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하게
예상대로, 올 더위는 맹렬하다. 모두 더위를 피하느라 애쓴다. 맹더위도 유난스럽지만, 이상 기후의 심각한 후유증을 지구 곳곳이 앓는다. 겪어보지 못했던 더위와 가뭄으로 고통스럽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엄청난 물난리로 많은 이들이 사상되거나 이재민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기후가 점점 심상치 않다. 장마의 피해에 이어 닥친 극심한 더위로 한반도 전체가 열탕 같다. 바다로 계곡으로 인파가 몰린다.
그런 가운데 올여름은 그나마 올림픽에 시선이 고정되어 더위를 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올림픽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하다. 승패에 관계 없이 터트리는 저마다의 포효가 신선하게 지구를 울린다. 참가 선수들이 아름답고 멋지다. 모두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서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경기 상황을 지켜본다. 그리하여 선수들이 벌이는 경기를 통해 새롭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미더움을 인식하고,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에 마냥 으쓱해지고, 그로 인해 더위마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드러내는 마음과 몸의 간절함에 감동을 많이 받는다. 메달을 향한 욕망일 수 있겠지만, 그 간절함은 다른 일들과 달리 공정한 규칙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다. 변칙이나 반칙, 또는 국가의 힘이나 어떤 지역의 편견 같은 것이 배제된, 규정된 룰 안에서 누구에게든 평등한 경기 마당이 펼쳐지기에 선수 모두 임하는 자세가 건강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간절'은 '매우 지성스럽고 절실하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이루어지는 데는 간절함이 기본임은 말할 것 없다. 간절함은 마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삶의 태도와 행동이 그런 마음과 함께 쌓이는 걸 의미한다. 예술도 간절함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간절(懇切)'이란 말을 특별히 서각으로 주문해서 나의 방에 걸어놓았다. 언제나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잡는 마음을 그 글씨를 보며 되새기는 것이다. 그래, 뭐든 공들인 만큼 드러난다. 공을 들이는 게 바로 간절의 힘이고 그 실행인 것.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이런 공들이기는 특별나다. 그런 인식과 행동의 총체적인 집약을 올림픽을 통해 확인한다.
#당당하게
올림픽 선수들은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메달에의 욕망과 꿈으로 대회에 임한다. 메달을 따게 되면 그에 따르는 혜택이 주어지고 명예도 올라가기에 그 간절함이 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기의 규칙 안에서만 모든 기예가 펼쳐진다는 데 있다. 시종일관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진다. 그게 올림픽의 정신이기도 하다.
현대 올림픽은 초기에는 고대올림픽 정신을 그대로 전승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치와 상업적인 이해에 따라 그 정신이 변해간다는 비판도 강해서 100주년이 되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새삼 '올림픽 정신으로의 복귀'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그러나 갈수록 흥행을 앞세우는 등 상업성에 물들고 있다. 입상하면 부와 명예가 따르기에 약물 복용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듣는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을 대거 참가시켜 아마추어리즘이 변질되고 있기도 하다.
정치 오염도 심각하다. 1980년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기 위하여 미국, 서독, 일본, 한국 등 66개국이 불참하여 반쪽 대회가 되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리스 올림픽은 소련의 주도하에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 쿠바 등 14개 국가가 불참, 또다시 반쪽짜리 경기가 되었다. 국제 관계의 복잡한 문제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은 선수들을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올림픽 경기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고루 평등하게 참여하여 한껏 제 기예를 펼쳐야 한다. 그래서 비록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대회 진행이 얼룩이 졌다고 해도, 선수들은 나름으로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지키려 애쓴다.
#꼴찌에게 박수를
한국 양궁의 김우진 선수가 이번 대회 양궁 남자 개인전 64강에서 맞붙은 상대 선수에 대한 감동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그가 맞붙은 이는 차드의 마다예 선수였는데, 김우진 선수는 6-0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 가운데 한순간 관중들의 숨을 멈추게 한 일이 일어났다. 마다예가 2세트 마지막 화살에서 1점을 쏜 것이다. 국가대표라는 출중한 선수가 쏠 수 없는 점수였다.
그제야 살펴보니 그가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체스트 가드'(활시위가 가슴을 때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게 드러났다. 차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차드 선수는 그를 비롯해 유도 여자와 마라톤 등 3명뿐이다.
그는 2008년에 양궁을 시작, 독학으로 올림픽까지 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간절함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관중들은 오히려 야유보다는 박수로 격려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당신은 훌륭한 선수", "우리는 당신을 응원한다", "LA 올림픽에서 만나자", "도전정신이 빛난다.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 아닐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래, 이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아마추어리즘의 한 진경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다면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면서 "1등보다 중요한 건 품격과 여유"라고 강조한 정의선 양궁협회장의 말이 되씹힌다. 한국 양궁이 세계를 제패했기에 이런 말도 더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올림픽은 그러한 정신이어야 하는 것임을 각인시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유독 큰 박수를 치기보다는 참가자 모두 박수를 받아야 함을 마다예의 예가 보여준 것이다. 올림픽의 창시자로 꼽히는 쿠베르탕은 "중요한 것은 참가하는 것"이라 했다. 올림픽이 아름다운 건 '당당하게 함께 하는' 그 숭고한 정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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