀌었다. 여성들이 거의 모든 전문 영역에 진출하게 되면서 비서 직종은 퇴색하였지만, 비서를 둘 수 있다는 게 성공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어서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기술과 상품이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진 예는 수없이 많다. 애플과 삼성의 안드로이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은 사람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블랙베리가 기업용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사무실 밖에서 동료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외부 키보드와 메시징 서비스가 결합한 블랙베리를 매우 좋아했다. 매우 충실하고 안전한 기능을 가진 블랙베리는 실제로 모바일 시대를 열었다. 2010년 43%의 시장 점유율로 정점을 찍은 이후 블랙베리 휴대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추락하였다. 2013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5.9%라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빨리 바뀐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 등장은 혁명적이었다.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도입하여 디스플레이 영역이 더 넓어졌고, 사용자와 휴대폰 사이의 더 직관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타사 개발자가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할 수 있는 중앙 집중식 플랫폼을 만들어 거대하고 다양한 앱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물건을 주문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등 광범위한 작업을 처리한다. 인터넷이 손안으로 들어와 모바일 인터넷이 되고, 휴대폰은 글자 그대로 '스마트폰'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또 한차례 바뀌고, 지금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챗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탄생만큼이나 근본적이고 혁명적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천명한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건강 관리를 받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산업의 방향도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기업은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별화될 것이다. 거세게 밀려오는 인공지능의 물결을 타지 못하면 퇴보하거나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함께 퍼지고 있다.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애플이 지난달 10일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아이폰과 애플워치, 맥 등 애플의 모든 기기에 AI 시스템인 '애플 인텔리전스'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픈AI와 파트너십을 통해 AI 음성 비서 '시리'(Siri)에 챗GPT를 접목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시리는 지난 13년 동안 애플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음성 제어 프로그램이다. 챗GPT 이전에는 기계와의 상호작용이 사전 정의된 명령 및 응답으로 제한되었다. 마찬가지로 시리의 답변은 다소 수다스러웠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고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챗GPT 이후의 컴퓨터 기계는 고급 자연어 처리를 활용하여 인간과 유사하게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한다. 우리는 기계와 더 자연스럽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로봇이 우리의 손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스마트폰이 '스마트봇'이 되려는 순간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과 결합은 현재 현대의 가장 중요한 컴퓨터, 즉 스마트폰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내 스마트폰이 나와 대화를 하면 스마트폰은 의인화된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덕택에 스마트폰과 결합한 챗봇, 즉 스마트봇은 본질적으로 우리 인간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제 개인용 수행비서를 갖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스마트봇 수행비서는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와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다. 스마트봇은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쓰고, 이메일을 보내고, 일정을 알려주거나 조정해준다. 예컨대 스마트봇에게 오후에 거래처와의 약속을 잡아달라고 말하면, 스마트봇은 그 시간에 이미 아내와의 결혼기념일 식사가 잡혀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거래처와의 약속 일정을 다른 시간에 잡을 것인지 물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스마트봇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스마트봇은 내가 누구와 가장 많이 통화를 하는지, 가정생활은 어떤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아내에게는 상투적인 애정 표현을 하면서도 어떤 여인과 나누는 대화에는 오히려 진정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다. 스마트봇은 글자 그대로 상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수행비서가 된다.

일론 머스크는 애플의 새로운 AI 비서를 "소름 끼치는 스파이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한다. 개인 AI 비서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우리의 디지털 생활에 깊숙이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상사와의 협의, 회사 비밀, 병원 약속, 가족 휴가 사진 등 개인 AI 비서가 일상생활이나 직장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이러한 유형의 데이터에 액세스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은 물론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인공지능의 논리와 배치된다. 더 좋은 인공지능은 언제나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좋은 비서는 상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비서이다. 가장 좋은 비서는 상사에 대한 정보가 상사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는 충직한 비서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경쟁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가장 많은 훈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이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 당신의 인공지능 비서는 더 훌륭하게 일할 것이라고 애플은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우리는 비서와 정보를 공유하듯 스마트봇에게 스스로 정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 비서를 신뢰할 수 있는가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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