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다시 바로 세워야 할 대화의 공간, 바로 학교

@김유진 산정중학교 교사 입력 2026.09.08. 14:37
광주산정중 교사
김유진 광주산정중 교사

어느 학교의 교실. 의사 표현과 감각 처리 특성이 다른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비장애 학생을 향한 신체 접촉을 두고, 비장애 학생들은 신체적 경계를 넘어오는 상대를 ‘성폭행범’이라 부르며 쫓아냈다. 흔하지는 않으나 종종 발생하는 갈등 사례의 전형으로 비장애 학생들의 신체적 주권과 안전 요구, 특수 학생의 교육권과 포용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한 이 사안은 결국 학부모 간 대립을 넘어 관련 외부 기관에 민원과 진정을 제출하는 법적·행정적 공방으로 변질되었다. 신체 접촉의 당사자가 아닌 일부 학생들의 차별적 시선까지 뒤얽히며 누구 하나 쉽게 풀지 못할 복잡한 매듭이 지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이처럼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까닭은 ‘학교의 교육적 중재 기능’이 무력하게 정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 『위기 속의 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을 아이들을 기존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으로 보며, 이를 위해 성인이 ‘권위’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는 권위와 책임이 모두 해체된 민원 처리소로 전락했다. 중재를 시도하다가 어느 한쪽으로부터 편향되었다며 고소나 악성 민원을 당하기 일쑤인 환경에서,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중재자 대신 피고발인의 위치에 서게 된다. 결국 학교는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절차적 하자만을 피하려는 소극적 방어 매뉴얼 뒤로 숨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갈등의 배후에 교육 당국의 행정적 방임과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교실 비극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관할 교육청의 해당 분야에 대한 넉넉하지 못한 예산 편성으로 특수교육실무사를 배치하지 못하면서 교실 안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었다. 현장의 인력 부재로 인해 발생한 갈등과 상처의 무게를 교사, 학생, 학부모가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구조다. 정작 갈등을 예방하고 중재할 행정적 시스템과 전문 인력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현장에만 묻는 불합리가 반복되고 있다.

학교가 다시 갈등을 흡수하고 교육적으로 승화시키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철학적·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 우선 ‘누가 가해자이고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만을 가리는 응보적 사법 틀에서 벗어나, ‘누가 어떤 상처를 입었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전문적인 회복적 대화 모임을 제도화하고,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강조한 ‘의사소통적 이성’이 작동할 수 있는 대등하고 안전한 대화의 장을 열어 학부모와 학교 간의 상호 신뢰를 재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제도적·행정적 안심 울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와 관리자가 소신 있게 중재에 나설 수 있도록 악성 민원과 법적 분쟁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보호망을 교육 당국이 구축하고, 학교장에게 실질적인 갈등 조정 권한과 예산을 부여해야 한다. 관할 교육청 차원에서도 갈등조정전문가를 즉시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현장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존 듀이(John Dewey)는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며, 학교는 그 민주적 삶과 갈등 조정을 배우는 가장 작은 사회’라고 했다. 비장애 학생의 안전할 권리와 장애 학생이 포용받을 권리가 부딪힐 때, 각자의 상황에 알맞은 교육을 지원하며, 이를 조율하고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공교육이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아이들에게 상대를 낙인찍고 쫓아내는 법이 아닌,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지혜롭게 풀어가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제 학교를 법정의 그늘에서 해방시키고 대화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