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지역에서 내부비판은 가능한가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8.13. 07:41
강준만(전북대 명예교수)

"나는 백인이긴 하나…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난 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된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J. D. 밴스가 8년 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힐빌리의 노래]에서 밝힌 자기 소개다. 왜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이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그것도 궁금했지만, 나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와 문화의 관계'였다. 밴스는 "내가 우리 지역 사회의 비참한 상황을 얘기할 때면 주변에서 항상 내게 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인 노동 계층의 전망이 악화하고 있는 건 맞지만, 당신은 지금 달걀보다 닭이 먼저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 사람들이 이혼을 더 많이 하면서도 결혼은 더 드물게 하고 덜 행복하게 사는 건 경제 기회가 감소했기 때문이에요. 일자리를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 다른 문제들은 자연히 개선될 거예요."

그렇다. 일자리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해결책으로 여기게 되면 사실상 지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지역주민들이 무슨 수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대기업이 지역에 공장을 세우는 행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자리를 더 쉽게 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문제들이 자연히 개선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경제가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면서 보내는 세월이 너무 길어지면 문화가 부패하는 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걸 간파한 밴스는 늘 거창한 경제 탓만 할 게 아니라 힐빌리 자신들의 문제는 없는지 따져보자고 제안한다.

"요즘엔 고된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이들은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얼마 버텨내질 못한다. 부양할 아내가 있거나 아기가 곧 태어날 예정이라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조차 훌륭한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를 경솔하게 내던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을 그르치고 나면 그때 가서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주도할 만한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우리는 여기서 이념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수는 주로 '개인 탓'을 하지만 진보는 '개인 탓'을 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그건 '피해자 탓하기'라고 주장한다. 이젠 보수도 비슷한 자세를 취한다. 밴스에 따르면,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다"라고 외치는 우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개인 탓'보다는 '구조 탓'을 하는 게 옳을 때가 많긴 하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나의 잘못조차 구조(정부) 탓이라는 믿음은 최소한의 자기성찰마저 원천봉쇄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2009년, ABC 뉴스에서는 당 함유량이 너무 높은 탄산음료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치아가 심각하게 썩는 문제를 두고 지역 주민들이 이름 붙인 '마운틴 듀가 좀먹은 구강' 현상을 중심으로 애팔래치아 지역 주민의 삶에 관한 보도를 내보냈다. 주요 보도 내용은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는 애팔래치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동네 사람이 그 보도를 접했으나, 이들은 일관되게 '제기랄, 당신들이 알 바 아니잖아'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는 온라인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일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모욕적이다. ABC를 포함한 당신들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지역주민들이 ABC 뉴스에 대해 화를 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역의 빈곤을 완전히 외면했던 당신들이 언제부터 우리의 삶을 그렇게 걱정했느냐?"는 항변 아니었을까? 진보주의자들은 밴스가 힐빌리를 경멸한다고 비난했지만, 가난한 백인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그들에게 그렇게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소개한 이야기는 지방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에서도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지방소멸의 원인은 일자리다. 일자리가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지방 청년들은 서울로 몰려 가지만, 좋은 일자리는 극히 제한돼 있다. 언젠간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하나로 비정규직 또는 비정규직보다 나을 게 없는 박봉의 일자리를 감내한다. 고향에서라면 절약할 수 있었을 막대한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고달픈 서울살이를 견뎌내야만 한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전조차 없는데, 무슨 얼어죽을 결혼이며 출산이란 말인가. 서울의 청년은 불안해서 결혼을 못하지만, 지방의 청년은 짝을 찾을 수 없어 결혼을 못한다. 일자리를 서울에 집중시킨 역대 정권들, 특히 지방 출신으로 출세해 권력을 잡은 후 지방을 배신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지방민들에게도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구조 탓' 이외에 어떤 자구(自救) 노력을 했던가? 지역문화는 건강했던가?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내부비판은 가능했던가? 정치·정략적인 파벌싸움에서 비롯된 비판이 아니라 지역에서 금기로 통하는 것에 대한 비판말이다. 뼈 아프게 성찰해야 할 내부 문제마저 중앙정부를 비판하는 걸로 은폐하거나 호도한 적은 없었던가?

역설 같지만, 지방의 비극은 지방민들에게 서울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개방성에 있다. 각자 알아서 서울시민이 되면 해결될 문제인데, 굳이 지방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다. 지방(고향)은 서울에서 성공한 뒤 국회의원·자치단체장을 하고 싶을 때 찾거나 노후를 낭만적으로 보낼 장소로 족했다. 평생 고향을 지킨 사람들도 그렇게 금의환향한 사람들을 우대해오지 않았던가. 냉소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조 탓'을 하고 살더라도 혁신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내부비판 만큼은 보장하는 풍토를 조성해보자는 뜻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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