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시대정신] 머스크가 트럼프를 만났을 때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입력 2024.08.27. 09:03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연출은 종종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위험을 예견하게 해준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기술 시대에 5년 또는 10년 뒤의 사회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데, 미래에 닥칠 위험을 예견하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현재의 과학과 기술을 동원해 미래의 위기를 미리 연출함으로써 위기의식을 일깨우기도 한다. 최근 우리는 미래의 위험을 예고하는 하나의 연출을 목도하였다. 지난 8월 12일 일론 머스크가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엑스(X) 네트워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기이한' 만남은 그 연출 의도와는 달리 미래의 위험을 폭로한다.

사람들은 이 만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온라인결재 서비스 페이팔로 부자가 되고 테슬라와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으로 인류의 구원자처럼 행세하고 또 그렇게 여겨졌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천재가 어떻게 자유주의 이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독재와 신권위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가? 미국 잡지 The Atlantic은 2013년에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발명가"라고 불렀고, 2021년에는 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반자유주의적 독재자를 지지할 수 있는가? 머스크와 트럼프의 만남을 '천재와 독재자'의 만남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이 연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머스크와 트럼프 인터뷰 소식을 듣고 1989년의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가 떠올랐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두 사람의 뻔한 사랑 이야기가 훌륭한 연출과 연기 덕택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영화다. 영화 중반에 해리가 샐리와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자신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자를 만족시켰다고 주장하자, 샐리는 여자는 오르가즘을 가짜로 연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즉석에서 엄청난 오르가즘을 연기해 보여 식당 안의 다른 손님들을 모두 곤혹스럽게 만든다. 자유주의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는 천재와 신권위주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과연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자유주의 이념에 기반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약속은 가짜 연기였는가? 두 사람의 만남은 단지 이기심과 권력욕만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러한 의심을 강화한다.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의 변화를 개인적인 이유로 설명하려고도 한다. 2021년 말 일론 머스크는 자기 트랜스젠더 딸이 이름을 비비안 제나 윌슨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성을 포기하는 심각한 개인적 위기를 겪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비판하는 일론 머스크에 대해 그는 "평등·진보를 위한 보루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하였다. 이런 개인적 위기를 겪으면서 일론 머스크는 더욱 극단화되었다. 성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깨어있는 사람의 태도라는 소위 '깨어있는 정신 바이러스'(Woke Mind Virus)가 자기 아들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머스크는 이 바이러스를 파괴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민주당과 자유주의 사상에 등을 돌린다.

아버지로서 자신과 다른 자식을 받아들이는 치유 방법을 배우는 대신 머스크는 자신의 상황에 전쟁을 선포한 것처럼 보인다. 전쟁 무기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자신이 사들여 X로 개명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위터이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다양한 기업의 다중 CEO로서 머스크처럼 소셜 미디어에 놀라울 정도로 집중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트위터를 구매할 때까지 그는 하루에 약 15번 정도 트윗을 했고, 이후 그 빈도는 하루에 거의 24번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짧은 시간에 민주당의 비정치적 지지자에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반백신 음모론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와 그의 우익 극단주의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 그는 "내전은 불가피하다"와 같은 발언으로 영국의 우익 극단주의 폭동을 촉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자유주의 이념을 반대하고, 전통적인 미디어는 회피하면서 소셜 미디어 사용은 늘린다는 점에서 머스크는 극우의 노선으로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청난 돈과 기술 권력 그리고 X와 같은 미디어 권력을 장악한 '천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한때 규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자신의 모험을 위해 눈부신 기업을 창립한 실리콘 밸리의 천재들은 자유주의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이 위험해지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돈이 반동적인 집단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국가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품고 있는 무한한 기술 낙관주의는 경제적 성공을 통해 열광적 도취를 가져왔으며, 일부 억만장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도취는 기존 제도와 프로세스에 대한 경멸과 뒤섞였다. 실리콘 밸리에서 우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머스크만이 아니다. 실리콘 밸리의 유명한 투자자 중의 한 명인 마르크 엔드레센은 우리의 적은 관료제라고 선언한다. 모든 것을 제재하고 일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 체제인 비토크라시(Vetocracy)가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와 트럼프의 동맹은 기존의 국가를 무용하게 만드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테슬라의 자율 주행 자동차, 우주여행과 화성 식민지 건설,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어떤 사회를 건설하려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사회에는 이러한 기업을 통제할 국가가 필요 없다. 트럼프는 온갖 가짜 뉴스를 정치적으로 수단화하여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트럼프의 새 부통령 후보인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가 등장하면서 트럼프주의와 실리콘 밸리의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중간층이 위축되자마자 일부 부유층이 반자유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는 사례는 충분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결코 '더 좋은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억만장자가 정치적 권력마저 가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것이 머스크와 트럼프의 만남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대신 부를 축적하고 기술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 사회로부터 점점 더 분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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